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딕슨 카 ‘세 개의 관’ 맹점과 추리 소설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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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독서 통신으로 <세 개의 관>(2017)을 읽었다. 밀실 미스터리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존 딕슨 카의 추리 소설 중에서 대표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는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과 함께 추리 소설 황금기를 이끈 미국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특히 밀실 사건에 정통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번 독서 통신에서는 존 딕슨 카의 밀실 미스터리의 특이점과 추리 소설의 매력에 대해서 주로 썼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존 딕슨 카 추리 소설의 맹점

<세 개의 관>의 플롯 자체는 매우 흥미진진하였다. 서로에게 총을 쏘았으나 다른 장소에서 각각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하지만 사건의 아주 중요한 공간인 지하에 대해서 독자가 전혀 힌트를 받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존 딕슨 카는 독자가 사건을 해결하길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녀 애니가 매주 토요일에는 야간 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려주면서도 그녀가 지하에 산다는 것을 모르게 했다는 점은 명백히 작가가 사건 해결을 독점하고 싶어하는 심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세 개의 관 표지
세 개의 관 표지

만약 내가 그리모였다면 어땠을까 동생을 죽일 생각을 애초 하지는 않았겠지만 살인을 계획했다면 플레가 총에 맞았을 때 숨이 끊어졌는지 확인은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그리모가 이 부분을 놓쳤다는 건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된다.

작가는 애초부터 독자가 사건의 핵심을 알 수 없게끔 온갖 상황들을 다양한 인물들의 입을 통해 보여준다. 그런 점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도 당연한 전개 기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최소한 독자가 추리를 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사실, 이를테면 버너비의 집이 플레와 같은 건물에 있었다든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리모의 집에 지하실이 있었다든지 하는 부분은 해결 과정이 아니라 추리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여주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전에는 추리 소설은 한번 읽고 끝이었기 때문에 다시 복기 한다든가 책을 다시 훑어면서 사건 과정을 살펴본다든가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추리작가와 독자의 위치가 상당히 불평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논리적인 사고를 하면서 읽게 되는 추리 소설이 오랜만이라 신선한 독서 경험이었다.

세 개의 관의 밀실 사건 특이점

밀실 강의편에서 펠박사는 밀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살인 방식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첫째 실제로 밀실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범행이 이루어졌지만 살인범은 그 방에서 탈출하지 않았다. 사실은 살인범은 그 방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살인이 아니라 여러 우발적인 일이 이어져 우연히 살인처럼 보이는 경우, 본질은 살인이지만 피해자가 자살하거나 사고사를 당한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몬 경우, 방안의 평범한 가구 같은 곳에 보이지 않도록 미리 설치해둔 기계적 장치에 의한 살인의 경우, 자살이지만 살인처럼 보이도록 의도한 경우, 살인이지만 착각과 연기에 의해 문제가 발생한 경우, 밀실 밖에 있던 살인범이 저지른 살인이지만, 살인범은 밀실 안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경우, 살인 사건이지만 다섯 번째와 정확히 반대 효과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문이 안쪽에서 잠긴 것처럼 보이게 조작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몇 가지 예를 들었다. 열쇠 구멍에 여전히 열쇠를 꽂아둔 채 조작하는 경우, 자물쇠나 빗장은 건드리지 않고 그저 문의 경첩을 제거하는 경우, 빗장을 조작하는 경우, 걸쇠를 조작하는 경우 등 착각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세 개의 관>의 밀실 살인 사건은 위의 유형이 섞여 있는 경우다. 그리모는 동생 플레를 죽이고 자살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건물의 지붕과 같은 층에 있는 친구의 집을 활용해서 플레의 방에 흔적 없이 들어가서 플레를 향해 총을 쏘고 그의 손에 쥐어주고 다시 지붕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플레는 죽지 않았고 총을 가지고 건물 밖으로 나와 그리모를 찾고 있다.

한편 그리모는 플레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건물 1층으로 내려가서 상황을 살피려고 입구를 나선다. 이때 플레는 그리모에게 총을 쏘고 자신은 총 맞은 후유증으로 쓰러져 죽음을 맞는다.

그리모 역시 치명상은 아니어서 상처를 손수건으로 막은 채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플레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지하를 지나 1층에서 종이 가면을 쓰고 친구의 흉내를 내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이때 1층에서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다.

미리 계획한 대로 뒤몽 부인의 도움과 미리 준비한 큰 거울을 이용하여 플레가 자신의 방으로 왔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게 만들고 폭죽을 터뜨려 사람들이 플레가 쏜 총 소리로 오인하게 했다. 하지만 그리모는 무거운 거울을 움직이며 과도하게 힘을 쓴 탓에 폐가 찢어져 버려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추리 소설을 읽게 되는 이유

한때 애거서 크리스티와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 소설을 읽던 때가 있었다. 대학교를 포함한 학창 시절 때 이야기다. 현재 우리 집에서 추리 스릴러 소설을 열독하는 사람은 대학원생 아들이다. 나는 힐링서나 연애 소설을 대체로 좋아한다. 마음을 녹여주는 것들이다. 최근에는 쇼펜하우어 책과 명상에 관한 책을 읽고 부분 필사까지 했다.

추리 소설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 답은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세 개의 관>에서 펠 박사가 말했듯이 트릭인 줄 알면서도 마술 공연을 보러오는 관람객의 기분과도 비슷할 것 같다. 보면 놀랍고 신기해서 탄성이 절로 나오는 기분으로 추리 소설도 읽지 않을까.

소설 초반부에 독자를 헷갈리게 만드는 장치, 이를테면 존재하지 않는 그리모의 막내동생을 ‘앙리’라고 이름까지 붙여주면서 거의 살아있는 사람 취급을 한다든가, 그리모의 딸 로제티나 그외 등장인물에게 하나하나 혐의점을 만들어 가능성을 열어둔다든지 하는 장치들을 통해 독자는 점점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작가는 의도적으로 독자의 추리를 방해하기 위해 내용을 추가한다든지, 또는 빼는 식으로 책을 써내려 간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살짝 허탈한 기분을 갖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책을 계속 읽어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알쏭달쏭한 분위기를 끝까지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스토리에 대한 부분은 여기까지다.

우리가 추리 소설에 열광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설록 홈즈 시리즈에서 찾는다면 두뇌 회전이 빠른 탐정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셜록 홈즈는 2009년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가 출연한 영화와 BBC에서 만든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한 셜록 시리즈가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였다.

두뇌가 명석한 남자 주인공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지나가는 행인의 행색만 보고도 직업과 출신지 등 온갖 경력을 추리해내는 셜록 홈즈의 모습을 본다면 그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번쯤 아동기에 탐정을 꿈꾸게 되는 것도 이런 맥락인 것이다.

추리 소설의 매력을 마지막으로 하나 더 꼽자면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덮고 나면 탄성를 지르거나 상당한 허탈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도 반전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많다. <숙명>이나 <백야행>도 반전의 결과를 보면서 독자는 어떤 부분을 놓친 걸까 다시 읽고 읽은 것을 복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호러/판타지가 섞인 소설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은 사고로 아내의 영혼에 딸의 몸을 갖게 되는 소재다. 이처럼 추리 소설의 다양한 변형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또 다른 요인이 된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추리 소설인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인기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냉철하게 사건을 추리하는 탐정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야 말로 추리 소설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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