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해라 줄거리,장 뤽 고다르와 누벨 바그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59)는 감독의 데뷔작이자 프랑스의 누벨 바그1를 이끈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A bout de souffle>로 “숨이 차다”, 혹은 “(죽는 순간의) 마지막 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어인데, 1962년 우리나라에 개봉하면서 제멋대로 번역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

29세의 장 뤽 고다르는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프랑스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 받아 4,500만 프랑이란 저예산으로 영화 <네 멋대로 해라>를 만들었는데요.

프랑수아 트뤼포2와 고다르는 당시 신문 사회면에 실렸던 한 사건을 소재로 영화로 만들기로 하고 의기투합하여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 이 영화입니다. 기사 내용은 아래와 같이 단순했습니다.

“오토바이를 모는 한 남자가 경찰을 죽이고 여자 친구와 달아났는데 나중에 그 여자가 남자를 배반했다.”

이 단순하고 불량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그날 그날의 촬영 현장 상황에 맞추어 살을 붙여 나가며 만든 영화가 영화사에서 길이 남을 고전이 되었습니다. 누벨 바그 영화들이 이러한 실험적인 정신으로 만든 영화들입니다.

누벨 바그의 탄생

<네 멋대로 해라>는 대부분 파리의 분주한 대로 상에서 핸드헬드(hand­held)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거리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스크린에 그대로 전달되며 등장인물들의 대화도 마치 소음처럼 들립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카메라를 보고, 즉 관객들에게 말을 하는 가 하면, 거리의 사람들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이 잡히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영화가 너무 길다고 느낀 장 뤽 고다르가 각각의 시퀀스 중에서 몇몇 장면들을 삭제(점프 컷)하는 바람에 이야기 흐름이 퉁퉁 튀면서 혼란스럽고 산만하게 다가옵니다.

어떤 짜여진 기획이나 각본이 아닌, 그야말로 우리의 인생처럼 날 것 그대로 영화에 담으려고 했던 실험 정신이라고 할까요?

덕분에 이 영화는 줄거리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당혹스러움과 줄거리에 집중하다 보면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의미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멋대로 영화를 감상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네 멋대로 해라 줄거리

주인공 미셸 푸가드(쟝-뽈 벨몽도 분)는 당시 인기를 끌었던 갱 영화의 주인공 험프리 보가트를 선망하는 좀도둑입니다.

그는 사회면에 실렸던 사람처럼 차를 훔쳐 달아나다가 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던 총으로 경찰을 죽이고는 쫓기기 시작합니다.

경찰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그는 모델의 지갑을 훔치고, 우연히 미국에서 파리로 유학을 온 패트리샤(진 시버그 분)를 만납니다. 미셸 푸가드는 니스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그녀와 그녀의 아파트에서 삶과 죽음에 대하여, 예술과 개똥 철학을 운운하며 동거를 시작합니다.

네-멋대로-해라-영화-포스터

미셸은 마치 갱 영화에 나오던 험프리 보카트라도 된 것처럼 담배를 피워 물고 아랫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며 혼자 끊임없이 떠들어 대면서 쿨하게 강도 짓을 하고 그녀에게는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합니다. 패트리샤는 그런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임신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지명 수배되고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패트리샤는 왠지 그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흔들리기 시작하고 그와의 사랑을 확신할 수 없었던 그녀는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네 멋대로 해라 결말

미셸은 경찰에 신고했다는 말을 듣고서도, 도망을 가라는 그녀의 말에도 도망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피곤하고 귀찮아서 감옥에 가고 싶다.” 라고 말한 그는 경찰에 쫓기다 결국 거리에서 총을 맞아 쓰러집니다.

미셸은 달려온 그녀에게 “역겹다”고 욕을 하면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감기고 마지막 숨을 거둡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원제는 이 장면에 집중하여 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누벨 바그와 실존주의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줄거리를 따라 잡기 어려웠지만, 카뮈의 <이방인>이 떠오르면서 뫼르소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그들은 세계에 저항하며 세상과의 관계도 원치 않았고, 모든 것이 역겨움으로 느껴졌으며 종국에는 스스로도 파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고다르는 “영화는 삶 자체이다. 그것은 말해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살아져야 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눈을 떠서 일어나야 하는데 세상이 그만 지겨워져 그냥 눈을 감은 채로 있는 누워 있는 날들이 있습니다. 영화든 인생이든 그저 살아져야 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누벨 바그는 실존주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합니다. 프랑수아 트뤼포를 제외하곤 누벨 바그 거장들은 다행스럽게도 다들 오래 살았습니다.

에필로그

미셸을 연기한 장 폴 벨몽도는 이 영화로 유럽풍 불량배 영웅으로 탄생되었고, 파트리샤를 연기한 진 세버그는 프랑스인들의 연인이 되는 최초의 미국 여배우가 되었습니다.

<자기 앞의 생>의 작가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는 어쩌면 거리에서 “뉴욕 헤럴드 트리뷴”을 외치며 신문을 파는 패트리샤 역을 인상적으로 연기하는 모습에 반해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줄거리, 로맹 가리의 두 번째 공쿠르 상 수상작 

영화 <네 멋대로 해라 Breathless, A Bout De Souffle>는 제1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인 감독상을 수상했고, 그 후 이 영화는 미국의 B급 영화 제작사인 모노그램 영화사에 헌정 되었습니다.

장 뤽 고다르는 파리 시네마테크 출신으로 독학으로 영화를 배웠고, 시네마테크의 동료들인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프랑수와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등과 함께 영화 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자로 활동하며 1950년대 말 누벨 바그라는 사조를 이끌었습니다.

  1. 누벨 바그(La 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당시 영화를 공장식으로 찍어내던 관습에 저항하는 영화적 경향을 말하는 용어입니다.
    ↩︎
  2. 누벨 바그를 이끌었던 거장으로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400번의 구타>(1959)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많은 실험적인 영화를 발표했다.(출처 : 위키백과) ↩︎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