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크리스토퍼 ‘풀의 죽음’ 줄거리, 에코 아포칼립소를 다룬 SF 고전 소설

1950년대 세계는 중국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바이러스 창궐로 대 기근과 폭동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영국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한다.

존 크리스토의 <풀의 죽음>은 존 커스턴스 가족이 런던을 탈출해 형 데이비드가 기다리는 안전한 영국 북서부 블라인드 협곡에 당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다. 북파인더는 2007년, ‘영국 최고의 절판본 10’에 이 소설을 선정했다.

등장인물

  • 존 커스턴스 : 공학자로 아내 앤과 런던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딸 메리와 아들 데이비는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다.
  • 데이비드 커스턴스 : 존의 형으로 웨스트모어랜드 블라인드 협곡 안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농지를 상속 받아 농장을 하고 있다.
  • 로저 버클리 : 존의 옛날 군대 친구로 냉담한 성격의 소유자. 아내 올리비아와 아들 스티브(9살)가 있다.
  • 피리: 60세쯤 되어 보이는 총포상으로 과거 중동 곳곳에서 광물을 탐사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저격수급의 사격 실력을 갖추고 있는 그는 망원 렌즈를 부착한 사냥용 소총을 지니고 다닌다. 아내 밀리센트는 그보다 스무 살 정도 어려 보인다.
  • 충리(Chung_Li) 바이러스 : 볏과 식물을 공격해 괴사시키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충리 바이러스로 중국 내에서만 2억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풀의 죽음 줄거리

1956년에 출간된 존 크리스토퍼의 SF소설 <풀의 죽음>의 시대 배경은 1958년이다. 1950년대 영국은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푸른 잔디가 깔려있는 집에서 중산층들이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는 시대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 존 커스턴스는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공학자가 되어 런던에서 살고 있다. 십 대의 딸과 아들은 기숙학교에 보내고 그는 교양 있는 아내 앤과 중산층의 여유로운 일상을 런던에서 보내고 있다.

군대 친구였던 로저 버클리와는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로저는 영국 정부 생산부에서 공보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는 공무원이다. 이들 부부는 초록 잔디밭에서 차를 즐기고 방학이 되면 매주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갔다.

그런데 영국의 이러한 평화롭고 여유로운 일상에 균열을 일으킬 흉흉한 소문이 지구 반대편 중국에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볏과 식물을 괴사시키는 충리(Chung_Li)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창궐하여 식량 부족 사태를 일으켰고, 이로 인하여 대규모 기아와 폭동이 일어나 최소한 2억 명 이상의 중국인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뉴스였다.

겨울 방학을 맞아 존 커스턴스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 북부 웨스트모어랜드 블라인드 협곡 안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형 데이비드를 찾아갔을 때, 형은 동생 부부에게 농장에서 1년 만 같이 농사를 지으며 같이 있자고 권유했다.

형이 그렇게 권한 이유는 충리 바이러스가 영국에 상륙하더라도 감자 농사를 지으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길이가 5킬로미터에 이르는 블라인드 협곡은 폭은 아무리 넓은 곳도 800미터 밖에 되지 않았고 계곡 입구는 더 좁아서 폭동이 일어나더라도 쉽게 막을 수 있는 천연 요새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존은 설마 그런 일이 영국에서 일어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런던에 돌아온다. 하지만 이듬해가 되자 사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정부와 연구진이 동위원소 717를 개발하여 벼를 공격하는 충리 바이러스 4가지 변종 모두를 억제하는데 성공했으나 모든 풀을 뜯어먹는 다섯 번째 변종이 발견되고 대규모 기와와 폭동 사태가 중국을 넘어 인도와 인도차이나 반도, 일본과 소련 동부 지역과 파키스탄까지 번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 로저가 총리 비서 해거티에게서 들었다며 도저히 믿기 어려운 소문을 존에게 전한다. 영국 정부 최고위층은 4천 5백만명이 사는 잉글랜드에서만 최소한 3천만 명이 죽어 없어져야만, 나머지가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소도시에는 원자 폭탄 한 개씩, 리버풀과 버밍엄과 글래스고와 리즈 같은 대도시에는 수소 폭탄을 한 개씩, 그리고 런던에는 수소폭탄을 두세 개쯤 떨어뜨리는 거지. 그 정도로 무기를 남용해도 아무 상관은 없을 거야. 어차피 앞으로 한동안은 필요하지도 않을 거니까.”(92쪽, 로저가 술집에서 존에게 은밀하게 전하는 정보 중에서)

그러기 위해서는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런던을 비롯한 인구밀집 지역 외곽에 군대를 배치하여 도로를 차단할 거라는 거였다. 존과 로저는 그날 바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런던을 빠져나가 존의 형이 운영하고 있는 농장으로 떠나기로 결심을 한다.

존과 로저는 그때부터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출발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체가 되었다. 존은 아내가 필수적인 가재도구를 챙기는 동안 베커넘 기숙학교에 있는 딸 메리를 데리고 와야 했다. 로저는 로저대로 자동차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수리를 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고 만다.

존의 일행이 런던을 빠져 나가기 위해 외곽 도로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검문을 하고 있었다. 주요 도시간의 이동 제한 조치가 벌써 시행된 것이었다.

“현재 유포되는 유언비어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각별히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전체적인 상황을 확고히 통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식량 재고가 넉넉한 상황입니다.”(105쪽, 라디오 방송)

로저의 제안에 의해 둘은 동전 던지기로 존이 일행의 지도자가 되기로 하고, 둘은 총기를 구하기 위해 다시 런던 시내 총포상으로 향한다. 소문을 들은 총포상 ‘피리’ 부부도 행동을 그들과 함께 하기로 하고 합류한다.

자정의 어둠을 틈타 런던을 벗어나기로 한 존 일행은 런던 외곽의 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하사 한 명과 병사 두 명을 피리의 출중한 사격 솜씨로 처치하고 스테이폴포드 인근 숲에서 야영을 한다.

다음 날, 존은 하트포드셔 기숙학교에 아들 데이비를 데리러 간다. 친구 스폭스도 같이 데리고 가자는 데이비의 말에 존의 아내 앤이 반대를 하지만, 로저의 아내 올리비아가 책임을 지겠다며 스폭스도 일행에 합류시킨다.

이제 10명이 된 존의 일행은 자동차 세 대에 나누어 타고 경비가 삼엄한 대도시를 피하기로 하고 리즈를 우회하는 시골 마을 길로 향한다.

피리의 자동차와 로저의 자동차가 앞서가고 존의 자동차가 시골 마을 철도 건널목을 통과할 즈음 차단기가 내려왔다. 이 마을 사람들이 자동차 세 대의 행렬을 보고 두 대는 통과 시키고 한 대를 잡아 약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존은 쓰러졌고 아내 앤과 딸 메리는 그들에게 강간을 당했다. 스폭스의 기지로 도망간 그들을 추적할 수 있었고, 이번에도 피리의 뛰어난 사격 솜씨로 그들을 제압했고 존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앤이 로저로부터 총을 받아 마지막 살아남은 강간범 하나를 살해했다.

영국 북부로 향햐는 존의 일행은 가는 길에 정부를 장악한 시민 비상 위원회의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된다. 시민 비상 위원회의 방송에 의하면 원자 폭탄을 터트리려는 계획으로 웰링이 새 총리에 오를 수 있었으며 저 짐승 같은 내각의 각료들은 이미 한 공군 기지로 도피하였다는 것이었다.

존의 일행이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우어강변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 매섬에서 차량 세 대를 그 마을 사람들에게 약탈 당한다. 이제 영국은 국가의 법은 말할 것도 도덕이나 양심은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매섬에서 블라인드 협곡까지는 약 130~ 140킬로미터로 걸어서 가는데 사흘 걸린다. 존의 일행은 데이비드가 운영하는 농장이 있는 블라인드 협곡에 도착하기까지 야만적이고 비참한 일들을 연이어 겪는다.

풀의 죽음 결말(스포일러)

존의 일행은 가는 길에 폭도들을 대비하여 불침번을 정하여 야영을 한다. 존이 불침번을 서고 있을 때 피리의 젊은 아내 밀리센트가 그를 유혹을 했고, 그 광경을 목격한 피리가 그녀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존의 일행은 어느 외딴 마을 작은 농가를 습격하여 부부를 죽이고 그들의 딸 제인은 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올리비가 불쌍히 여겨 그녀를 거두게 된다. 피리는 그런 제인을 아내로 선포하게 된다.

라디오에서는 서유럽 각국의 왕족과 정부 고위층이 미국과 캐나다로 망명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존은 도상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을 규합함으로써 더 큰 세력의 지도자가 되어 블라인드 협곡에 당도한다.

형 데이비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협곡에 들어와 있어 존의 아내와 아이들만 받아줄 수 있는 형편이라고 양해를 구한다. 무리를 저버릴 수 없었던 존은 어둠을 틈타 블라인드 협곡을 공격하고 그 과정에서 피리와 형 데이비드는 사망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할 일이 잔뜩이야.” 그가 말했다. “이제 도시를 세워야 하니까.” 죽은 형의 얼굴에 입을 맞춘 존이 아내 앤에게 한 말이었다.

작품 해설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존 크리스토퍼의 SF소설 <풀의 죽음>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다. 좁게는 에코 아포칼립스(생태 종말론)이자 식물 종말론에 속한 작품이다.

작가 존 크리스토퍼는 존의 일행이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런던을 탈출하는 과정을 통해 정부는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고, 우리의 인간성은 과연 어디까지 파괴될 수 있는지 그렸다.

사실, 대재앙을 맞아 영국 정부가 원자 폭탄을 터트린다는 계획은 너무 무책임하고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공교롭게도 12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령을 보고서는 <풀의 죽음>의 설정이 아주 말이 되지 않는 터무니 없는 설정이라고 더 이상 비난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야만적인 극한 상황을 맞아 모두 극적인 변화를 보인다. 그 중에서 압권은 존의 아내 앤이 아닐까 한다.

앤은 서방 정부가 기근에 허덕이는 중국에 대하여 식량 원조를 머뭇거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야만적일 수 있느냐며 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아들의 친구 스폭스와 부모가 살해된 제인을 거두는 것에 대해서는 단지 자기의 일거리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상한 꿈을 꿨다. 야영 과정에서 딸 메리가 무리의 청년들에게 또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안 존이 청년 하나하나를 조사하여 누가 강간을 했는지 밝힐 것인가, 아니면 조직의 규합을 위해 묵과해야 되는지 아빠와 조직의 우두머리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아내 앤과 싸우는 장면이었다. 물론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장면이었지만 행간에서 존의 그러한 고민이 많이 보였다.

이 소설은 극한의 상황에 몰린 인간 심리를 아주 깊게 파고들어 그 본성을 선연하게 드러냈다. 정부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거짓말을 일삼을 수 있으며 평화로운 일상을 한 순간에 앗아갈 재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풀의 죽음>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켜켜이 쌓여있는 충격적인 SF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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