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르>(2011)는 배우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 쥘리에트 비노슈)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찾아본 오래된 영화입니다. 감독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가 연출한 여자에 의한, 여자들을 위한, 여성의 삶을 조명한 정통 프랑스 예술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엘르 소개
요즘 영화와는 결이 조금 다른 아주 조용한 영화입니다.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출판사 칼럼니스트로 살아가는 안느(줄리엣 비노쉬)가 두 명의 여대생을 인터뷰하면서 여자로서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안느는 전형적인 워킹맘입니다. 남편과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그리고 게임에 빠져 있는 어린 아들을 뒤치덕꺼리 하고, 인터뷰 대상은 매춘을 하는 두 여대생입니다. 아마도 안느가 출판사 엘르에 제안한 기획기사인 것 같습니다. 안느가 1만 2천 자에 맞추어 기사를 작성해 가고 있는데, 마감 하루 전에야 출판사 측에서 8천 자로 줄여 달라고 하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가정과 일에 시달리면서 두가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안느와, 스스로 돈을 벌면서 학업을 해야 하는 여대생인 롤라(아나이스 드무스티에 분)와 알리샤(조안나 쿠릭 분)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면 줄거리를 따라가는데 애를 먹고,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영화입니다.
영화 제명으로 쓰인 ‘엘르 elle’는 프랑스어로 그녀라는 뜻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잡지 ‘elle’를 뜻하는 중의적으로 표현으로 쓰였습니다. 묘하게도 폴 버호벤이 연출하고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으로 출연한 동명의 스릴러 영화도 있습니다.
기본 정보 및 출연진
원제 elles, 2011, 프랑스
개봉 2012.10.11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96분
감독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출연 줄리엣 비노쉬, 아나이스 드무스티에, 요안나 쿨릭, 루이스 도 드 렝퀘셍
* 이 영화는 현재 웨이브와 티빙에서 다시 보기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엘르 줄거리와 결말
이 영화의 오프닝은 꽤 자극적입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입으로 무언가를 하는 야릇한 장면이, 흑백이긴 하지만, 느닷없이 나오니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어지는 장면은 아침인 듯한 시간에 안느가 책상에서 졸고 있는 듯하고, 아들이 타박을 주며 엄마를 깨우는 것으로 보아 오프닝 장면은 안느가 상상한 장면임을 유추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안느가 남편과 두 아들의 아침과 등교를 부산하게 도운 후, 남편의 직장 상사들을 위한 저녁 식사 준비를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 영화 또한 다음 날 아침, 네 가족이 평화롭게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안느는 두 아이 양육과 남편의 뒤치닥꺼리로 찌들어있는데 정작 남편은 아내를 배려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반면, 두 여대생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안느는 여자라는 인생과 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활력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안느의 감정 변화는 종종 교차 편집된 상상의 장면을 통해 나타나면서 보는 이를 자극합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매춘을 하는 두 여대생은 그 일을 그렇게 두려워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는 눈치입니다. 오히려 즐기기도 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해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남자들이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여대생들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대생들이 아주 편하게 돈을 벌기 위해서 남자들을 이용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녀들의 아빠 나이와 비슷한 그들이 부모가 감당하지 못한 그녀들의 학비를 대주고, 옷도 사주고, 아파트까지 사주기도 하니까요.
두 여대생이 적나라하게 들려주는 매춘 행위들은 일상에 찌든 안느의 무의식에 잔잔하게 파문을 일으키며 차츰 안느가 그녀들을 이해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마침내, 저녁이 되어 안느는 집에서, 남편의 말에 의하면 섹시한 옷을 차려입고 남편의 직장 상사들을 모시고 저녁을 접대합니다. 그러나 남편과 직장 상사들의 대화는 안느의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밉살스럽기 그지없는 그들의 얼굴이 안나의 눈에 여대생들이 말했던 매춘을 하는 남자들의 얼굴로 오버랩 됩니다.
결국, 안느는 참지 못하고 식사 자리를 튀쳐나가 남편의 직장 상사들이 떠난 다음에야 집에 돌아옵니다. 그리고 안느는 두 여대생이 그랬던 것처럼 남편에게 입으로 해주려 시도하지만 남편은 거부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다음 날 아침, 화사한 햇살이 비추는 거실에서 네 식구가 미소를 주고받으며 아침을 먹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비록 남편에게 이해를 받지 못했지만 안느는 평화로운 가정을 지키기로 결심한 듯합니다.
여자의 인생과 결혼에 대하여 환멸을 느낀 ‘보바리 부인’은 파멸해갔지만, 우리의 안느는 다행히(?) 삶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듯한 결말을 보입니다.
줄리엣 비노쉬가 아니었다면, 안느라는 캐릭터를 영화에서 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일과 가사에 매몰된 한 중년 여성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춘을 하는 두 여대생을 만나 이해하는 감정을 단 하루라는 시간 안에 표현해 내기에는 힘든 일이니까요.
줄리엣 비노쉬 프로필
1964년생으로 안느 역을 맡은 줄리엣 비노쉬는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 영화제(사랑을 카피하다)와 베니스 국제영화제(세 가지 색: 블루), 베를린 국제영화제(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여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배우입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명실공히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습니다.
국내에는 <퐁네프의 연인들>(1991)로 잘 알려진 줄리엣 비노쉬는 1964년생으로 레오 카락스 감독의 <나쁜 피>(1986)로 예술 영화계에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줄리엣 비노쉬는 레오스 카락스와 1986 ~ 1991년까지 동거를 했고, 결혼은 하지 않고 앤드루 할레와 아들을 두었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키스>의 상대역이었던 10살 연하 브누와 마지멜 사이에도 딸을 두었습니다.
이 영화의 안느와 줄리엣 비노쉬의 삶과는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그녀는 결혼에 구속되지 않고 여성으로서의 삶을 추구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엘르의 속편이 제작된다면(그럴리는 없겠지만) 보다 진취적으로 변한 안느를 만나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