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쉘, 여성 앵커의 다리와 폭스뉴스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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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2019)은 2016년 폭스뉴스 스캔들을 다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샤를리즈 테론과 니콜 키드먼, 그리고 마고 로비가 주연으로 출연했는데요. 샤를리즈 테론과 니콜 키드먼은 실존 인물을 연기했고 마고 로비가 연기한 여성은 가상의 인물이었습니다

폭스 뉴스와 영화 밤쉘

이 영화의 소재가 된 폭스 뉴스는 루퍼드 머독의 폭스 코퍼레이션의 계열사로 자극적인 기사와 극우 세력의 지지로 보도 전문채널 케이블 중, 18년째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 내 독보적인 뉴스 전문 채널입니다.  

2020년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폭스뉴스의 일부 프로그램은 말도 안되는 트럼프의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하며 트럼프의 나팔수 역할을 했고, 코로나19가 발생하자 트럼프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함으로써 극우 성향을 더욱 굳혔습니다. 

유일한 보수 성향 보도전문채널이라는 것과 CNN과 MSNBC를 훌쩍 뛰어넘는 시청률은 폭스뉴스가 점하는 미국내 위상은 사실상 넘사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러한 거대 언론 권력에 맞선 여성들의 실화를 입체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영화 밤쉘 포스터
영화 밤쉘 포스터

영화 제목으로 쓰인 ‘밤쉘 bombshell’의 뜻은 폭탄선언이나 몹시 충격적인 일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또 아주 섹시한 금발 미녀를 가리키는 단어라고 하네요. 아주 섹시한 금발 미녀가 한 폭탄 선언이라는 중의적인 뜻으로 선택한 제목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제이 로치 감독의 11편째 장편 영화로 <빅쇼트>의 각본가로 유명한 찰스 랜돌프가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상영시간 109분에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으로 미국에서는 2019년 12월 20일 개봉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7월 8일 개봉하여 총관객수 182천 명을 기록하는데 그쳤지만, 미국에서는 평단의 호평과 함께 제작비 3천2백만 달러로 6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영화 밤쉘 줄거리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미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6년입니다.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는 트럼프의 비열한 여성 편력에 혐오감을 느끼고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트럼프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메긴 켈리의 예상과는 달리 트럼프는 능수능란하게 빠져나오고 트럼프의 폭풍 트윗으로 메긴 켈리는 도리어 궁지에 빠집니다. 트럼프는 하루 밤 사이에 15번이나 메긴 켈리를 공격하는 트윗을 날림으로써 메긴이 무차별적인 위협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한편, 폭스 뉴스의 진정한 간판 앵커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폭스뉴스 회장 겸 최고 경영자(CEO)인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를 상습 성희롱 혐의로 뉴저지 주 지방 법원에 고소합니다.

그레천 칼슨은 스탠퍼드 대학 재학 시절인 1989년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서 우승하고 지역 방송에서 경력을 쌓은 후, 2000년에 CBS에 특파원으로 채용된 인재였습니다. 그후 CBS 뉴스를 거쳐 2005년 폭스뉴스에 입사하여 10년 이상 간판 앵커로 활동했습니다. 고소 당시 그레천은 50세였고 로저 에일스 회장은 76세였습니다.

메긴은 소장에서 2009년부터 에일스의 성적 접근을 거절하고 문제제기를 하자 그 뒤 보복이 이어졌고 급기야 해고까지 당한 사연을 밝혔습니다. 메긴의 고소로 폭스 뉴스는 내부 조사를 시작하고 에일스의 성희롱에 대한 다른 증언자를 찾아 나섭니다. 

여기서 잠깐, 과거 공화당 정치 컨설던츠로 일했던 로저 에일스가 어떤 인물인가 하면, 한마디로 오늘의 폭스뉴스를 있게 한 ‘언론 권력의 제왕’이라 불렸던 남자입니다.

로저는 오래전부터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여성 앵커의 다리를 십분 활용합니다. 앵커 룸의 테이블 아래 칸막이를 없앰으로써 시청자들이 여성 앵커의 늘씬한 다리를 다양한 각도에서 마음껏 관음 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도록 했습니다.

로저는 모든 여성 앵커에게 높은 하이힐과 미니스커트를 입도록 강요했고 신입 앵커는 자신의 눈앞에서 몸매 자랑을 해야하는 관행을 만든 장본이었습니다.

로저는 앵커 열망에 들뜬 케일러 포스피실(마고 로비)을 인터뷰하면서 미니스커트 차림의 그녀에게 일어나서 한바퀴 빙 돌아보라고 주문합니다. 케일러가 어쩔 수 없이 한 바퀴 돌고 나자, 이번에는 아예 치마를 더 위로 올려보라고 합니다.

케일러가 난처해 하자 로저는 텔레비전은 시각 매체임을 강조합니다. 시각 매체이니 여성 앵커가 되려면 남자의 눈을 사로잡을 다리를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죠.

케일러는 팬티가 드러날 정도로 치마가 올라간 치맛자락을 손에 잡은 채 아이처럼 울먹거리는 표정이 됩니다. 아, 그때의 케일러를 연기하고 있는 마고 로비의 표정이 이 영화의 압권입니다.

여자로서 성공하려면 남성의 눈에 들어야 된다는 것, 그 눈에 들기 위해서는 여자임을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해서라도 앵커가 되겠다는 욕망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마고 로비는 그 짧은 순간의 표정에 죄의식과 욕망의 갈등을 너무나 잘 담아냈습니다.

영화 밤쉘 결말

그레천 칼슨의 고소 소식이 전해지면서 메긴 켈리는 자신도 당했던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면서 괴로워합니다. 언제나 성공이 우선이었던 메긴은 여성의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 길인지를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메긴이 케일러를 찾아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연대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이 영화의 주제와 잘 어울리는 장면들입니다. 그레천 칼슨과 메긴 켈리는 실제 인물이었지만 가상 인물인 케일러를 통해 우리 사회에는 남성 권력에 부당하게 짓밟히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는 걸 영화는 암시합니다.

그레천 칼슨의 고소는 남성권력 앞에 약자였던 여성들의 연대를 이끌어냈습니다. 실제 폭스 뉴스 성추문 스캔들 사건에서 칼슨의 고소 이후, 20명 이상의 여성들이 잇따라 고소에 참여했습니다. 로저 에일스는 결국 폭스 뉴스에서 물러났습니다. 

밤쉘이 남긴 여운

이 영화는 도널프 트럼프 전 대통령과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회장이라는 거대 권력에 맞선 여성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보수 언론이 이슈를 어떻게 통제하고 보수 언론에 기생하는 남성들이 어떻게 여성들을 조종해 왔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것을 깨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연대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성찰을 담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인지라 줄거리를 대충 알고 있음에도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의 내러티브는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만, 세 여자의 이야기가 접점 없이 제각각 결론에 다다르는 방식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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