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심리학자들이다. 이들은 멀쩡한 보통의 시민을 히틀러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고릴라를 투명하게도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가 했던 고릴라 실험을 소개한다. 투명 고릴라 실험으로도 잘 알려진 이 실험은 인간이 흔히 겪는 인지 능력의 한계를 6가지 착각으로 분류하여 재밌게 설명한 책 <보이지 않는 고릴라>(2011)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고릴라 실험이란
댄과 크리스는 흰 셔츠와 검은 셔츠로 나눈 팀이 농구 패스 게임을 하는 중간에 고릴라 의상을 입은 여학생이 약 9초에 걸쳐 무대 중앙으로 걸어와 선수들 가운데 멈춰 서서 카메라를 향해 가슴을 치고 나서 걸어 나가는 장면이 들어있는 동영상을 만들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 동영상을 보여주고 검은 셔츠 팀의 패스는 무시하고, 흰 셔츠 팀의 패스 횟수만 말없이 세어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험에 참가한 절반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주의력 착각
고릴라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패스 횟수를 세는데 정신이 팔려 바로 눈앞에 있는 고릴라에는 ‘눈이 먼’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오류는 기대하지 못한 사물에 대한 주의력 부족의 결과로 인하여 발생하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부주의 맹시’라고 부른다.
이러한 ‘주의력 착각’은 일상에서도 흔히 경험할 수 있다. 자신은 열심히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오토바이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 사고가 났다고 하는 말들이 그렇다. 의사가 환자의 복부에서 수술용 가위를 빼내는 것을 잊어버린 채 그대로 봉합 수술을 했다는 황당한 사례도 가끔 뉴스에 나온다.
고릴라가 보이지 않는 이유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시간적인 압박이 있거나 주위가 분산 되는 압박이 있을 때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특정 정보에 인지 자원을 활당하여 처리하고 나머지 정보들은 무시하게 된다. 이를 선택적 주의라고 한다.
고릴라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이 흰 셔츠 팀의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인지 자원을 활당하여 정보를 처리하고 검은 셔츠 팀의 패스 행동이나 고릴라의 행동 등 나머지 정보들은 무시하는 선택적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실험 참가들에게 고릴라가 투명 고릴라가 된 이유다.
고릴라 실험은 아래 사이트에서 참가해 볼 수 있다. 물론,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고릴라 의상을 입은 여학생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릴라 실험에 대해 들어본 적 없는 분에게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가 했던 것처럼 실험을 해 보시면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4년 전 게시된 첫 번째 실험 동영상은 2024. 7. 13. 현재 조회수가 무려 3086만회이다.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의 흥미로운 후속 실험 동영상을 이 사이트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6가지 심리적 착각들
<보이지 않는 고릴라>(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대니얼 사이먼스 지음, 김명철 옮김, 김영사, 2011)는 주의력 착각을 시작으로 기억력 착각, 자신감 착각, 지식 착각, 원인 착각, 잠재력 착각 등 6가지 착각이 불러일으키는 근거 없는 믿음들을 파헤친다.
저자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모차르트 이펙트’도 도마 위에 올려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똑똑해진다는 믿음도 사이비 과학이 빚어낸 사기극이란 사실을 밝힌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잠재력을 은근히 높게 평가하고 싶은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동물이 인간이다. 두뇌 중의 10퍼센트만 쓰고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도 여기서 시작한다.
두뇌의 90퍼센트를 활용한다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두뇌 트레이닝 같은 제품들을 양산해 낸다. 바로 ‘잠재력 착각’을 이용한 상술이다.
저자들은 복잡한 것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든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지능 향상을 할 수 있다는 유혹들은 예외 없이 사기극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강조한다.
댄과 크리스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신들이 새롭게 제시한 렌즈를 통해 주변 사람의 행동을 관찰해 보고, 성급히 결론 내리기 전에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자신의 추론을 검토하는데 최선을 다하라는 말과 함께 <보이지 않는 고릴라>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 한다.
일상의 착각들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예전처럼 자기 자신을 확고히 믿지 못하겠지만, 자신의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고 사람들이 때로 어이없이 행동하는 이유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마지막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결론으로 성급하게 뛰어들기 전에 항상 이러한(착각) 가능성을 고려하기를 바란다.(345쪽)
독후감
인간은 모든 현상에 대하여 그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궁금해 하고, 그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존재다. 이러한 인간의 궁금증에 대하여 대체로 심리학자들이 답을 많이 해왔다.
그런데 심리학을 많이 안다고 해서 실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 딱히 없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인지적 한계나 능력의 한계는 인간이기에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실패 확률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겠어? 또는 왜 그런지 최소한 이유는 알고 싶어, 하시는 분들은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재미로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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