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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고래 줄거리 2편, 금복의 사내들과 뜻밖의 행운들

천명관의 장편 소설 <고래>는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한국 근현대사의 희극적인 풍경 속에서 살아간 운명적인 서사를 풀어낸 모험적 소설입니다.

이 글은 전편 <천명관 고래 부커상 최종 후보, 줄거리와 결말>에서 이어지는 줄거리입니다.

천명관 고래 줄거리 2편

금복의 사내들

금복이 놀라운 사업 수완으로 부두가 땅을 빌려 덕장을 세우고 건어물 장사로 떼돈을 번 생선 장수는 그녀가 떠난 이후 주색에 빠진 데다 어느 날 밤, 태풍 로라가 불어닥쳐 덕장이 다 날아가는 바람에 쫄딱 망하고 말았다. 태풍이 무지막지하게 불던 그날 밤, 금복의 남편, 걱정도 제 힘만 믿고 만용을 부리며 쏟아져내리는 통나무를 막다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방 안에만 틀어박히게 된 걱정은 괴걸스럽게 끊임없이 먹어치우는 몸통이 거대한 괴물로 서서히 변해간다.

태풍 로라가 덮치던 날 백주대낮, 금복이에게 눈길을 주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눈처럼 하얀 양복을 입고 부둣가 도시에 처음 지어진 극장 입구에 언제나 서 있는 ‘칼자국’이었다. 칼자국도 금복의 냄새를 금방 알아챘다. 그날 금복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았다. 존 웨인이 나오는 서부극이었다.

칼자국이 소설 <고래>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칼자국이 등장할 때마다 내레이션을 걸쭉하게 매번 깔아준다.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부둣가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칼잡이인 동시에 호가 난 난봉꾼이며 모든 부둣가 창녀들의 기둥서방에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은,···”

칼자국은 일본 야쿠자로 커리어를 쌓았는데, 영혼의 여인 게이샤인 나오코를 사랑하기 위해 손가락 다섯 개를 잘랐고, 다시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기 위해 손가락 여섯 개째를 자른 경력이 있는 비운의 사나이였다.

그렇게도 굳은 결기를 가진 칼자국이었지만, 그는 또다시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마는 비극적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금복이 때문이었다.

고래-책표지

도시 어느 구석이든 돈이 오가는 자리엔 반드시 칼자국의 몫이 따로 있었다. 한 소매치기가 어리둥절한 촌놈의 봇짐을 털어도, 어느 창녀가 외로운 홀아비에게 화대를 받아도, 술장수가 술을 팔아도, 심지어는 물장수가 물을 팔아도 칼자국의 몫은 따로 떼어놓아야 하는 도시였다.

왜 칼자국에게 세금을 내냐고? 그건 그냥 그랬다. 도대체, 왜?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그 대답은 몇 년 뒤 부둣가 도시에서 처음으로 선교 활동을 하던 한 전도사에 의해 명쾌하게 정리가 되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칼자국의 것은 칼자국에게.(104쪽)

이 문장을 읽고는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얼마나 유익하지는 않지만 얼마나 멋진 익살인가. 소설 <고래>에는 빵 터지는 대목들이 불쑥불쑥 곳곳에서 요렇게 튀어나온다.

칼자국은 금복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그녀에게 걱정과 함께 대궐 같은 자기 집에 들어와 살면, 걱정의 약값이며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식량들도 아낌없이 주겠으니 걱정 없이 살아보자고 한다. 그렇게 기묘한 동거가 한 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폭풍우 치던 어느 날 밤, 천둥번개 소리에 자신의 처지를 각성한 걱정이 거대한 몸뚱이를 이끌고 바다로 가고, 그 뒤를 칼자국이 뒤따라가고, 역시 번개 소리에 잠이 깬 금복이 걱정을 찾아 바닷가로 향하게 된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걱정이 첨벙 바다로 뛰어내리는 순간, 그 장면을 지켜보던 칼자국을, 금복이 그의 등 뒤에서 작살로 찔러 죽이는 일이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발생한다. 작살에 찔린 칼자국이 뒤를 돌아 금복을 쳐다보며 “도대체, 왜?”라고 중얼거리며 죽어간다.

고래-154쪽
고래-154쪽

쏟아지는 뜻밖의 행운들

그 사건이 있은 후, 금복은 전국을 떠도는 거지가 된다. 삼 년간 계속된 전쟁이 끝나가던 해 겨울, 춘희를 낳았다. 쌍둥이 자매의 술집 마구간에서 코끼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태어난 춘희는 벙어리였으며, 기골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눈동자가 ‘걱정’을 쏙 빼닮았다.

걱정이 죽은 지 4년이나 지난 후였으므로 도저히 걱정의 딸일 수가 없었지만, 금복은 걱정의 딸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죽을 때까지 춘희를 멀리하게 된다. 생물학적으로는 춘희의 아버지는 금복이 다리 밑 움막에서 기거하던 몇 명의 거지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쌍둥이 자매의 보살핌으로 기력을 회복한 금복은 우연한 기회에 박색의 한 노파가 장사를 하던 평대의 국숫집을 맡아 운영하게 된다. 

그 노파는 천하에 보기 드문 박색이라 시집간 지 하루 만에 신랑 품에 한 번 안겨보지도 못하고 소박을 맞고 쫓겨나 남의 집 드난 살이로만 떠돌다 한 대갓집 부엌살이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대갓집 외아들이 하필이면 반편이었고, 그 바라지를 박색이 하게 되었다.

지능지수가 서너 살 먹은 어린애 수준에서 멈추어버린 반편이었지만 양물은 물경 한 자에 이른 게 문제였다. 박색이 몰래 반편이게 요분질을 하다 안방마님에게 들켜 처참하게 매질을 당하고 쫓겨나고 만 것이다. 

며칠 후 박색노파는 야밤에 그 대갓집에 몰래 숨어 반편이를 꼬셔 마을 앞에 흐르는 큰 개울가를 데리고 가서 생의 마지막 섹스를 하고는 그 반편을 물에 빠져 죽인다.

그 뒤 박색은 딸을 낳았는데, 그 눈이 반편이를 빼닮아 박색은 얼떨결에 불쏘시개를 딸의 눈에 찔러 그 딸은 평생 애꾸로 살아가게 된다. 애꾸는 먼 훗날 금복이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춘희의 목숨을 구해준다. 애꾸가 꿀벌 떼를 시커멓게 거느리고 등장하는 장면들은 무협지의 에피소드를 능가한다.

아무튼, 박색노파가 하던 국숫집을 물려받은 금복은 비가 장대같이 오던 어느 날 밤, 천장이 무너지고 무너진 천장에서 지전들이 한 장 두 장 내려오면서 말 그대로 ‘돈벼락’을 맞게 된다. 박색노파가 이중 천장을 만들어 숨겨놓은 돈이었다. 목숨을 걸고 평생을 모은 어마어마한 돈과 땅문서들이었다. 뜻밖의 행운은 이런 것이다.

금복은 그 엄청난 돈으로 평대에 벽돌공장을 지어 文과 함께 사업을 시작하였고, 도시 최초로 평대다방을 개업하여 쌍둥이 자매에게 운영을 맡겼고, 평대운수를 창업하여 생선장수에게 마을버스를 맡겼다. 

금복의 행운과 놀라운 사업수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박색노파의 거금을 거의 다 떼려 부은 벽돌공장에서 생산한 평대벽돌이 마침내 전국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고 금복은 사업가로 대변신을 한다. 

사업가로서 대성공을 거둔 금복은 지방을 시찰하러 다니던 나라의 장군과 악수를 나누었고 사진도 찍었다. 장군은 군복차림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금복은 키가 작아 장군과 같이 맨 앞줄에 서 있는 사진이었다.

“장군은 볼품이 없더군. 키도 작고 얼굴도 새카만 게 도무지 큰 일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았어. 만일 그랬다면 틀림없이 거기엔 뭔 야로가 있을 거야.” (286쪽)

그러나 박색 노파의 유령이 마을에  나타나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둘 비극이 시작된다. 소설 고래는 여기서부터 전설의 고향 버전으로 급전환한다. 마을에 유령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생선장수가 운전하던 마을버스가 사고를 일으켜 쌍둥이자매가 기르던 코끼리가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쌍둥이자매도 죽는다. 

그래도 금복은 꿈에 그리던 극장을 건설한다. 대왕고래를 본뜬 극장의 운영을 약장수에게 맡긴 금복은 남정네들은 질릴 대로 맛을 본 터라 그녀의 눈길은 이제 기생 수련에게로 향한다. 수련을 아끼고 사랑한 나머지 그녀는 서서히 남자가 되어간다.

극장은 몰려드는 관객들로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극장 지배인인 약장수는 금복을 배신하고 수련과 함께 야반도주한다. 수련이 떠난 후, 금복은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으며 벽돌 공장의 인부들도 파업에 돌입하는 일이 벌어진다. 금복이 일으킨 모든 사업이 망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고래 결말과 독후감

다음 이야기는 <천명관 고래 줄거리 3편, 결말과 평론>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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