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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버드대학 옌칭 도서관의 한국 고서들 보존의 중요성

하버드 옌칭 도서관에는 한국의 고문서의 향기가 가득한 곳입니다. 연세대 허경진 교수는 연구년을 맞아 하버드 대학에 1년 간 교환 교수로 재직한 바 있습니다.

교환 교수로 있으면서 그는 옌칭 도서관이 소장한 한국 고서들을 조사하고 연구하여 <하버드대학 옌칭 도서관의 한국 고서들>(2003)을 펴냈습니다.

하버드 옌칭 도서관

1928년 중국 전문 연구기관, 하버드옌칭연구소의 부속 도서관으로 창설된 하버드 옌칭 도서관(Harvard-Yenching Library)은 하버드 대학의 97개의 부속 도서관 중에서 세번 째로 큰 도서관(1위: 와이드너도서관, 2위: 하버드로스쿨도서관)입니다.

옌칭 도서관은 120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데, 중국서 70만 권과 일본서 30만 권, 그리고 한국서 14만 권 정도를 소장하고 있고, 3층 고서실에는 한국의 오랜 역사와 수준 높은 문화를 자랑하는 한국 고서 4,000여종과 6천권 이상의 북한 서적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고문서들은 1951년 하버드 대학의 한국사 교수였던 에드워드 와그너 Edward Wagner 교수와 한국 자료 담당 사서였던 김성하 선생의 노력으로 희귀본들이 수집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주 오래 전, 어렵사리 하버드 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는 이 책을 읽기 전이라 옌칭 도서관이 있는 줄도 몰랐네요. ㅠ

허경진 교수

하버드 대학에 체재하던 허경진 교수가 당시 옌칭 도서관 지하서고에 먼지더미와 함께 쌓여 있었던 4,000여종의 희귀본 한국 고서들을 탐독하고, 학술 연구자와 고문서에 관심있는 사람들 위하여 단행본으로 정리하여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허경진 교수는 고서 소개는 물론이고, 오래되어 낡은 희귀본들의 책갈피에 끼여 있는 편지나 기록들의 사연들도 세세하게 소개합니다.

옌칭 도서관의 한국 고서들

허경진 교수는 첫 번째 고문서로 <동국여지승람>을 본떠 공주에 살던 이병연이 1920년대 간행한 <조선환여승람>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조선환여승람>은 지방마다 보고원을 위촉하여 전국 241개 군의 인문지리를 한 권에 간 군씩 소개한 지리지로 십여 년 동안 여러 차례에 나눠서 간행하였다고 합니다.

옌칭 도서관은 ‘출판사 보존본 ‘또는 ‘영구 보존본’이라고 쓴 <조선환여승람>을 여러 권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영구보존하던 책들이 나중에 하버드 대학까지 건너가게 된 셈이지요.

저자는 <조선환여승람>에 편집자가 덧붙여 쓴 내용과 책갈피에 끼여 있는 독자들의 항의나 부탁 편지, 출판사의 해명 편지들은 당시 출판계의 상황과 내막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합니다.

이어서 저자는 돈의 역사를 정리한 <조선전화잡고>, 박영효가 일본에서 간행한 <조선삼대시> 등을 소개합니다.

19세기 말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당시에 주워 들은 민요나 속담들을 그대로 기록한 <한어유취>, 역시 일본인이 제주도를 여행하고 그림으로 기록한 <제주도 여행일지>들을 연달아 소개하면서 고문서의 향기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합니다.

기록과 보존의 중요성

저가가 소개하고 있는 <하버드 대학 옌칭 도서관의 한국 고서들>을 읽고 있노라면 기록과 보존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조선 문인들이 일본 문인과 청나라 문인들과 주고 받았던 시와 필담들은 세월이 흘러 그대로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세한도>와 얽힌 신화와도 같은 일화를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 23.9x70.4cm, 글씨: 23.9x37.8cm.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 23.9×70.4cm, 글씨: 23.9×37.8cm. /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그의 제사 이상적에게 고마움의 뜻으로 그려 준 것이었는데, 추사 연구가인 경성제국대학 교수 후지츠카 지카시가 <세한도>와 이상적의 <해린척소>를 소장하고 있다가 1944년 여름에 도쿄로 가지고 돌아갔답니다.

당시 도쿄는 미군 공습이 한창이었으므로, <세한도>가 혹시라도 불타 없어질까 걱정했던 서예가 손재형이 일본까지 찾아가 그 그림을 자신에게 넘겨 달라고 청했으나, 노환으로 누워 있던 후지츠카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손재형은 포기하지 않고 두 달 동안이나 찾아다니며 졸랐고, 그의 정성에 감동한 후지츠카는 12월 어느 날 아무런 값도 받지 않고 <세한도>를 넘겨 주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석 달 위인 1945년 3월 10일 미군의 공습 때에 후지츠카의 서재가 폭격을 당해, 그가 소장하고 있던 방대한 양의 추사 김정희의 유물과 함께 <해린척소> 원본도 불타 없어 졌다고 합니다.(하버드대학 옌칭 도서관의 한국 고서들 244쪽)

저자가 소개하는 마지막 고문서는 조선 말기의 문신 한필교의 화첩 <숙천제아도>입니다. 숙천제아도는 그가 31세에 목릉 참봉으로 부임했을 때부터 72세에 공조 참판으로 세상을 떠나던 해까지 42년 동안 새로운 벼슬에 부임할 때마다 관아의 그림을 그린 책입니다.

숙천제아도는 ‘평생거쳐 온 여러 관아의 그림들’이라는 뜻으로 현재 옌칭 도서관 희귀본실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옌칭 도서관은 이 화첩 가운데 ‘사복시’라는 그림을 2000년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관아 건물에 대한 자료가 드문데 <숙천제아도>는 조선 시대 관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옛 관아를 복원하거나 연구할 때 없어서는 안되는 작품입니다.

또한, 전임, 승진, 파직, 유배와 좌천으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조선시대 관원의 생애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버드 대학 옌칭 도서관의 한국 고서들>은 희귀본을 통해 역사를 보여주고 우리가 알 수 없었던 과거의 문화와 시대상, 그리고 그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인생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예술과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날 <세한도>는 볼 수 없겠지요. 책과 역사를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보다 곰팡내 나는 도서들을 뒤적거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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