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계획은 오전 10시 창원에서 출발하여 부산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하는 딸의 채용 관련 시험을 친 후 10월 1일 면접에 입고 갈 정장을 사러 가는 거였다.
근데, 아침에 집에 온 딸이 어제부터 속이 안 좋아서 죽을 먹었고, 오늘도 시험 치기 전에 죽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컨디션이 나빠서 도저히 못 갈 거 같다고 했다.
오늘 응시하기로 한 공기업 채용 시험은 딸이 애초부터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고 해서 그럼, 쉬었다가 낼 모레 있을 면접용 정장을 사러 가자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딸은 오케이 했다.
인터넷에서 면접 복장에 대해서 이것저것 서치를 한 아내가 우선 대여를 하는 가게에 가서 좀 살펴보고 맘에 들면 사든지, 대여를 하든지 하는 게 좋겠다며 면접 복장 대여점 링크를 딸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대여비는 면접에 한하여 4만 8천원이었다.
지자체에서 하는 “청년취업 면접복장 무료대여” 사업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딸아이의 면접일은 서류 전형과 필기 시험을 통과하고 나서 정확히 5일전에 면접일이 공지되었다. 지자체 면접복장 무료 대여사업은 대부분 선착순이라 면접일이 공지된 날에는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지자체에서 광고하는 “청년취업 면접복장 무료대여” 사업비가 총 얼마가 소요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표에 눈먼 지자체장들이 그저 생색만 내는 것이었다.
아무튼, 오후 4시에 옷을 보러 가기로 했던 시간이 되자 딸이 울상을 지으며 그냥 입던 재킷이랑 슬랙스 바지를 입고 가면 안 되느냐고 했다. 단화는 인터넷으로 주문하겠다고 했다.
오늘이 토요일이고 면접일은 수요일인데, 그때까지 단화가 올 수 있을지 내가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곤 속 마음을 다스릴 겸 걸어서 전통시장에 반찬거리를 사러 갔다.
김치와 오이, 땅콩을 사 들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왔더니 딸이 단화는 직접 사러 간다고 했다. 딸이 아직 운전이 서툴러 같이 가자고 했더니 알아서 가겠다고 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타이르지 않을 수 없었다.
“면접 코드가 자유 복장이라고 안내를 했으나, 지원자들이 자유 복장이라고 해도 거의 다 정장 차림으로 온대. 혼자만 정장이 아니면 당황스러울 거고, 그러면 발표도 제대로 못할 거니까 이 참에 그냥 정장 한 벌을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앞으로 여러 번 면접도 봐야 할 거니까… 비용은 아빠가 줄께.”
그렇게 말해도 딸은 그냥 “내가 알아서 할께요.”라는 말만 남기고 집을 나갔다. 딸은 재작년에 아빠가 노안인데 노트북 쓰는 거는 그렇다며 컴퓨터 살 돈을 줬고 작년 연말에는 왜 자꾸 깨진 휴대폰을 쓰냐며 거금 50만원을 들여서 갤럭시 중고폰을 당근에서 사 들고 왔었다.
근데, 아빠는 아빠가 되어 가지고 취업 시즌이라 면접 볼 일이 연달아 있을 건데 딸이 면접을 보러 간다는데, 면접용 한 벌 사 주는 것이 아까워서 그러냐? 딸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딸이 집을 나가고 나니,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러운 존재고 무기력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에게 정작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내 나름대로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결과는 늘 이랬던 것 같다.
이 모든 사단이 내가 직장을 그만 두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 같아 속이 더 쓰렸다. 퇴사든 명퇴든 정년이든, 직장 다닐 때만큼 돈을 벌든 못 벌든 누구나 직장 없이 실업자로 집에 있으면 감내해야 할 시선 같은 게 존재한다는 걸 나는 왜 진즉에 알지 못했을까.
밤 9시가 될 무렵 전화가 왔다.
“아빠, 머리도 식힐 겸 친구랑 카페에 와 있어. 내가 아까 너무 짜증을 부려서 미안해서 전화했어…”
“아니야 우리 딸… 전화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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