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글쓰는 이들에게

도서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2016)를 빌려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그가 예술가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매우 규칙적 생활로 꾸준하게 글쓰기의 삶을 살았다는 것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호불호가 갈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저 역시 그의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편인데요. 그의 초기작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꽤 강렬했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으면서 그의 그 어떤 소설보다 더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쓰기에 대한 방법론과 인생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이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이 책에 담았습니다.

1949년생이니 올해 74세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전히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밤 9시에 취침하여 5시에 일어납니다. 커피 한 잔을 내려서 5~6시간 동안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고,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을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한다고 합니다.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소설 쓰기를 위해 그렇게 오랫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사실 그게 무척 궁금했습니다. 대개 보면 유명 인사가 되면 보통 방송에도 얼굴을 내밀고 잡다한 행사로 이리저리 바쁘게 살아가기 마련이잖아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책표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책표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는 그에 대한 해답이 어느 정도 담겨 있습니다. 재즈 카페를 하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떻게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으며 그에게 소설 쓰기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그렇게 지독하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솔직한 심경과 철학들을 담백하게 고백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참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이라는 걸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흔히 예술가 하면 좀 천재인 척도 하고 예술가랍시고 안하무인격인 분들도 많잖아요. 그런데 그는 그런 예술가들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설가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강고한 의지를 장기간에 걸쳐 지속시키려고 하면 아무래도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리티가 문제가 됩니다. 일단은 만전을 기하며 살아갈 것, ‘만전을 기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다시 말해 영혼을 담는 ‘틀’인 육체를 어느 정도 확립하고 그것을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 이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경우) 지겨울 만큼 질질 끄는 장기전입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육체를 잘 유지해나가는 노력 없이, 의지만을 혹은 영혼만을 전향적으로 강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 경향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인간은 늦건 빠르건 반드시 다른 한쪽에서 날아오는 보복(혹은 반동)을 받게 됩니다. 한쪽 편으로 기울어진 저울은 필연적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뀌입니다. 그것이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할 때, 가장 올바른 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본문 198-199쪽)

<직업으로서 소설가>에서 가장 인상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각이 담긴 구절입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키는 자신이 조금 더 만족할 수 있는, 더 향상된 소설을 쓰기 위해 그렇게도 규칙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문단은 과거 표절 의혹이 불거졌던 작가들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복귀하고 있습니다. 짐작건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절대 표절을 하지 않을 작가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이토록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작가가, 육체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단련을 멈추지 않는 작가가 표절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책이 소설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솔직히 그것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소설 쓰기 방식 중에는 일반화할 수 있는 것도, 일반화하기는 좀 어려운 것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작가 지망생이라면 표절 따위는 꿈도 꾸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 책은 작가 정신을 일깨우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말대로 100명의 작가가 있다면 100가지의 글쓰기의 방식이 있겠지만, 소설가가 되는 자세에 대해 말한다면 작가 지망생들에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귀한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블로그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게도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어떤 철학을 정리하고 글을 쓰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작가는 아니지만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만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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