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추리 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초기 대표작으로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뽑은 대표작이기도 하고, 많은 논쟁과 함께 그녀에게 추리 소설가로서 초석을 다져준 작품이다.
줄거리
이 소설은 시골 마을 킹스 애벗에 살고 있는 의사 제임스 쉐퍼드가 화자이다. 그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캐롤라인 누이와 함께 살고 있다.
킹스 애벗은 청년들이 떠나가고 결혼하지 못한 처녀와 은퇴한 장교들이 많이 사는 전형적인 작은 시골 마을이다. 작은 우체국 하나와 잡화점 두 개, 커다란 철도역이 있을 뿐이다.
대저택 ‘펀리 파크’에 사는 로저 애크로이드는 쉐퍼드 의사의 친구이자 평화로운 킹스 애벗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로 나이는 쉰 살 가량이고 젊은 시절 마차 바퀴 회사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로저 애크로이드는 스물한 살 때 자식이 하나 딸린 5~6년 연상의 페이턴과 결혼했으나 그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결혼 한 지 4년 만에 술 때문에 죽고 말았다.
로저는 그녀가 남기고 간 일곱 살 난 아들, 랠프 패이턴을 친자식으로 여기며 키웠으나 성격이 거칠어 의붓아버지에게 끊임없는 걱정과 어려움을 야기했다.
1년여 전에 이 마을로 이사를 온 패러스 부인은 남편이 자살로 죽고 난 이후 로저와 친밀하게 지냈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곧 결혼할 것으로 숙덕거렸다.
패러스 부인과 애크로이드의 죽음
패러스 부인은 9월 16일 목요일 밤에서 17일 새벽 사이에 죽었다는 걸 쉐퍼드 의사가 금요일 아침 8시에 불려가 확인을 하였다.
쉐퍼드 의사는 9시가 조금 넘어 집에 돌아와 캐롤라인 누이와 식사를 하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로저 애크로이드의 초청으로 펀리 파크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애크로이는 쉐퍼드 의사를 서재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은밀한 이야기를 했다.
로저 애크로이드는 석달 전 패러스 부인에게 청혼을 했으나 그녀는 울음을 터트리며 자신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밝혔다. 그녀는 짐승 같은 자기 남편에 대한 증오심으로 독약으로 남편을 독살했으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엄청난 액수를 요구하며 그녀를 협박해 왔다.
결국 패러스 부인은 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을 한 것이었으며, 그녀는 협박범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죽고 난 이후 협박범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우편으로 로저에게 보냈다.
때마침 패러스 부인이 남긴 편지를 파커 집사가 8시 40분에 가져왔고 로저는 그 편지를 읽어 내려 가던 중에 돌연 나중에 읽겠다며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쉐퍼드 의사는 하는 수 없이 협박범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 8시 50분에 서재를 나선다.
집에 돌아온 쉐퍼드 의사에게 한 통의 전화가 10시 15분에 걸려왔다. 로저 애크로이가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는 파커 집사의 전화였다.
쉐퍼드 의사가 급하게 펀리 파크에 가 파커 집사와 함께 서재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로저는 단검에 찔린 채 서재 의자에 앉아 죽어 있었다. 패러스 부인의 편지가 든 푸른 봉투 외에는 사라진 물건은 없었다.
사건의 단서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곧바로 수사를 시작했고, 비서 제프리 레이먼드는 9시 30분에 서재에서 흘러나오는 로저 애크로이드의 목소리를 들었고, 10시 15분 전쯤 플로라 양이 애크로이드에게 밤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래글런 경위는 서재 창문 아래에 찍혀있는 여러 개의 발자국을 발견했고, 로저의 가슴에 꽂혀 있던 날카로운 단검은 응접실 은제 탁자 안에 있었던 튀니지 산 단도라는 것도 알아냈다. 그것은 블런트 소령이 선물한 것이었다.
또한, 쉐퍼드 의사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만나고 서재를 떠날 때에는 서재의 창문이 닫혀 있었으나 사건이 발생하고 난 이후에는 창문이 열려 있었으므로 살인범은 내부 사람이거나 로저 애크로이드가 아는 사람이라 그가 창문을 열어주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파커 집사가 자신은 로저 애크로이드가 살해를 당했다고 쉐퍼드 의사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래글런 경위는 쉐퍼드 의사에게 전화를 건 제3의 인물이 범인이거나 이 사건과 관계가 깊은 인물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용의자들
살인 사건은 범행 동기에 초점을 맞추어 용의자 리스트가 작성된다. 즉 원한 관계 아니면 경제적인 이해 관계자들이 용의자가 된다.
이 사건의 경우, 도둑 맞은 물건이 없었으므로 경제적 이해 관계자는 가족이나 주변 인물로 좁혀 수사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사건 당일 로저 애크로이드의 저택 ‘펀리 파크’에 있었던 인물들은 일단 모두 용의 선상에 오르게 된다.
- 그 리스트를 정리해 보면, 먼저 저녁 식사에 초대 받았던 로저의 친구 쉐퍼드 의사와 1년에 한 번 정도 펀리 파크를 방문하는 친구 블런트 소령이 그날 저택에 있었다. 블런트 소령은 사냥이 취미이다.
- 가족으로는 애크로이드의 가난뱅이 동생의 미망인 세실 애크로이드 부인과 그녀의 딸 플로라 양도 머물고 있었다. 플로라 양은 큰아버지 애크로이드의 주선으로 랠프 패이턴의 약혼녀가 되었다.
- 그리고 5년 동안 잡음 없이 대저택 펀리 파크를 관리해 온 엘리자베스 러셀 양과 로저의 개인 비서 제프리 레이먼드, 집사 존 파커, 하녀 애슐러 본도 저택에 있었다.
- 후에 수사를 통해 애크로이드의 양아들 랠프 패이턴도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던 그날 밤 펀리 파크에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랠프는 몇 달 전 큰아버지에게 돈을 요구하며 그와 크게 싸운 바 있다.
- 마지막으로 쉐퍼트 의사가 사건 당일 날 밤 9시, 대저택 정문을 나서며 부딪쳤던 미지의 남성과 쉐퍼드 의사에게 애크로이드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건 제3의 인물도 용의자 명단에 올랐다.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
애거사 크리스티 추리 소설의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이 소설에서는 은퇴하여 쉐퍼드 의사의 옆 집으로 이사를 와서 호박을 기르며 은둔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랠프 패이턴이 잠적해 버리자, 약혼녀 플로라 양은 그의 무고함을 증명해 달라며 명탐정 푸아로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경찰이 서재 창가에 찍힌 발자국 주인공이 랠프임이 밝혀지자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크로이드는 저택과 대부분의 재산을 양아들 랠프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해 놓았다. 통상 이득을 가장 많이 보는 자가 범인이지 않던가.
하지만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는 그만의 특유의 방식으로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탁월한 수사 능력을 보여준다. 푸아로의 추리와 번득이는 재능을 감상하는 것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읽는 재미 중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푸아로는 많은 걸 밝혀내는데, 그날 밤 쉐퍼드 의사가 펀리 파크를 나서며 부딪쳤던 미지의 인물이 찰스 켄트라는 젊은이라는 것, 그가 마약 중독자라는 것, 경악스럽게도 그가 품위와 매력이 넘치는 러셀 양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사실까지 낱낱이 증명했다.
푸아로가 그걸 어떻게 추리하고 사실 관계는 어떻게 파악했느냐고? 그건 직접 책을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아주 사소한 단서들을 가지고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잡으며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보는 것이 추리 소설을 읽는 묘미이기도 하고, 복잡미묘한 연결 고리들을 여기서 다 정리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찰과 명탐정 푸아로의 수사 결과를 종합해서 보면, 용의자 명단에 올랐던 사람들은 모두 애크로이드를 살해할 기회가 있었으며 과소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범행 동기도 어느 정도 모두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예컨대, 행방을 감춘 랠프는 말할 것도 없고 플로라 양과 애크로이드 부인도 돈에 쪼들리고 있었으며 러셀 양과 아들 찰스 켄트가 사건 당일 밤 왜 몰래 만났는지 미심쩍다.
파커 집사는 전 주인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낸 전력이 있었고, 하녀 어슐러 본은 사건 당일 애크로이드와 크게 싸워 펀리 파크의 일을 그만 두기로 했다. 더구나 어슐러 본은 팰프 패이턴은 비밀 결혼을 한 상태였다.
결말(스포일러)
이제 진범을 잡을 때가 되었다. 범인의 이름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어주시기 바란다.
푸아로가 지목한 살인범은 쉐퍼드 의사이다. 쉐퍼드는 패러스 부인이 남편을 독살했다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큰 돈을 뜯어내고도 1년 동안 협박을 계속했다. 그는 서재에서 애크로이드가 패러스 부인의 편지를 받고 그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단검으로 그를 찔러 살해했던 것이다.
쉐퍼드가 알리바이를 만든 것은 구술용 녹음기였다. 애크로이드를 살해한 뒤, 그는 9시 30분이 되면 작동하게 하는 장치를 한 녹음기를 서재에 두고 나왔고, 미리 훔쳐 둔 랠프의 신발로 창가에 신발 자국을 찍고는 유유히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니 래글런 경위는 사망 시각조차 제대로 특정하지 못했으니 삽질만 계속 하고 있었고, 오직 명탐정 푸아로만이 녹음기의 비밀을 추적하면서 쉐퍼드 의사가 인근 도시 요양원에 랠프를 숨겨두어 수사에 혼선을 초래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명탐정 푸아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착한 캐롤라인 누이를 위해 경찰에 알리기 전에 그에게 자살할 기회를 준다. 추리 소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쉐퍼드 의사가 자살을 암시하는 글로 끝난다.
작품 해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화자가 범인인 추리 소설이자 서술 트릭의 원조로 평가 받는 작품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등장 인물 중에서 캐롤라인 쉐퍼드를 좋아한다고 서문에 썼는데, 미스 마플 시리즈의 원형으로 볼 수도 있다.
추리 소설은 언제나 결말이 외길이다. 그래서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살인범은 쉐퍼드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파리 8대학 프랑스 문학 교수이자 정신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는 피에르 바야르가 쓴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김병욱 옮김, 여름언덕, 2009)를 읽어보면 쉐퍼드가 범인이라는 확신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피에르 바야르는 명탐정 푸아로의 망상적 추리가 쉐퍼드 의사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비판한다. 이 책에서 그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에서 보이는 구멍들을 독자들에게 선연하게 드러내 보이며 범인에 대하여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며 새로운 진범을 제시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고 흥미가 생겨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까지 왔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는 그만큼 흥미를 유발하는 책이었고, 또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결말을 알고 읽어도 흥미진진했으니 고전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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