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연인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로마의 휴일>(1954)을 꼽지만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이 여성으로서의 성숙미와 연기자로서의 원숙미가 돋보여 이 영화를 좋아합니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가난하게 자란 여자가 부자와 결혼을 꿈꾸지만, 그것이 헛된 꿈이라는 걸 무명 작가를 만나면서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인데요. 조금 슬픈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주인공으로 처음에 마릴런 먼로가 물망에 올랐을 정도로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퇴폐적인 관능미가 요구되는 영화였지만 오드리 헵번이 주연을 맡으면서 그녀 특유의 청춘미와 세련된 패션 감각으로 경쾌한 로멘틱 코미디가 되었습니다.
영화 정보
미국 파라마운트픽처스가 1961년 제작한 흑백 영화로 한국에서는 1962년 10월 1일 개봉하였고, 로코의 고전답게 2011년 8월 26일과 2012년 4월 12일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되었습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트루먼 커포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러닝타임 115분에 상영 등급은 15세 관람가입니다. 한국에서는 2013년 저작재산권 보호기간이 만료되어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감독과 출연 배우
- 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 각본 조지 엑셀로드
- 주인공 오드리 헵번(할리 고라이틀리 역), 조지 페퍼드(폴 바잭 역)
- 조연 패트리사 닐(폴의 스폰서 역), 미키 루니(미스터 유니오시 역), 버디 엡슨(닥터 고라이틀리), 마틴 발삼
수상 정보
- 제34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주제가상 수상작품(여우주연상, 미술상, 각색상 후보작)
- 14회 미국 작가 조합상(각본상)
티파니에서 아침을 줄거리
커피와 빵으로 시작하는 아침
영화의 배경은 1960년 초, 뉴욕의 5번가입니다.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매혹적인 아가씨 할리 고라이틀리 역을 맡은 오드리 헵번이 이른 아침 택시에서 내려 뉴욕 5번가에 있는 보석점 ‘타파니’로 걸어가 커피에 크루아상을 뜯어 먹으며 쇼윈도를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시그니처가 되었고 그대로 영화 제목이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의 거리에 영화의 주제곡 ‘문 리버 Moon River’가 몽환적인 음색으로 울려 퍼집니다. 카메라는 오드리 헵번이 검은색 선글라스와 검은 색 장갑을 끼고 타이트하게 발끝까지 떨어지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육감적으로 걸어가는 뒤태를 따라갑니다. 그녀가 보석 샾 티파니로 천천히 걸어가 쇼윈도를 들여다보는 장면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을 상징합니다.
할리와 작가 폴 바잭의 만남
카메라는 할리의 걸음걸이와 함께 그녀의 일상을 따라갑니다. 홀리는 맨해튼 아파트에 살고 있는 독신녀입니다. 그녀가 아파트로 들어서자마자 어떤 남자가 급하게 뒤따라와 50달러나 줬는데, 왜 모른 체하냐고 따지지만 무시하고 문을 쾅 닫아버립니다.
이윽고 그날 위층으로 이사 오게 된 무명작가 폴 바잭이 전화를 빌려 쓰자며 할리의 집으로 들어서는데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처음 보는 남자를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대합니다. 그녀는 씽 교도소에 수감된 거물을 매주 목요일마다 면회하는 대가로 50달러를 받고 있다는 등 산만한 수다를 정신없이 늘었습니다. 그런데도 폴의 눈에는 그린라이트가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자와 가난한 작가
그날 밤, 할리가 느닷없이 아파트 비상계단을 타고 폴의 방으로 들어옵니다. 할리는 남자들의 파트너를 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고, 그날 밤은 꼴 보기 싫은 남자가 찾아와 폴의 아파트로 피신하게 되었던 것인데요. 그녀는 비상계단에서 우연히 폴의 정부가 돈을 놓고 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무명작가였던 폴은 부유한 여성의 후원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아파트도 그녀가 마련해 주었던 것이지요. 할리는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폴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안기며 잠을 청합니다. 서로의 치부를 내주었던 까닭일까요? 할리와 폴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연인들처럼 격의 없이 하룻밤을 보냅니다.
‘문 리버 Moon River’를 부르는 할리
할리는 폴을 ‘프레드’로 부릅니다. 프레드는 군대에 가 있는 그녀의 남동생 이름입니다. 그녀는 14살 때 칠면조의 알을 훔쳐 달아나다 붙잡혀서 수의사 고라이틀리 씨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남동생과 함께 남편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14살에 결혼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그녀가 선택할 수 있었던 일은 아마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폴을 프레드로 부르는 걸 볼 때마다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과 고단함이 전해져 옵니다.
폴은 창가에 걸터앉아 기타를 연주하며 ‘문 리버 Moon River’를 부르는 할리를 보며 순정을 느낍니다. 그녀에게 문 리버는 꿈을 달래주는 노래입니다.
부자 남자에게 시집가서 공주처럼 사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습니다. 그녀는 반려묘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그냥 ‘캣’이라고만 부릅니다. 꿈이 이루어지면 그때 고양이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생각합니다.
순정에 빠져드는 무명 작가
할리는 세계 부자 순위 50위 안에 드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녀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자들에게 대놓고 접근합니다. 폴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속물로 치부하지만 문 리버를 부르는 그녀의 눈망울에서 맑은 영혼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동병상련을 느끼며 그녀의 보디 가드를 자처합니다.
폴은 허황된 꿈을 쫓기만 하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한심스러웠지만 점점 그녀에게 점점 빠져듭니다. 폴은 그녀와 함께 티파니 보석점에서 데이트도 하고 뉴욕 도서관에서 비치되어 있는 그의 유일한 단편집을 자랑합니다.
폴은 가게에서 가면을 훔쳐 달아나는 놀이도 하면서 진지하게 그녀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할리는 교도소에 면회를 간 일이 빌미가 되어 조직과 연계된 혐의로 체포됩니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풀려나긴 했지만, 그 일 때문에 브라질의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려던 계획마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결말 : 무명 고양이와 비
폴이 보석으로 풀려난 할리를 택시에 태우고 가던 길. 폴은 이제 새 출발을 하자며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폴은 브라질의 부유한 남자와의 결혼 계획은 이미 틀어졌고, 그 남자는 애초부터 그녀를 부인으로 맞을 생각이 없었음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할리는 그가 사랑을 고백해도, 브라질 부자가 나쁜 놈이었음이 드러났음에도 막무가내로 브라질로 가겠다고 울부짖으며 아이처럼 생떼를 부립니다.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할리는 택시를 세우고 데리고 있던 고양이를 억수같이 퍼붓는 빗길에 유기까지 합니다.
갈 데까지 가버린 할리의 행동에 실망한 폴은 택시에서 내리며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말합니다. 폴이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며 그녀에게 하는 마지막 말은 영화 <티파니의 아침을>의 명대사로 남았습니다.
“당신은 비겁하고 용기가 없어. 당당히 고개를 들고 ‘인생은 사실이다’ 하기가 무서운 거야.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속하는 거야. 그게 유일한 행복의 기회니까.
당신은 스스로 자유분방하고 와일드하다고 말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우리에 가두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어. 그러면서 이미 스스로 지은 우리에 갇혀 있는 거야. 어디로 도망쳐도 자신에게 되돌아올 뿐이야.”
택시에서 홀로 울먹이던 할리는 그 순간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 홀연히 택시에서 내려 고양이를 찾아 나섭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가까스로 고양이를 찾은 할리는 그를 끌어안고 뜨겁게 키스를 합니다.
할리의 삶은 무명, 그 자쳈습니다. 어렸을 때의 이름을 버리고, 결혼했을 때의 이름도 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겠다고 폴에게 말했던 할리였습니다. 그녀도 무명이었고, 고양이도 무명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폴도 무명작가입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무명으로 살아가는 청춘 남녀가 사랑을 찾아가는 고단한 러브 스토리입니다. 무명일수록 서로 사랑해야 되고, 무명일수록 서로 속하고 연대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명으로 홀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너무나 고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제곡 문리버 Moon River
오드리 헵번이 창가에 걸터앉아 기타를 연주하며 문 리버를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조니 머서가 작사하고 헨리 맨시니가 작곡한 문 리버는 <티파니의 아침을>의 주제곡으로 쓰여 아카데미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했고, 1962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레코드에도 뽑혔습니다.
이후 프랭크 시나트라, 루이 암스트롱, 앤디 윌리엄스, 엘튼 존, 제프 벡과 에릭 클랩튼 등 여러 뮤지션들에 의해 편곡되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명곡이 되었습니다.
Moon River 가사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I’m crossing you in style some day
Oh, dream maker, you heart breaker
Wherever you’re going, I’m going your way
Two drifters, off to see the world
There’s such a lot of world to see
We’re after the same rainbow’s end, waiting, round the bend
My Huckleberry Friend, Moon River, and me
Two drifters, off to see the world
There’s such a lot of world to see
We’re after that same rainbow’s end, waiting, round the bend
My Huckleberry Friend, Moon River, and me
달빛이 비치는 강, 아주 넓은 강. 언젠가 당신을 멋지게 건너가리라. 오, 몽상가여, 무정한 그대여. 그대가 어디로 가든 나는 그대를 따르리.
두 방랑자, 세상을 보러 갔네. 세상엔 볼 것도 많네. 우리는 같은 무지개의 끝을 찾아 기다리네. 내 진정한 친구와 달빛 강, 그리고 나.
뉴욕에 가면 티파니에서 아침을
뉴욕을 소재로 한 영화는 차고 넘치지만 그중 제일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입니다. 뉴욕 거리를, 특히 5번가를 걸을 때면 어딘서가 Moon River의 몽환적인 멜로디가 들려오는 듯하고 저도 모르게 문리버를 흥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뉴욕에 가신다면 뉴욕 5번가에 있는 티파니앤코 본점에서 오드리 헵번처럼 아침을 맛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티파니앤코 본점 4층에 블루 박스 카페가 2017년 오픈하여 영화처럼 거리에서 먹지 않고 편하게 아침을 즐기실 수도 있겠지요.
티파니앤코는 대담한 디자인 못지않게 영화도 잘 활용할 줄 아는 기업인 것 같습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과 스위트 알라바바(2002)도 티파니앤코에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연인과 함께 가신다면 영화에서처럼 반지에 이니셜을 새겨 추억을 쌓을 수도 있습니다. 티파니에서 보석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극 중 오드리 헵번이 그랬던 것처럼 타사의 반지에도 이니셜을 새길 수 있으니까요.
할리는 티파니에 가면 자유를 느끼고 편안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녀에게 티파티는 아마도 Moon River 같았을 겁니다. 언젠가 다다를 수 있는 꿈 같은 곳.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간절하게 노력하였지만 무명의 청춘이 닿기에는 너무 먼 달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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