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다. 2019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전반부가 연재되었고, 그 뒤 후반부를 완성하여 2021년 한 권의 소설로 출간되었다.
작가 한강은 노벨상 위원회가 한강 문학에 입문하기에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작가는 가장 최근에 쓴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최근에 쓴 책은 <작별하지 않는다>입니다. 이 책과 함께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줄거리
<작별하지 않는다>는 1부 새, 2부 밤, 3부 불꽃으로 이루어진 장편 소설이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이다. 눈은 이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직조하는 키 포인트이다.
1부는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녹아있다. 작가는 2014년 5월 19일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6월말 이상한 악몽을 꾸게 된다. 그로부터 7년 뒤인 2021년 9월에야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하게 된다.

이 소설의 화자는 경하이다. 작가 한강처럼 경하도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소설가이다. 경하는 작가 한강이 꾼 이상한 악몽1 을 꾸고 친구 인선에게 그 꿈 이야기를 한다.
경하가 꿈에 나왔던 통나무들을 심어 먹을 입히고, 눈이 내리길 기다려 그걸 영상으로 담아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자 인선은 기다렸다는 듯 그럼, 땅이 얼기 전에 시작해야겠다고 나섰다.
경하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인선을 처음 만났다. 잡지사에 입사한 경하가 소개 받은 프리랜서 사진 기사였다. 그 후 삼 년 동안 매달 함께 출장을 다녔고 퇴사한 뒤로도 이십 년을 친구로 지냈다.
형제자매 없이 마흔둥이로 태어나 자란 인선은 다큐 영화를 만들다가 팔 년 전 제주 중산간 마을로 돌아가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다 사 년 만에 여의었다. 그 후, 인선은 어머니의 집에서 하얀 앵무새 한 쌍을 키우며 목공 일을 하며 혼자 살았다.
경하는 어느 날 신분증을 들고 지금 병원으로 와 달라는 인선의 문자를 받게 된다. 그녀가 통나무를 켜고 자르고 깎는 일을 하다 검지와 중지의 첫 마디가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하고 봉합 전문 병원을 찾아 서울에 입원하게 된 것이었다.
인선은 급히 도착한 경하에게 오늘 해 떨어지기 전에 제주 집에 가서 앵무새 ‘아마’에게 물을 주라는 부탁을 한다. 앵무새 한 쌍 중에 아미는 몇 달 전에 죽었고 지금은 아마만 있다는 거였다. 퇴원할 때까지만 아마를 돌봐줘라는 부탁과 함께.
그때 병원 창밖으로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경하는 병원에서 김포공항까지 택시로 달려가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그것이 그날 이륙한 마지막 비행기였다.
눈보라가 세차게 치는 제주 공항에 내린 경하가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에 가서 급행 일주버스를 갈아타고 남쪽 해안의 P읍에 도착해 다시 지선 버스를 타고 세천리에 내린 후, 걸어서 삼십 분이 넘는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을 작가는 재난 영화처럼 묘사했다.
경하는 처음 농담으로 들었으나 인선이 제주 집에 가줘. 라고 말했기 때문에 인선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지선 버스를 기다리며 구름에서부터 천 미터 이상의 거리를 떨어져 손등에 내려앉은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를 보며 아미를 만났던 날을 떠올린다.
인상 깊었던 문장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오른쪽 어깨 위, 스웨터 올 사이로 가칠가칠했던 아마의 두 발이 떠오른다. 내 왼 손 집게 손가락을 횃대 삼아 앉아 있던 아미의 가슴털은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109쪽)
경하는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덤불을 헤치며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가르며 필사적으로 나아가 중산간 마을에 있는 인선의 목공방에 당도한다.
하지만 아마는 서늘하게 죽어 있다. 경하는 반짇고리를 찾아 아마를 조심스레 감싸서 알루미늄 통에 넣어 봉한 뒤 나무 아래 구덩이를 파 묻고 작은 봉분을 만들어준다.
작별하지 않는다 결말
이 소설의 2부 밤의 작은 꼭지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경하가 악몽을 꾸고 깨어나 새장 속에서 횃대에 발을 걸고 앉은 아마가 울고 있는 소리를 듣는다.
경하는 “너는 죽었잖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물을 주고 먹이를 준다. 여기서부터 어쩔 수 없이 영화 <식스 센스>가 떠오른다. 경하와 아마의 아주 슬픈 판타지가 시작된다. 연이어 경하가 인선을 만나면서 슬픈 판타지는 절정에 다다른다.
죽었거나 죽어가는 내가 끈질기게 이곳을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경하는 생각한다. 3부의 제목은 전작 <채식주의자>의 ‘나무 불꽃’을 연상시키는 ‘불꽃’이다. 그녀는 인선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자 “아직 사라지지 마” 라며 성냥갑을 찾아 성냥을 그어 불꽃을 일으킨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마지막 문장을 보라.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작품 해석 리뷰
집필 동기
작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6월 말 정도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했다. 작가는 처음에는 그것이 5·18과 관련된 꿈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 꿈의 내용은 이 소설에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꿈이 7여 년 세월 동안 발화가 되고 확장되어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탄생 되었다. 작가는 프랑스 메디치 외국 문학상 수상 간담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9년에 걸쳐 쓴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하나의 짝인 셈인데, 너무 추웠다. 겨울에서 이젠 봄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너무 추웠다, 라는 작가의 말이 상기하듯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힘든 일이다. 한강 소설을 읽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그러한 아픔을 대면하는 일에 늘 익숙하지 않다. 또 되도록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거기다 한강의 문장은 시적이어서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하는 부담도 크다. 그렇게 천천히 읽다 보면 진이 빠지곤 한다.
작가의 꿈과 눈에 대한 인터뷰
- 교보문고 작가 팬사인회 유튜브 동영상: 작가 한강이 직접 밝힌 <작별하지 않는다> 집필 과정
- 한강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간담회 인터뷰 기사 : “겨울 같던 역사적 소설은 그만 쓰겠다…이젠 봄으로”
노벨상위원회의 해석
노벨상위원회가 이 작품에 대하여 코멘트 한 부분을 읽어보면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무엇에 관한 작품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2021년의 후기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 (“We Do Not Part”)로, 고통의 이미지라는 측면에서
백서 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 이 이야기는 1940년대 후반 한국의 제주도에서 발생한 학살의 그림자 속에서 전개되는데, 이 사건으로 수만 명의 사람들, 그중에는 어린이와 노인도 있었고, 협력자로 의심받아 총살당했습니다.이 책은 내레이터와 그녀의 친구 인선이 겪은 공동 애도 과정을 묘사하는데, 둘 다 사건이 있은 지 오랜 후에도 친척들에게 닥친 재난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견뎌냅니다. 정확하면서도 응축된 이미지로 한강은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힘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집단적 망각에 빠진 것을 밝히고 트라우마를 공동 예술 프로젝트로 변형하려는 고집스러운 시도를 강력하게 추적하는데, 이것이 책의 제목을 빌려준 것입니다.
이 책은 유전된 고통과 마찬가지로 가장 깊은 형태의 우정에 관한 것인데, 꿈의 악몽 같은 이미지와 진실을 말하려는 증인 문학의 성향 사이를 매우 독창적으로 넘나든다.”2
노벨상 수상 위원회는 한강의 작품 세계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이라고 평가하고, 한강에 대해 “몸과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한 아주 독특한 인식”을 가진 작가라고 평했다.
특히 <작별하지 않는다>는 몸과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한 아주 독특한 인식이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2부 밤부터는 몸과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인식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몰입하여 읽기가 상당히 힘들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작가의 추천과는 다르게 소설가 한강의 이십 대의 한 때를 그린 에세이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을 먼저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경하는 인선의 부탁을 받고 새를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 중간산 마을에 도착하나 앵무새는 이미 서늘하게 죽어 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죽은 지도 모르고, 앵무새가 죽은 지도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이다.
하여 그녀는 영상을 찍기 위해 고집스럽게 통나무를 자르고 깎던 인선의 생사 여부도 알 수가 없는 상태이다. 그녀는 그런 상태에서도 성냥갑을 찾아 성냥을 그어 불꽃을 일으킨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지이다.
아직 사라져서는 안 될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아직 한 번도 제대로 그 누가 진실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 “검게 칠해진 통나무들이 수천 수만 그루가 심어진 눈 내리는 벌판을 혼자 걷고 있었다. 거기엔 어떤 인공물도 없었고 하나의 통나무의 뒤 마다 무덤이 있어다.
여기가 묘지구나 하는 생각으로 걷고 있었는데 발 아래 밀물이 밀려 들고 있었다. 무덤들이 물에 잠기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 쪽의 무덤들을 옮기기 위해 뛰어다니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출처: 교보문고 작가 팬사인회 유튜브 동영상 축약
↩︎ -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한강) 생애 및 작품 세계 ↩︎
댓글
1개의 응답
밤새서 논문 쓰다가 마침 잘 읽었어용.
근데 이 시각에 발행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