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은 개뿔, 열혈 페미니즘 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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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신혜원, 이은홍 부부가 그린 <평등은 개뿔>(2019)이라는 만화를 보고 있을 때 이상하게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랫말이 생각났다.

<평등은 개뿔>은 한마디로 꼰대가 보면 꼭지가 돌고 뚜껑이 열릴 만화다. 이 만화는 남편과 아내가 정확하게 가사를 1/2씩 분담할 것을 요구한다. 아이의 성도 각각 1/2씩 나누어 지을 것을 요구한다.

남편이 자신의 아빠, 엄마를 장인, 장모라고 부른다면, 아내도 남편의 아빠와 엄마를 시부, 시모라고 부르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여자처럼 앉아서 소변을 볼 것을 주장한다.

그러니 이 만화를 꼰대가 보면 뚜껑이 이빠이 열릴 것 같다. 이 시대 최후의 사나이로 자처하는 그들은 틀림없이 <평등의 개뿔>의 만화가 이은홍에게 그렇게 살 거면 그냥 고추를 잘라 내다 버려라고 틀림없이 소리칠 것 같다.

평등은 책 표지
평등은 책 표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주위에서 그런 남자들을 너무나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나이 든 남자들은 아예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마누라에게 빌붙어 사는 지질한 남정네들도 설거지조차 할 생각은 아예 없다. 그것이 그들의 자존심일까?

오바마 전 미대통령도 신혼 때부터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육아도 공평하게 했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런 모자란 남자를 보면 그저 어안이 벙벙하고 할 말을 잃는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죄가 없을지 모른다. 무식하니까. 공자왈, 맹자왈을 외우며 양반 문화를 만든 그 조상들이 나쁜 놈들일 것이다. 명절 땐, 꼭 이런 우스갯소리가 유행한다.

“꼭 돈 없고, 못 배운 놈들만 명절 때 머리 처박고 조상님께 절하고 있지, 좀 배우고 사는 놈들은 죄다 해외여행 간다.”

주위를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이 더 과거에 집착하고, 더 약자를 괴롭히며 맨날 라테를 읊었다. 별 볼 일 없는 무능력자 들일수록 그 강도가 더 심했다.

<평등은 개뿔>을 만든 신혜원, 이은홍 부부는 적어도 젊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왠 걸 작가 후기를 보니 결혼 30년 차라 했다. 의외였다. 결혼 30년 차라면 아마 나이가 제법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생각을 하고 실천해 왔다니 진심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부부는 연애부터 결혼을 하고 귀촌을 하고 부부로서 살아온 한 인생을 담았다.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데, 최고의 적은 여자임을 이 만화도 확인해 준다. 시모와 장모가 더 페미니스트가 더 불편하다. 그들도 역시 죄가 없다. 그러니까 한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말이다.

가부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대한민국 남성들은 적어도 가사 영역에서는 무능력자들이다. 어른이지만 아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미숙아들이다.

어느 날 아내 신혜원이 남편 이은홍에게 말한 대사가 이를 잘 반영한다.

“잘 들어! 난 네 엄마 역할 하려고 너랑 함께 사는 게 아니야. 네가 엘프… 아니 좀비가 아니라면 먹고 싸고 입고 씻는 건 당연히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야. 혼자 살든, 누구와 함께 살든 아무도 그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어! 돈 벌어서 사람을 고용한다면 몰라도! 그리고 내가 처음에 몇 번 너 대신해 줬잖아. 그랬더니 이제 그걸 계속 바라는 거 아냐?”(아내)

“진짜 같이 못살겠네”(남편)

맞다. 한국 남자들은 아예 할 생각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배우지 못했다. 만화 <평등은 개뿔>은 그런 남자들에게 바치는 페미니즘 전도 교양서다. 

꼰대가 아니라면 이 만화를 보고 생각이 조금 변할 것이다. 꼰대라면… 아마 뚜껑이 좀 열릴 것이다. 만화 내용이 좀 유치한 구석도 있고, 교조적인 구석도 있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변할 틈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땅에서 핍박받고 묵묵히 살아 온 여성들에게 이 장미꽃을 바친다. 이제 세상은 오래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아직 동참하지 못한 여자와 남자가 있다면 이제라도 동참하자.

인생은 미완성이고, 쓰다가 마는 편지지만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한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도 미완성이다. 부르다 멎는 노래지만 그래도 우리는 부를 수 있을 때까지는 아름답게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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