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프랑스 예술 영화의 정수와도 같은 작품, <퐁네프의 연인들>(1991)을 소개합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와 <나쁜 피>(1986)를 연출한 레오스 카락스의 세 번째 장편 영화입니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두 남녀가 퐁네프의 다리에서 노숙을 하며 처절한 외로움을 안고 서로에게 광적으로 빠져드는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퐁네프의 연인들 줄거리
퐁네프 다리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는 알렉스(드니 라방)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돌아와 보니 자신의 자리에서 비닐을 덮고 자고 있는 미셸(줄리엣 비노쉬)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셸은 실연의 아픔으로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중이었습니다. 화가가 꿈이었지만 미래에 대한 절망 끝에 가출해 퐁네프 다리에 도착한 그녀는, 절뚝이는 알렉스를 흐릿하게 스케치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미셸은 퐁네프 다리 위에서 알렉스와 함께 노숙 생활을 하는 노인 한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미셸의 마지막 꿈
“떠나기 전에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고 싶어요. 눈이 좋지 않아서 낮의 형광등 아래에서는 볼 수 없거든요.”
한스는 미셸을 데리고 박물관에 몰래 들어가 촛불을 켜고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감상하게 해줍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깊은 포옹을 나눕니다. 다음 날, 생을 비관한 한스는 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합니다.

이후 미셸은 알렉스에게 더욱 의지하게 되면서 자신을 위하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순수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둘은 짧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자폐 증세가 있는 청년 노숙자와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여성 화가가 빠져든 사랑은 과연 어떤 색깔이었을까요?
알렉스의 메모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이 하얗다고 해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난 구름이 검다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거야.”
알렉스는 미셸이 자고 있는 머리맡에 쪽지를 남기고 절뚝이며 퐁네프 다리를 가로질러 갑니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의 사랑의 색깔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미셸과 지하철역 통로를 걸어가던 알렉스는 벽에서 미셸을 찾는 포스터를 발견하고 놀랍니다. 알렉스는 그녀 몰래 다시 지하철역 통로로 돌아와 포스터를 모두 불태워버립니다.
하지만 미셸은 낡은 라디오를 통해 가족들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방송을 듣고, 알렉스가 자고 있는 사이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한 적은 없었어’라는 쪽지를 남기고 가족에게 돌아갑니다.
미셸이 떠나가자 격분한 알렉스는 총을 쏴 자신의 손가락을 날리고 방화 혐의로 체포돼 3년형을 선고 받아 수감됩니다.
2년 후, 시력을 되찾은 미셸이 알렉스를 찾아오고, 둘은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 퐁네프 다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퐁네프의 연인들 결말
크리스마스이브, 눈 내리는 퐁네프 다리 위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납니다. 알렉스는 미셸을 끌어안고 다리 난간에서 센 강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아틀란티스로 향하는 모래 수송선에 구조된 두 사람은 배의 앞머리에 함께 기대어 멀어져가는 파리의 야경을 바라보며 영화는 끝납니다.
모래 수송선에는 노부부 둘만이 타고 있었고, 그들은 인생의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디까지 가냐고 묻자 “끝까지”라고 대답합니다.
레오 까락스의 영화 열정
퐁네프 다리는 파리 센강의 가장 오래된 다리입니다. ‘누벨 이마쥬’의 선두주자였던 레오 까락스 감독은 <나쁜 피>(1986)에 이은 차기작으로 <퐁네프의 연인들>을 실제 퐁네프 다리에서 촬영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당시 잠정 제작비는 3,600만 프랑이었습니다.
그러나 파리시는 촬영을 불허했고, 이에 프랑스 예술계는 연대 서명을 통해 촬영 허가를 촉구합니다. 결국 시장 자크 시락은 1988년 여름 3주 동안의 촬영을 허락합니다.
하지만 단 5분 분량만 촬영할 수 있었고, 감독은 결국 실제 다리와 똑같은 세트를 짓는 조건으로 세트 촬영을 받아들입니다.
세트장은 약 30만 평 부지에 퐁네프 다리를 그대로 재현했으며, 인공 센강까지 만들기 위해 실제 강 깊이인 15~20미터를 파서 물을 끌어올렸습니다.
총 1년 7개월 동안 2만 명 이상이 제작에 참여했고, 현재 이 세트장은 관광 명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45분 촬영에 6,000만 프랑이 들어가면서 제작은 1988년 12월 중단됩니다. 이후 스위스 자본이 잠시 지원했다가 철수하고, 1년간 방치된 상태에서 영화는 ‘미완의 걸작’으로 남는 듯했습니다.
프랑스 문화성 장관 자크 랑의 지원 아래, <까미유 끌로델>의 제작자인 크리스티앙 푸쉬네가 마지막으로 나서 7,000만 프랑을 투자하며 촬영이 재개되고, 1991년 3월 영화는 마침내 완성됩니다. 총 제작비는 1억 9,000만 프랑, 약 250억 원에 달했습니다.
주연 줄리엣 비노쉬도 스토리보드뿐만 아니라 영화 속 그림들과 광고 포스터 디자인까지 직접 그리며 열정을 보였다고 합니다.
영화 기본 정보
- 장르: 멜로/로맨스
- 국가: 프랑스
- 평점: 8.74(네이버 영화 평점, 2025. 5. 13일 기준)
- 러닝타임: 125분
- 감독: 레오 카락스
- 출연: 줄리엣 비노쉬(미셸), 드니 라방(알렉스), 클라우스-마이클 그러버(한스), 마리언 스타렌즈(마리언)
출연진에 대하여
- 레오 까락스 감독은 <나쁜 피>(1986), <퐁네프의 연인들>(1991), <폴라 X>(1999) 등 전위적인 영화로 주목받았습니다. 자폐증 이력과 함께 고립된 삶을 살아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줄리엣 비노쉬는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칸 영화제<사랑을 카피하다>(2010), 베니스 국제 영화제<세 가지 색:블루>(1993), 베를린 국제 영화제<잉글릿귀 페이션트>(1996)에서 여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연기자입니다.
아카데미시상식에서도 <잉글릿귀 페이션트>(1996)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초콜릿>(2000)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퐁네프의 연인들>로 제5회 유럽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결혼을 한 적은 없으나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고, 레오스 카락스와 1986~1991년까지 동거했습니다. - 드니 라방은 <레미제라블>(1982)로 데뷔했으며, 까락스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프랑스 대표 연기파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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