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와일더가 연출한 스릴러 영화 <이중 배상>(1944)은 할리우도 초창기 범죄 영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고 있는 영화입니다. 두 남녀가 돈의 덫에 걸려 서로를 유혹하여 파멸에 이르다는 이야기입니다.
빌리 와일더 감독과 주연 바버라 스탠윅
할리우드의 기념비적인 인물로 꼽히는 빌리 와일더가 연출한 이 영화는 감독으로서 만든 세 번째 영화입니다. “나는 돈 때문에, 그리고 여자 때문에 그를 죽였다. 나는 돈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여자도 얻지 못했다”라고 하는 의미심장한 주인공의 대사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영화는 주인공 월터가 녹음기에 범행의 전모를 녹음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스릴러 영화임에도 범인을 먼저 밝혀 놓고 시작하는 이 대담한 방식은 감독의 후기작 <선셋 대로>(1950)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빌리 와일더의 눈부신 필모그래피에서도 <이중 배상>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초기 필름 느와르의 고전으로 여전히 평가받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작가 제임스 M. 케인이 1930년 대에 쓴 소설인데요, 유감스럽게도 원작은 아직 우리나라에는 번역 출간되지 않았고 분석을 겸한 시나리오는 2021년 하북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10달러의 보험금을 노리고 완전 범죄를 노리는 유부녀 필리스를 연기한 바버라 스탠윅은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이자 모델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 비비안 리와 함께 1940년 대를 대표하는 여배우입니다.
필리스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바버라 스탠윅은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팜므파탈이라는 캐릭터를 이 영화에서 연기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럼, 월터가 왜 그를 죽였는지, 어떻게 하다 돈도 얻지 못하고, 여자도 얻지 못했는지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중 배상은 1944년도 제작된 흑백 영화이지만, 현대 영화와 견주어 조금도 꿀리지 않는 서사를 가진 범죄 영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이중 배상 기본 정보
- 원제 Double Indemnity/ 1944년
- 장르 범죄, 스릴러
- 국가 미국
- 러닝타임 107분/15세 관람가.
- 이 영화는 티빙에서 다시 보기할 수 있으며 웨이브에서는 단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출연진
- 감독 빌리 와일더
- 촬영 존 자이츠
- 주연 프레드 맥머레이, 바바라 스탠윅
- 조연 에드워드 G. 로빈슨, 포터 홀, 진 헤더, 톰 파워즈, 바이론 바
영화 이중 배상 줄거리와 결말
월터 네프(프레드 맥머레이)는 잘 나가는 보험 세일즈맨입니다. 건들거리긴 하지만 매년 보험회사 판매왕에 오르는 수완 있는 친구입니다. 어느 날, 월터는 디트리히슨 씨의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기 위해 그의 집에 들릅니다.
디트리히슨 씨는 집에 없고, 대신 그의 아내 필리스(바바라 스탠윅)가 그를 맞이합니다. 타월로 몸을 감싼 그녀는 아찔한 자태로 층계 위에 서 있는데요. 그 순간, 월터는 그녀의 요염한 자태에 그대로 감전된 듯이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봅니다.
월터는 바버라가 옷을 갈아입고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고, 필리스는 옷을 갈아입고 계단을 아주 천천히 내려옵니다. 소파에 앉아 발찌를 찬 늘씬한 다리를 하늘거리며 맞은편에 앉은 월터를 바라보는 필리스. 월터는 그날 이후로 모든 신경이 필리스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그녀를 다시 보고 싶었다. 더 가까이서, 그녀의 다리에 흘러내리는 듯한 발찌가 자꾸만 생각 났다”
– 월터의 나래이션
샤론 스톤은 <원초적 본능>을 찍을 때 이 영화의 바바라 스탠윅과 <보디 히트>의 캐슬린 터너를 연구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유명한 다리 꼬기는 어쩌면 바라라 스탠윅과 캐슬린 터너의 숨 막히는 관능미에 이미 표출되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두 번째 만남에서 필리스는 남편 몰래 사고 보험을 가입할 수 있는지 월터를 떠봅니다. 월터는 단칼에 “불법으로 사고보험이나 들어주는 파렴치한 놈으로 봤냐”라고 거절을 합니다. 적어도 그날은 월터의 도덕이 그녀의 유혹을 이겨낸 것입니다.
그러나 필리스는 집요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그의 아파트에까지 찾아와 사고 보험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이 늘어놓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석유 사업으로 돈을 많이 날렸을 뿐만 아니라 폭력까지 행사하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나날들이라고 말입니다.
결국, 월터는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5만 달러짜리 사고 보험을 남편 명의로 몰래 가입시키기로 하고, 그녀의 함께 남편의 사고사를 모의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1944년의 할리우드 영화가, 적어도 15세 관람가 영화만 아니었더라면, 이 대목에서 분명 그들은 영화 역사상 가장 관능적인 정사를 나눴을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이니 그런 장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거기다 월터는 한 발 더 나아가 보험금을 두 배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중 배상 보험 증권에 필리스의 남편을 가입시킵니다. 기차에서 사고사를 당하기만 하면 그녀가 받을 보험금은 두 배가 되는 것입니다. 10만 달러! 이는 그녀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1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사고사를 월터와 필터는 치밀하게 계획하고, 연습하는데요.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게 된 남편이 할 수 없이 기차 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드디어 완전 범죄를 위해 실행에 돌입합니다.
그들은 남들의 눈을 피해 마트에서 비밀리에 공모한 계획에 따라 필리스가 차로 남편을 기차역으로 데려다 줄 때, 미리 뒷좌석에 숨어 있던 월터가 남편을 목졸라 살해합니다. 남편의 시신을 차 뒷자석에 실은 채 그들은 역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월터는 미리 준비해 둔 목발을 짚고 그녀의 남편 행세를 하며 기차에 오릅니다. 월터는 기차가 출발하고 속도가 완전히 붙기 전에 기차에서 뛰어내려서 기다리고 있던 필리스를 만나 남편의 시신을 철로에 버리고 사라집니다.
월터가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만드는 과정을 영화는 세세하게 묘사합니다. 고전적인 필름 누아르의 묘미를 유감 없이 보여주는 장면들입니다.
월터는 훗날 녹음기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 자신의 발소리를 들었을 수 없었다. 그건 죽은 사람의 걸음걸이였다.” 월터는 왜 그런 감정이 들었을까요?
그런데, 월터가 다니는 보험 회사에는 26년 경력의 배테랑 조사관 키스가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G. 로빈슨이 연기한 보험 조사관 키스는 그의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나이인데요. 그는 의사, 검사, 형사, 판사, 그 모든 전문가를 합친 것보다 더 사건을 세밀하게 들여보는 사람이 보험 조사관이라고 말합니다. 에드워드 G. 로빈슨의 연기력도 불꽃이 아주 세게 튑니다.
키스는 월터에게 영업직은 이제 그만하고 자기처럼 내근직으로 옮겨 같이 일하자고 제안합니다. 키스는 월터의 멘토이자 아주 가까운 친구로 보입니다. 하지만 월터는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외근이 체질이라며 정중하게 제의를 거절합니다.
경찰은 디트리히슨 씨가 다리가 꼬여 떨어진 단순한 사고사로 처리했지만, 월터는 베테랑 키스의 뛰어난 조사력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키스가 사건의 실체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며 보여주는 추리는 빼어나기 그지 없습니다. 키스는 사고 당일 기차에서 월터를 만났던 증인을 확보하는 데 마침내 성공합니다. 역시 경찰보다 보험 조사관이 한 수 위인 것일까요?
키스는 증인과 월터를 대면시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서스펜스 넘치는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키스는 이미 월터가 공범임을 알았을 수도 있고,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월터는 그런 키스를 지켜보며 불안감이 증폭됩니다.
이중 배상 결말(스포일러)
월터는 디트리히슨 씨의 전처의 간호사가 바로 필리스였으며, 필리스가 전처를 죽게 했다는 말을 디트리히슨 씨의 딸로부터 듣게 됩니다.
월터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조망해보면 필리스를 사랑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돈을 탐한 것으로도 보이지도 않는데요. 다만, 그의 건들건들한 행동에서는 인생의 무료함이 묻어 날 뿐입니다. 필리스 역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돈과 로맨스는 어쩌면 핑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월터는 자신이 상황을 최종 정리하기로 하고 총을 감추어 그녀의 집을 밤늦게 찾아갑니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에게 총을 쏩니다. 총을 맞은 월터가 쓰러지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갑니다.
월터가 가까이에서는 잘 맞을 테니 다시 쏘 보라고 말하자, 그녀는 그만 그의 품에 안기고 맙니다. “왜 쏘지 않지?”라는 월터의 말에 그녀는 이렇게 답합니다.
“아니에요. 난 당신을 결코 사랑하지 않았어요, 월터, 당신도, 다른 어느 누구도요. 나는 심장 속까지 썩었어요.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당신을 이용했어요. 당신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는 줄 알았죠. 하지만, 방금 전에 당신을 다시 쏠 수 없었어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믿지 않아도 좋아요. 그냥 안아줘요.”
월터는 울먹이며 품에 안기는 그녀를 떼어내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총성이 두 번 울립니다. 영화 내내 월터는 그녀를 베이비이라 불렀었죠. “미안하지만 믿지 못하겠군. 굿바이 베이비”
그리고 월터는 출혈이 심한 몸으로 사무실로 가 녹음기(딕차폰)를 들고 사건의 전말을 녹음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오프닝에서 봤던 바로 그 장면입니다. 녹음은 여명이 터올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윽고 복도에서 듣고 있던 키스가 사무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월터가 말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이걸 왜 이해할 수 없었는지 알죠? 키스, 말해줄게요. 당신이 찾고 있던 남자가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당신하고 책상 하나만 사이에 두고 있을 정도로 가까이예요.”
(이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사를 둘은 주고받습니다.)
“그보다 더 가까웠어. 월터.”
(그러자 월터가 말합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영화 내내 월터는 키스의 담배에 불을 붙여줬는데, 이제는 키스가 월트의 담배에 불을 붙여줍니다. 엔딩 레디트가 올라가며 월터와 키스의 동성애가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에필로그
무료함은 인생 최대의 적이자 행복의 반대말이 아닐까요? 월터는 건성건성 일을 하고, 가볍게 사랑을 하곤 하는 삼십 대 독신남처럼 보입니다. 무료하고 따분한 나날에서 필리스와 같은 여자의 유혹은 견디기 힘든 것이 아니었을까요?
필리스 또한 남편의 전처를 간호하다 그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결혼생활은 따분해 보였습니다. 필리스는 <포스트맨은 벨은 두 번 울린다>의 코라의 캐릭터를 물려받은 듯합니다.
그런 여자에게 생각 없이 매력적인 월터와 같은 남자와의 만남은 스릴을 즐기기에 충분한 대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이렇게 사랑하는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는 그녀의 말에 월터는 믿지 못하겠다며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당겼습니다. 필리스의 진심은 너무 늦었고, 월터는 그 진심을 받아들이기에는 덫에 너무 깊이 빠진 뒤였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