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확실한 불렛이다. 딸이 벌써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걸 보면, 딸을 꼭 안아주며 중학교 졸업을 축하해 주던 때가 엊그제인데 말이다. 그러니 세월은 확실한 불렛이다. 딸의 졸업식에 늦지 않게 참석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모두 부산하게 움직였다.
연초라 졸업식 날, 와이프는 회사에 행사가 있었고 사회복무요원인 아들도 행사 기간이라 휴가를 얻기가 수월하지가 않았다. 네 차례 말한 끝에 겨우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아들은 푸념했다. 가족 행사인데 딴지를 걸다니, 내심 그 담당 선생이 서원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간단히 샤워만 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전날부터 내리던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종일 내렸다. 휴게소 한 곳만 들리고 비와 안개를 뚫으며 4시간을 달린 끝에 졸업식장에 도착했다. 가족 모두를 본 딸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빗길, 운전해 오시느라 수고 많았어요!”
졸업모를 쓴 딸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른스럽게 보였다. 딸은 최근에 머릴 기르기 시작했는데, 묶은 머리도 보기 참 좋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학부모들이 졸업식장을 가득 채웠다. 딸아이의 졸업식 풍경은 3년전 아들의 영재고 졸업식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세월이 흘러 그런 것인지, 예체능 고교라 그런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유분방한 기운이 식장을 한가득 메웠다.

학교장이 졸업증서를 한 사람 한 사람 수여했는데, 이미 졸업장을 받은 학생들이 무대를 내려가지 않고 한쪽에 모여 춤을 추기도 했고, 여럿이 모여 무대에 이리저리 드러누워 단체사진을 찍어 달라고 학교장에게 부탁하는 바람에 수여식이 지체되기도 했다. 그때 한바탕 웃음이 크게 퍼졌다.
이 고등학교에 딸을 잘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온전히 스스로의 판단과 힘으로 이 학교를 선택했다. 대학 입시를 위해 3년을 보낸다는 건 인생의 낭비다. 공교육이 입시학원으로 전락한지는 오래다. 3년간 암기를 열심히 해서 대학을 잘 가는 것보다 딸은 이 자유분방한 학교에서 더 많은 것을 경험했으리라 생각한다.
딸이 이 학교의 경험과는 관계없는 전공을 선택해 대학을 가기로 결정했을 때, 아쉬움이 컸다. 3년 전 그랬듯이 이번에도 혼자 힘으로 수능을 준비했고, 우리는 딸을 전적으로 믿기로 했다. 다양성의 중요성은 인생의 경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긴 졸업식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오랫만에 완전체가 되어 짐을 같이 날랐고, 점심도 같이 먹었다. 그리고 먼 귀가 길을 함께 달렸다. 3년 전 입학 때와는 또 다른 설렘과 숙연함이 차 안 가득 맴돌았다.
딸은 입시 결과를 아직 기다리고 있다. 잘 되어서 집 가까운 대학에 붙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면 아들이 전역할 때까지 우리 가족은 최소 2년은 완전체로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아마도 아들이 전역하고, 딸이 졸업하면 우리 가족은 다시 떨어져 살게 될 것이므로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생활하는 마지막 기간이 될 것이다. 아들과 딸이 고등학교를 기숙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늘 아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제 아빠로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난 3년 동안 먼 거리를 오가며 여러모로 정말 수고 많았다. 졸업을 축하한다, 사랑하는 딸아!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힘차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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