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SF소설 슈퍼 리그, 전생을 기억하는 로봇, 2024년 출간 소설 중 최강 재미력

아내가 올해의 소설을 선정한다며 2024년에 출간된 소설 사오십 권을 며칠 동안 내리읽더니,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는 책 한 권을 추천해줬다.

이소영의 소설 <슈퍼리그>(사계절출판사, 2024년 10월 21일 초판 발행)였다. 읽어보니 재미있었다는 아내의 말에 공감이 갔다.

슈퍼리그 줄거리

2060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 청년의 취업 도전기를 다룬 SF소설이다. 2060년이라면 지금으로부터 불과 35년 후다. 그땐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2060년이니 기술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작가가 묘사하는 거리 풍경을 보면 어딘가 디스토피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 때가 되면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제대로 된 음식을 구하기가 힘들고, 하늘에는 별독수리 무리가 고도를 낮추어 인간의 사체를 찾아 선회하고 있다. 공원이나 길 거리에는 별독수리가 먹고 남은 시체가 널브러져있다. 그 잔해들은 로봇들이 치우지 못하고 인간이 치워야 한다.

그 잔해를 치우는 청소부 중의 한 사람이 이 소설의 주인공 ‘만주’이다. 만주는 서른 살이다. 고아였던 만주와 동생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만주의 동생은 기본 소득제에 지원했으나 뽑히지 않자 절망감으로 가출해 버렸다.

만주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유일한 방법은 천국의 문이라고 알려진 세계적인 대기업 ‘선화 그룹’에 입사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는 10대에서 60대까지 선화그룹에 취업하기 위해 목을 매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는 선화 그룹에 입사하기 위해 10년 동안 도전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이제 선화그룹을 포기하고 청소부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잠깐, 멀지 않은 미래에 기본 소득제가 실현될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2050년대의 대한민국에서도 기본 소득제는 여전히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나 또한 좀 실망했다. 기본 소득제에 대해서는 아래 글 참고.

이 소설은 미래의 기업들이 가상 현실로 인재를 뽑는다는 핵심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 중에서도 취업 도전자들이 세계적인 기업들의 가상 현실 시험에 참여하는 것을 ‘슈퍼리그’라고 부른다.

슈퍼 리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슈트와 고글을 착용하고 링 장을 대여해 가상 현실 속에서 입사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선화 그룹은 매년 칠월, 가상 현실 속에서 3차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을 합격자로 뽑는다. 만주는 10년 동안 3차는커녕 1차도 단 한번도 통과하지 못했던 것이다.

2050년대는 무인 택시도 등장한다. 각양각색의 택시가 있는데, 핑크 택시가 있는가 하면 스팸 택시도 있다. 만주는 열 번째 선화그룹 입사 시험을 실패하고 절망감으로 스팸 택시를 탔다가 돈이며 신상 정보며, 모든 걸 다 털리고 말았다.

빈털터리가 된 만주는 청소부로 일할 수밖에 없었으며 ‘마더하우스’에서 봉사하는 시간에 끼니를 때운다. 마더 하우스는 테레사 수녀의 정신 아래 죽어가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돌보아주기 위해 세운 집이다.

수녀 수산나가 마더하우스에는 일하며 슈퍼리그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걸 만주는 뒤늦게 알게 된다. 아니, 수녀가 왜 취업의 문을 뚜드릴까? 알고 보니 수녀들도 먹고 살기 위해 재취업을 장려하는 모양새다.

마더하우스에는 로봇들도 보조로 일하고 있다. 로봇 ‘쿠’는 동해에서 발생한 방사능 제거 작업을 하다가 용도가 다하여 의료 보조용 로봇으로 재활용되어 마더하우스에 일하고 있다.

쿠는 나중에 폐기 처분 판정을 받았으나, 만주가 불쌍히 여기 자신의 집으로 빼돌려 돌봐주게 된다. 이 시대 로봇들은 특정 용도가 다하면 리셋되어 다른 용도로 재활용된다.

쿠는 전생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로봇이었는데, 묘하게도 쿠는 요가 수행으로 전생을 알게 되는 로봇이 되었다. 쿠가 요가 수행을 하고, 마침내 ‘요가의 신’을 만나게 되는 일련의 장면들은 작가의 상상력과 문장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슈퍼리그>는 만주가 별독수리에게 살점을 뜯길 뻔했던 노인 ‘황삼우’를 마더하우스로 데려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결말(스포일러)

간략하게 줄거리를 압축 정리하면, 만주는 임종을 앞둔 황삼우에게서 가상현실 기기 ‘무토2058’ 스페셜 에디션을 받아 가상 현실 속에서 삼우를 사부로 모셔 선화그룹 트레이닝을 받고, 다시 선화그룹 슈퍼리그에 참여하여 우여곡절 끝에 3차까지 통과하게 된다.

가상 현실 속 1차 시험은 숲과 사막을 배경으로 사막의 부족 소년이 등장하고, 2차 시험에는 각 참가자들의 트라우마를 반영한 장소들에서 천사의 신탁을 받기, 마지막 3차 시험은 오아시스 아래 심해와 같고 우주와 같은 공간에서 테스트를 치르게 된다.

인상 깊었던 구절

이 소설에서는 1990년대를 향한 작가의 감성이 많이 배어있다. 이 시대에는 사람들이 가상 현실 기기로 ‘레트로 시리즈’에 접속해 그 시대의 장소와 문화들을 추억하는 것이 유행이 된다.

“창밖으로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보였다. 애쎄가 살짝 눈가를 훔쳤다. 저들이 그리워하는 건 어쩌면 이 감각이 아니었을까. 매끄럽게 달리는 것이 아닌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는 이 덜컹거림. 불현듯 낭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얼마나 사치스러운 시대였던가. 90년대는.”
– 184~185쪽, 청량리 역에서 경춘선을 타고가던 황우삼의 자동 저장된 기록

예를 들면, 레트르90에 접속하여 1990년대의 가상 현실 속에서 홍대 입구역 4번 출구로 나와 도라에몽 만화방에 모여 라면을 먹으며 그 시대의 분위기를 추억하는 식이다.

이 소설에서 끓는 점은 선화그룹의 임직원도 아니었던 황삼우가 선화그룹 임직원만 가질 수 있었다던 스페셜 에디션 ‘무토2058’을 손에 넣게 되었으며, 그가 어떻게 트레이닝 팩을 개발할 수 있었던가 하는 의문점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소설은 끝내 그 의문을 완전히 풀어주지 않고 미결로 남겨 두었다. 마지막까지 경찰이 쫓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 소설의 한계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점이 남아 있다. 선화그룹이 찾고 있는 천사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주인공 만주는 3차 테스트를 통과하며 천사로부터 씨앗 두 알을 어깻죽지에 심게 된다.

선화그룹은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 천사를 뽑기 위해 가상현실 속에 천사들을 투입하고 최종 합격자가 천사가 되게 하는 씨앗도 만들었다. 그 씨앗은 신탁이 실현되면 발아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천사의 역할은 AI 공장 감독원들을 감독하는 역할이다. AI가 상부에 거짓 보고를 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선화그룹의 총 감독원은 AI 대천사 미카엘이다. 나중에 주인공 만주는 미카엘의 진실과 거짓 여부를 감별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이러면 흐름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게 된다. AI가 뽑은 인간 천사가 AI를 감시하는 꼴이 된다. 그리고 만주가 받은 신탁은 동생을 죽이고 천사가 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동생은 자살을 했을 뿐이었는데 만주가 마침내 천사가 되었다는 암시로 끝난다.

주인공 만주가 가상 현실 속에서 3차 테스트까지 준비하고 도전하는 장면들은 아주 약간 <헝거 게임>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유치하고 늘어지는 설정도 있었다. 이 모든 약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잘 읽혔고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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