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진화 요약 독후감, 남녀의 짝짓기 전략

주말 동안 재미나는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스 버스가 쓴 <욕망의 진화>(전중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7)라는 책입니다.

책이 워낙 두꺼워 이틀 걸려 다 읽었네요. 총 591페이지입니다. 이 책은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에 대해 남녀가 갖고 있는 욕망을 진화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책입니다.

저자 데이비드 버스 소개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1981년 1981년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교와 미시간 대학교에서 일했으며 현재 텍사스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재직 중이라고 합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성(性), 감정, 그리고 인간의 짝짓기 전략 등이며 ‘인간 행동과 진화 심리학 학회(The Human Behavior and Evolution Soceity)’의 의장으로 있습니다.

저서로는 이 책 <The Evolution of Desire>과 교과서인 <진화심리학>, 그리고 <성과 권력 과 갈등>, <위험한 열정 질투>, <이웃집 살인마>, 등이 있습니다.

욕망의 진화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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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진화 주요 내용 요약

이 책은 1994년 발간된 초판 이래 행해진 연구들에서 밝혀진 사실들을 반영하여 펴낸 개정판입니다. 이 책의 번역은 경희대학교 전중환 교수가 맡았습니다. 그의 박사 학위 지도 교수가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버스입니다.

인간의 성 전략을 연구하기 위해 저자를 포함한 전 세계 50명의 공동 연구자들이 6개 대륙과 5개 섬에 위치한 37개 문화의 10,047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그 설문 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담은 것이 <욕망의 진화>입니다.

이 책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차를 보면 이 책의 성격을 대충 가늠해 보실 수 있습니다.

짝짓기 행동의 기원, 여자가 원하는 것, 그리고 남자가 원하는 것, 하룻밤의 정사, 배우자 유혹하기,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성적 갈등, 파경, 시간에 따른 변화, 남녀의 화합, 여성은 은밀한 성 전략, 인간 짝짓기의 미스터리
– 이 책의 목차

여자가 남자를 고르는 기준

저자 데이비드 버스는 여성이 남성보다 까다롭게 배우자를 고른다고 전제합니다. 남성은 한 번 성교하는 것 만으로 부성(父性) 투자를 다할 수도 있지만 여성은 그 한 번의 성교 때문에 다른 짝짓기 기회가 완전히 봉쇄될 뿐만 아니라, 임신 기간 동안 고통스러운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출산한 후에도 수유라는 짐은 여성에게만 부과되고, 3~4년 동안 그 의무가 계속된다는 점을 첫 번째 이유로 꼽습니다.

즉 여성은 처음부터 투자량이 많은 성이기 때문에 남성이 보기에는 가치 있고 희귀한, 일종의 자원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식을 임신하고, 낳고, 돌보고, 먹이고, 보호하는 여성의 행동은 매우 귀중한 번식 자원이기 때문에 여성성은 아무 남성들에게나 가리지 않고 선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수십 년 동안 그 대가를 고스란히 여성 혼자서 치를 수도 있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배우자를 매우 까다롭게 고르는 조상 여성들이 선택되었으며,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엄청나게 변했을지언정 여성들은 아직도 태곳적 성 심리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떤 남자를 선택해야 할까요? 배우자를 잘 선택하려면 남성들의 자질을 하나하나 평가하고 그 각각에 알맞은 가중치를 부여하여 최종 판단을 이끌어내는 심리 기제가 있어야 하는데요.

저자는 한 남성을 택할지 거부할지 최종적인 판을 내릴 때 여성들이 가장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자질 가운데 첫 번째는 경제적 능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원을 제공해 주는 수컷에 대한 암컷의 선호는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계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널리 퍼져 있는 배우자 선택 기준의 하나 인데요. 일단 자원이 있어야 아이를 낳아도 굶어 죽지 않고, 자원이 있어야 자신과 아이를 오랫동안 부양할 수 있으니까요.

여성들은 자기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정말로 경제적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단서로, 그 남자가 장차 높은 사회적 계층으로 올라설지 여부를 알려주는 성격적 특성과 운동 능력이나 건강 같은 신체적 특징들을 활용한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얼마나 얻고 있는가 같은 평판에 대한 정보도 하나의 단서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단서는 남자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경제적 자원이겠죠?

남자들이 데이트를 할 때 멋진 슈트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잘난 척하며 은근히 부를 과시하는 전략은 진화적 관점에서는 아주 훌륭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성들이 원하는 두 번째 자질로는 사회적 지위를 꼽았습니다. 전통적인 수렵-채집 사회를 보면 우리 조상 남성들 사이에는 명확히 규정된 지위 서열이 존재했고, 서열의 꼭대기에 위치한 이들은 자원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바닥에 위치한 이들은 자원에 목 말라 허덕였으니까 당연히 사회적 지위가 그 남자가 자원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강력한 단서로 작용했다는 설명입니다.

세 번째 단서는 남자의 나이입니다. 젊은이들이 나이 든 성인 남성만큼 평판이나 지위 혹은 위치를 차지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나이 든 배우자를 더 선호한다는 설명입니다. 또한 저자는 나이 든 남성이 더욱 성숙하고, 더 안정적이며, 자원을 공급하는 일에 대해서도 더 성실하기 마련이라는 해석을 덧붙입니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요. 연하의 남성이지만 상류층 집안 자제이거나 유산을 곧 물려받을 앞길이 탄탄하거나 등등 그가 높은 지위와 많은 자원을 얻으리라는 강력한 단서가 있으면 연하도 오케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 모든 자질은 한 가지로 귀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이 자기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자원을 획득하고 통제할 수 있는 남성의 경제적 능력이 그것입니다. 자원을 소유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자원을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획득해서 제공해 주는 자질을 가진 남성을 필요로 하는데요.

그래서 여성들이 원하는 자질은 쭉 이어집니다. 그 네 번째는 야망과 근면성입니다. 다섯 번째는 신뢰성과 안정성, 여섯 번째는 지능, 일곱 번째는 적합성, 여덟 번째는 몸집과 힘, 아홉 번째는 건강, 마지막으로 열 번째가 사랑과 헌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과 헌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들지만요.

여성이 원하는 자질이 너무 많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 책을 읽어본 후에 여성들이 왜 그렇게 꼼꼼하게 따져야 하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 적합성은 우리말로 하면 궁합쯤 되겠네요. 그렇다면 남자는 어떨까요?

남자가 여자를 볼 때 제일 먼저 보는 곳

우리 조상 남성들은 번식하기 위해 여성을 임신시키기만 하면 끝이었기 때문에 어떤 여자에게도 헌신하지 않는 일시적 섹스 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지만, 자연선택은 남성으로 하여금 결혼을 욕망하게 하고 오랜 기간 동안 한 여자에게 기꺼이 투자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대다수 조상 여성들은 성 관계를 맺기 전에 남성에게 계속적인 헌신을 증명할 믿을 만한 표시를 요구했을 것이므로 여성에게 결코 헌신하려 하지 않은 남성들은 짝짓기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단기적인 짝짓기 전략만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남성들은 자식들의 생존 및 번식적 성공이 크게 저하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진화적 압력이 수천 세대에 걸쳐 작용하면서 결혼을 택한 남성들이 점점 더 후대에 많은 자손을 남기게 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어떤 자질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일까요? 남자들이 원하는 1 순위는 유감스럽게도 젊음입니다. 여성의 번식 가치는 20세 이후에는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꾸준히 감소하므로 남성은 이 단서에 초점을 맞춘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두 번째는 신체적인 매력입니다. 조상 남성들이 여성의 번식 능력을 가늠하기 위해 활용한 단서들은 현대 남성들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우선 도톰한 입술, 깨끗한 피부, 부드러운 살결, 맑은 눈,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 탄력 있는 근육 등과 같은 신체적 외양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증거로서 밝고 경쾌한 걸음걸이, 생기 넘치는 얼굴 표정, 충만한 에너지 같은 행동적 특질이 있다. 젊음과 건강, 곧 번식 능력에 대한 이러한 신체적 단서들이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이룬다.
– 본문 117쪽

그리고 저자는 신체적 매력의 단서로 대칭적인 얼굴과 건강 및 번식 상태를 잘 나타내주는 허리 대 엉덩이 비율 등과 같은 잡다한 단서들을 장황하게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는 순결과 정절입니다. 조상 남성들은 아내가 낳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확인할 길이 없었으므로 그의 아내가 정말로 오직 그에게만 정절을 지킬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이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정조를 암시해 주는 단서들에 둔감했던 남성들은 애써 얻은 아내의 부모 투자를 다른 남자의 자식들을 기르는 데 써 버리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그들의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후세에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니까요. 정조에 민감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현대의 남자들이 여성의 순결과 정절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상 열거한 여자가 원하는 남자의 자질과 남자가 원하는 여자의 자질은 어느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전 세계 50명의 공동 연구자들이 6개 대륙과 5개 섬에 위치한 37개 문화의 10,047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거네요.
여자에게는 자신과 아이를 장기간 동안 지원해 줄 든든한 경제력이 있는 남자가 1 순위이고,
남자에게는 자신의 아이를 낳아줄 젊고 건강한 여성이 1 순위이네요.

사실, 저자는 이 추론 하나로 이 책의 끝까지 논의를 이끌고 갑니다.

<욕망의 진화>는 계속해서 하룻밤의 정사에 대한 고찰과 배우자 유혹하기 전략, 성적 갈등과 파경, 남녀의 화합, 여성의 은밀한 성 전략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 가설들을 쌓아나갑니다.

저자는 인간의 진화를 이해하려면 물리학자가 블랙홀을 상상하는 것처럼 진화심리학자도 시공을 뛰어넘는 거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요. 그러한 상상력에 기대 저자는 나머지 이야기들도 길게 이어갑니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요약할 가치를 별로 못 느껴 생략합니다.

욕망의 진화 독후감

이 책을 1/3쯤 읽고 있을 때 아 이 책, 옛날에 읽었던 책이었구나 하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확실히 내 뇌가 도둑맞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기억력 감퇴가 심하네요. ㅠ 기억력을 강화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해 보세요.

아무튼 이 책을 다 읽은 소감은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은 것 같은 기분, 킨제이 보고서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자는 과학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설문 조사 외에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되는 주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위의 요약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현대 모든 문화의 남자들이 여성의 정절에 집착한다고 해서 조상 남성들도 그러한 성정을 갖고 있었다는 진화적인 고리는 제시하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저자는 현대 남녀의 연애 심리는 그러했음을 암시한다, 상징한다, 추측된다, 이러한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연애와 결혼 심리에 대한 진화적인 설명을 아주 그럴듯하게 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진화심리학에는 소위 ‘배고픈 유전자 가설’이란 게 있었습니다. 항상 굶주림에 시달리던 조상 인류가 고열량 음식을 선호하는 유전자를 강화했다, 영양 공급이 충분한데도 현대인이 과도하게 영양 섭취를 하는 건 그 유전자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성인병이 증가하게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현대 유전학이 고열량을 선호하는 유전자에는 자연선택의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체질량을 낮추는 유전자에서 자연선택 흔적이 더 많이 발견된다는 일관된 연구 결과를 내 놓으면서 배고픈 유전자 주장은 사실상 폐기된 것이나 다름 없는 가설입니다.

더구나 현생 인류에게 탈모나 비만, 당뇨 유전자를 각인시킨 조상은 네안데르탈인이었으니까요. 순수 혈통인 줄 알았던 호모 사피엔스가 알고 봤더니 4만9000~5만4000년 전쯤 네안데르탈인과 피를 섞었던 것입니다.

현대인의 유전자에는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 2% 정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인의 유전자에는 데니소바인의 흔적도 약 0.2% 안되게 섞여 있습니다. 현생 인류는 유전자의 다양성이 확보되면서 면역력이 강해졌습니다. 이러한 발견의 공로로 막스 플랑크 연구소 스반테 에리크 페보 박사는 202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만은 진화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질병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풀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저자 데이비스 버스는 아마도 호모사피엔스가 단일 혈통이라는 대전제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며 가설들을 쌓고 또 쌓았을 것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진화심리학은 유전학이나 인근 학문의 뒷받침이 없으면 공허한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 요즘에도 배고픈 유전자 가설을 종교처럼 퍼트리고 다니는 쇼 닥터나 덜떨어진 이들을 가끔 봅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과학적 연구 성과들을 모르면 바보 되기 십상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떠들지 말고 겸손한 자세가 필요한 세상이기도 합니다.

저명한 학자가 쓴 책이라도 주눅 들지 않고 비판적으로 읽어내려는 끈기를 가져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포함한 이 블로그의 모든 글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 주신다면 감사하게 수용하여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욕망의 진화>는 인간의 연애 심리를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그 해석을 진화적으로 이렇게 추론해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추리 소설 읽듯 가볍게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만약 연애 기술을 연마(?)할 목적으로 이 책을 보실 필요는 전혀 없다는 말씀도 덧붙입니다. 그러한 목적으로 쓴 책도 아니거니와 연애도 잡다한 잔기술보다는 진정성 있는 자세가 언제나 통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주장을 뒤집어서 보면, 여자는 오직 어떻게 한 번 해 보려고 온갖 달콤한 말을 구사하며 자신을 위하는 척 하는 남자를 거르고, 남자는 오로지 자신의 능력 만을 보고 대시하는 여자를 거르면 좋은 여자, 좋은 남자를 만날 확률이 점점 높아지겠네요. 사람의 진정성을 알아보는 데는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3년 이라는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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