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이티가 쓴 <운동화 신은 뇌>를 읽고 저자의 주장에 완전히 설득 당했다. 나도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운동이 몸에 좋으니까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 정도로만 막연히 알고 있다. <운동화 신은 뇌>는 운동이 우리 몸에 왜 좋은 지를 과학적이면서도 아주 쉽게 그 이유를 설명하는 책이다.
KBS의 <생로 병사의 비밀> 300회 특집으로 이 책을 다루었다는 데, 나는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운동의 놀라운 효과
이 책의 원제는<SPARK: The revolutionary new science of exercise and the brain>인데, 번역 제목이 더 좋은 것 같다.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고착성의 요소에 부합하는 귀에 착착 달라붙는 강력한 메세지를 던지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고착성 요소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 글 참고.
책의 제목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내용도 알차다. 과학적 근거를 뒷받침하는 임상 사례와 함께 읽기 쉬운 문체로 작성되어 있어 건강 서적이지만 읽는 재미도 상당한 책이다.
운동의 놀라운 효과를 여는 첫 번째 장은 시카고의 네이퍼빌 203학군의 실험적인 0교시 체육 수업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네이퍼빌 203학군의 1만 9천명의 학생들은 정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 7시 10부터 가슴 띠가 달린 심장박동 측정기를 착용하고 달리기를 한다. 목표는 평균 심장박동 수치 185 이상(최대 심장 박동 수치의 80~90% 유지)이다.
이 실험의 목적은 정규 수업 전에 실시하는 운동이 읽기를 포함하는 여러 과목의 학습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운동의 결과는 놀라웠다. 38개국 23만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학과 과학의 학력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1999년 팀스(TIMSS) 시험에서 네이버필 학생들이 과학에서 1등을 차지했다. 수학에서는 싱가포르, 한국, 대만, 홍콩, 일본에 이어 6등이었다. 국가 전체로 보면 미국은 과학에서 18등, 수학에서 19등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네이퍼빌 203학군은 학업 성취도를 국제적으로 평가 받을 목적으로 독자적으로 참여하면서 우수한 학생들만 선발한 것이 아니라 중학교 2학년생의 97퍼센트가 참여하도록 했다.
네이퍼빌의 체육 수업은 1만 9천명의 학생들을 학업 향상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건강한 청소년으로 만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 가운데 과체중인 학생은 불과 3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전국 평균 과체중 비율은 당시 30%였다.
운동의 이러한 놀라운 효과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저자는 운동이 어떻게 뇌의 기능을 촉진해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지를 가소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신경가소성(神經可塑性, neuroplasticity)이란 학습이나 훈련을 통해 인간의 두뇌가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게 변화해갈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개념이다. 가소성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 글 참고.
운동이 학습 능력을 높이는 이유
네이퍼빌 203학군 학생들의 놀라운 성취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운동이 어떻게 뇌에 학습 능력의 토대를 마련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운동이 학습 능력을 높여주는 측면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 정신적인 환경을 최적화해서 각성도와 집중력을 높여주고 의욕을 고취시킨다.
- 신경세포가 서로 결합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여 결합을 촉진함으로써 세포 차원에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게 한다.
- 해마에서 줄기세포가 새로운 신경세포로 발달하는 과정을 촉진한다.
두뇌를 위한 운동 방법
- 2007년 트레드밀에서 35분 동안 보통 강도의 달리를 한 번만 해도 인지력의 유연성이 높아지는 주목할 만한 실험 결과가 나왔다. 보통 강도란 최대심장박동 수치의 60~70퍼센트를 유지하는 정도를 말한다. 인지력의 유연성이란 상투적인 대답을 그저 반복하는 것이 아닌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최고 인지 기능을 말한다.
- 일본에서 실시된 한 실험에서는 12주 동안 매주 두세 번씩 30분 동안 천천히 달리기만 해도 전전두엽 피질의 기능, 즉 최고 인지 기능이 향상되었다.
“유산소 운동과 여러 근육의 조화로운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운동을 함께 하는 것이 좋다.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할 때는 유산소 운동과 기술 습득이 필요한 복잡한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80쪽)
– 신경 발달 과 뇌 가소성 연구의 선구자였던 윌리엄 탤런트 그리노(William Tallant Greenough)
이 책을 읽으면서 딸이 최근 이룩한 두드러진 학습 성과가 달리기 덕분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딸은 작년 학기 초부터 달리기 동아리에 가입하여 매주 3~4일 달리기를 했다. 마라톤 대회도 벌써 몇 번 참가했다. 엊그제도 마라톤을 완주하고 매달을 자랑스럽게 톡으로 날렸다.

아들도 작년부터 동료와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한 이후 논문을 더 효율적으로 써내는 것 같다. 운동을 하면 사고와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의 분비가 늘어난다고 한다.
이 책에는 스트레스에 대하여, 불안보다 빨리 달리는 방법에 대하여, 우울증에 맞서 운동량을 늘리는 방법에 대하여, 현명하게 나이 먹는 방법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운동은 치료법보다는 예방법으로서 가치가 더 높다. 기분이 예전에 경험한 적이 없을 정도로 가라앉기도 전에 나타나는 우울증의 첫째 증후는 바로 수면장애다. 잠들거나 깨어나기가 힘들거나, 혹은 둘 다 힘든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수면장애가 발생하면 우선 활력이 줄어들고 만사에 흥미를 잃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당장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하루 일과표에 걷기나 달리기, 자전거 타기를 당장 포함시키는 것이다.(본문 187쪽)
<몰입>의 저자 황농문 교수는 “나는 몰입 시 잠이 오지 않는 부작용 때문에 매일 테니스를 쳤다. 그러면서 규칙적인 운동의 놀라운 정신적 효과를 경험하게 되었다.”며 “운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데 이 책이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는 추천의 글을 썼다.
그의 놀라운 몰입도 어쩌면 규칙적인 운동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운동화 신은 뇌>도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난 이후의 시간에 우리 뇌가 가장 창의적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몰입>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 글 참고.
정신과 뇌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운동이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인지하고 나면 운동화 끈을 당겨 매지 않을 수 없다.
운동을 하면 좋은 점
저자가 요약하는 운동을 하면 좋은 점은 심장혈 관계가 튼튼해지고 비만이 줄어들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면역체계가 강화되고 의욕이 강해지며 신경가소성이 촉진된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중 지금의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운동 효과는 스트레스 한계점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운동은 만성 스트레스로 생기는 과잉 코르티솔의 부식 효과를 억제함으로써 우울증과 치매를 방지한다. 운동을 하면 노화의 과정이 늦춰지고 손상된 부위를 복구하는 단백질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치매에 대해서는 아래 글 참고
또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신체는 더 많은 양의 운동을 해야 뇌가 원활하게 작동하다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뇌를 부식시키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건강에 좋다. 운동도 스트레스의 일종이다. 운동은 스트레스 한계점을 높일 뿐만 아니라 세포의 복구 기능도 활성화 시키기 때문이다. 뇌가 기능을 최고로 발휘할 때는 운동을 한 뒤다.
업무나 학습 성과가 오르지 않는다고 탓하기보다 우리 뇌가 운동화를 신을 수 있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운동화 신은 뇌>는 운동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하는 최고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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