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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배리의 3차원의 기적, 주변시와 입체맹 극복 이야기

신경과학자 수전 배리가 쓴 <3차원의 기적>(김미선 옮김, 초록물고기, 2010)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게 되는지에 대한, ‘시각’의 문제를 신경 과학적으로 다룬 책이다.

저자 수전 배리는 마흔여덟 살이 되기까지 완전히 평평한 2차원의 세계 만을 보아왔던 입체맹이었다. <3차원의 기적>에는 저자가 입체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눈을 얻게 되는 과정이 매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주변시와 입체맹

나는 <3차원의 기적>을 읽고 나서야, 시력이 정상임에도 내가 왜 곧잘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지에 대한 이유를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주변시1와 입체시2와 관련이 깊었다.

길치인 나는 비가 오는 날에는 방향 감각을 상실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시각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력도 정상이다. 다만, 특정 순간에 공간 지각 능력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못해 자주 애를 먹었다.

저자 수전 배리는 우리가 길을 찾거나, 운전하거나, 축구를 할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예민한 주변시(視)라고 말한다. 주변을 파악하는 감각이 훌륭해서 자기 자신이 공간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려면, 예리한 중심시 이상으로 주변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괜찮은 운동선수와 비범한 운동선수를 구분하는 요소이기도 한 주변시는 ‘필드 센스 field sense’, 즉 매우 발달된 공간 감각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우스개 소리로 눈이 열두 개라는 디에고 마라도나는 아마도 이 주변시가 극도로 예민하게 발달한 축구 천재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이강인의 플레이를 슬로 모션으로 보면 주변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림짐작해 볼 수 있다.

입체시는 회복 불가능할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입체맹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수전 배리 또한 세상에 입체맹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당연히 자신이 입체맹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사시 교정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다. 그러함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스스로 신경 과학을 연구하면서 입체맹을 극복한 그녀의 노력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수전 배리는 자신이 입체적 깊이가 있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입체시가 정상인 사람은 언제나 입체시가 없는 사람의 세계상을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시훈련 치료로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을 클로드 모네의 말을 인용하며 설명한다.

나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원한다. 다른 화가들은 다리, 집, 보트를 그리고, 그걸로 끝이다. 그들은 그림을 완성한다.

나는 그 다리, 집, 보트를 둘러싸는 공기, 이 사물들이 놓여 있는 공기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고,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본문 168쪽)

저자는 ‘결정적 시기’가 지나면 3차원의 입체시가 회복 불가능하다는 신경과학계의 정설을 깨고 과학자로서의 탐구 정신과 불굴의 의지로 스스로 과학적 반증을 만들어 냈다.

그간 입체시를 얻기 위한 ‘결정적 시기’(대략 3~4세경)가 지난 다음에는 입체시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3차원의 기적>은 ‘시각’에 대한 ‘과학’을 담고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인지하는 지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도 담겨 있다. 이 책은 시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나 성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줌은 물론, 시 감각에 대한 생각의 폭도 넓혀 주는 교양 과학서이다.

사물들이 놓여 있는 공기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었던 클로드 모네처럼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에는 우리가 늘 보고 있는 익숙한 사물들의 배경 속 공간이 열리며 깊이가 충만한 세상이 열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의 초반부를 읽고 있을 때 나도 혹시 입체맹이 아닌가 의심했었다. 수전 배리가 제공하는 입체시 단서들, 비무선점 입체도나 ‘브룩 끈 Brock string’ 등으로 테스트해 보기까지 했다. 다행히 난 아니었다. 궁금하신 분들을 책의 내용을 참고하여 직접 테스트 해 볼 수 있다.

저자 수전 배리는 말한다. 당신의 습관과 당신이 늘 세계와 협상해 온 방식을 바꾸려면 엄청난 각성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인간의 뇌는 놀라운 적응력을 갖고 있다. 그녀의 삶을 보면 세상에 봉인된 운명은 없다는 걸 느끼며 희망의 끈을 이어갈 수 있다.

이 책은 시각을 과학적으로 다룬 책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수전 배리(Susan Barry) 프로필

프린스턴 대학교 생물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마이애미 의대와 미시간 대학교에서 신경과학을 연구했다. 미국 나사(NASA) 존슨우주센터, 우즈 홀 해양생태연구소에서 일했으며,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교에서 생물학 및 신경과학과 교수로 있다.

저명한 신경과학자 올리버 색스가 <뉴요커>에 수전 배리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스테레오 수”를 기고하여 2007년 ‘Best American Science Writing’에 뽑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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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변시(peripheral vision)는 눈이 고정된 지점을 바라볼 때 시선 중심에서 벗어난 영역에 있는 물체를 인식하는 시각 기능. 즉, 눈이 움직이지 않고도 시야의 끝부분까지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
  2. 두 눈을 사용하여 입체적인 깊이 감각을 느끼는 기능. 즉, 물체의 공간적 위치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3차원적인 시각 정보를 뇌에 전달하는 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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