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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고래 부커상 최종 후보, 줄거리와 결말

천명관의 고래, 압도적 스케일의 강렬한 서사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가 2023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숏리스트)에 올랐다는 뉴스를 보고, 어? 했다. 아, 영어권에 비로소 최근 번역이 이루어졌구나 했다. 부커상은 인터내셔널 부분은 작가와 번역가에게 동시에 수여한다. 

소설 <고래>가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은 고래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강렬한 전율을 되살렸다. 다시 읽어보려고 찾아봤더니 집에 없었다. 기증을 했나? 다행히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2004년 읽었을 때처럼 손에서 책을 떼어놓지 못하고 쭉 읽었다. 좋은 작품은 두 번 읽어도 재미있다. 이런 소설은 최소 한나절은 확보하고 제대로 각 잡고 읽어야 제맛이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장 레일라 슬리마니는 소설 <고래>에 대해 “등장인물들은 착하지 않지만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고 결말은 매우 감동적이다”라고 했고, 1차 선정 때에는 “한국의 풍경과 역사를 탐험하는 모험적 소설”, “문학의 폭동”(riot of a book)이라고까지 격찬했다.

부커상은 우리나라 문학에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소설가 한강이 2016년 <채식주의자>로 부커상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고, 작년에는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이 1차 후보(롱리스트)에 올랐고, 정보라의 <저주토끼>는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지난해 정보라의 <저주토끼>가 최종 후보에 올랐을 때, 사실 조금 의아했다. 무지 재미있기는 했으나 너무나 한국적인 마이너 한 장르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저주토끼의 확장판으로도 볼 수 있는 천명관의  <고래>도 최종 후보에 오른 것으로 보아 먼바다 너머 사는 그 사람들도 분명히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기담적인 문화에 매료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수상작은 5월 23일 발표된다. 이번에는 결과를 기다려봐도 좋을 듯하다.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고래>는 데뷔 당시 평단의 호평과 함께 지금까지 10만 부 넘게 팔리며 독자들로부터도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천명관 프로필 

1964년 경기 용인 출생. 골프 가게 점원, 보험 외판원 등을 하며 이십 대를 보냈다. 서른이 넘어 신씨네 영화 <미스터 맘마>의 롯데시네마 입회인으로 시작해서 기획시대 총무과장으로 일하다 그만두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 <총잡이>, <북경반점> 등의 시나리오는 영화화 됐다. 배창호 감독이나 이명세 감독의 연출부에 기웃거렸으나 오랫동안 감독 데뷔를 하지 못하다가 지난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장편영화 <뜨거운 피>(2022)로 감독 데뷔를 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마흔 즈음, 동생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3년 문학동네신인상 소설부문에 ‘프랭크와 나’가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었고,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에 ‘고래’가 당선되었다. 

계간 ‘문학동네’에 장편소설 ‘사신(死神)과의 하룻밤’을 연재했고, 작품으로는 윤여정 주연으로 2013년 영화화된 <고령화 가족>(2010)과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필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  <유쾌한 하녀 마리사>, <나의 삼촌 브루스 리>, <퇴근> 등이 있다.

고래 책표지

천명관 소설 고래 줄거리

붉은 벽돌의 여왕, 춘희

고래의 첫 문장은 ‘붉은 벽돌의 여왕’ 춘희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나라에 삼 년간 계속된 큰 전쟁이 끝나가던 해 겨울, 한 거지 여자가 마구간에서 춘희를 낳았다.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칠 킬로그램에 달했던 춘희의 몸무게는 열네 살이 되기 전에 백 킬로그램을 넘어섰다.

벙어리였던 춘희는 의붓아버지인 文으로부터 벽돌 굽는 모든 방법을 배웠다. 팔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극장 대화재 이후, 춘희는 방화범으로 체포되어 오랜 교도소 생활 끝에 벽돌 공장으로 돌아왔다. 당시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작가 천명관은 소설 <고래>의 도입부부터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춘희의 서사가 앞으로 예사롭지 않게 전개될 것임을 경고라도 하듯 춘희가 허기를 채우는 장면을 날것 그대로 비장하게 묘사한다.

백이십 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의 춘희는 대화재로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 평대의 벽돌공장으로 돌아와 수의를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목욕을 한 후,

누룩뱀의 꼬리를 잡아 땅바닥에 힘껏 태질을 하고 뱀의 목을 이빨로 물어뜯어 가죽을 벗겨내고 몸통을 한 손에 말아 쥐고 머리끝부터 우적우적 날로 씹어 먹기 시작해 뱀 한 마리를 천천히 다 먹어치운 후, 뱀의 위에서 나온 개구리도 물에 헹궈 먹었다.

내장이 뒤틀리는 구역질을 눌러 삼키고 춘희는 잠시 망연한 묘정으로 공장을 둘러보고 살림집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 공장에 주인이 돌아온 것이다.

대왕 고래를 쫒는 여자, 금복

춘희를 낳은 거지는 누구였을까? 그 주인공은 소설 <고래>의 메인 여주 ‘금복’이었다. 금복은 두메산골에 살았는데, 말을 하도 잘해서 별명이 ‘약장수’라는 소년과 방에서 그 나이에 흔히 하는 음란한 장난을 치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심한 매질을 당했다. 

어느 날 멀리 남쪽 바닷가 도시의 바람을 타고 생선장수가 두메산골에 생선 팔러 왔을 때, 금복은 답답한 산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렘으로 그 생선장수의 삼륜차에 작은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몸을 실었다. 바야흐로 금복의 파란만장한 운명의 시작이 된 날이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열네 살이었다.

금복이 남쪽 바닷가 도시 부둣가 바위에 앉아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고래가 고요한 밤바다에서 불쑥 솟아올라 힘차게 물을 뿜어대는 장관을 넋을 잃고 보고 있던 그날 밤, 그녀가 떠나온 고향마을 산골에서는 욕정의 덫에 걸렸던 불쌍한 아버지가 아이를 낳다 죽은 금복의 엄마를 따라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

금복이 태어나서 처음 고래를 본 그날, 고래는 금복을 매료시켰고, 금복은 평생 동안 대왕고래 같은 거대함을 쫓아다니게 된다. 금복은 무슨 일을 해도 크게 벌여야 되고, 남자도 그랬다.

“글쎄, 크다고 뭐 딱히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이왕지사,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큰 게 좋겠지.”(27쪽)

생선장수는 초라한 두메산골 소녀를 왜 그의 삼륜차에 싣었을까? 그것은 냄새였다. 남쪽 바닷가에서 불어온 바람의 향기에 취해 금복이 무작정 삼륜차에 올라탔듯이, 생선장수는 어디선가 나는 듯한 냄새에 끌려 꼬맹이 금복이를 삼륜차에 태우고 바닷가 도시로 향했던 것이다.

금복의 사내들

그리고 생선장수는 금복의 첫 남자가 되었다. 금복은 유난히 딱 벌어진 엉덩이를 제외하면 그다지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으나 길 가던 사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정체불명의 어떤 냄새 때문이었다. 사타구니에 거웃이 비칠 때부터 풍기기 시작한 그 냄새는 아무리 열심히 구석구석 씻어대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는 그런 냄새였다. 

생선장수와 같이 사는 동안, 금복은 가슴이 성난 복어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통통하던 엉덩이는 안반짝만 하게 벌어져, 비록 더러운 옷을 입고 일하는 여자들 무리에 묻혀 있어도 누구나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여자가 됐다. 

생선장수의 걱정대로, 금복은 엄청난 장골의 하역부 ‘걱정’이라는 사내에게 반해 그와 살림을 차린다. 걱정이라는 이름은 어릴 때 먹성이 하도 좋아 그의 부모가 ‘앞으로 입에 풀칠할 일이 걱정’이라고 해서 걱정이 되었다는 설과 괴걸 한 용모가 양주의 도적인 임꺽정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다.

다음 이야기들

이 글은 아래 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소설가 임철우의 말대로 “고래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뜻밖에 굉장한 흡인력을 발산하며 결말까지 숨 가쁘게 몰입하게 만든다.”는 소설입니다.


댓글

  1.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중의 하나입니다.
    장대한 서사에 매력적인 캐릭터, 미친 흡인력!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