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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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어둠. 솔직히 제목이 지나치게 멋있다. 하지만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쾌하게 짚은 문구이기도 하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백안시할 수 밖에 없는 극단주의가 어떻게 그 ‘평범한 사람’에게 극단적인 행동을 추동하는지를 다루는 책이다. 반극단주의 연구원이 극단주의 단체에 잠입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현장감이 생생한 것이 특징이다. 극단주의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미디어를 의식해 이미지 브랜딩을 하는 정치적 공중전부터 시작해 대중매체, 현대인의 외로움 및 온라인 고민상담 등 미시적인 생활적 면까지 파고들어 세력을 모으는 모습을 보면 감탄마저 나온다. 정치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입장에선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런 사건들이 쌓이면서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로 이어지는 것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만 해도 충분히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책을 전부 읽고 나면 또 다른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드러난다.

먼저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사례는 현대 극우들의 정치전략이지만, 사실 이 이야기에는 극좌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오히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좌파야말로 이런 전략의 시초였다.

일단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지침으로, 그리고 어떤 감정을 자극해 극단주의 세력이 추종자를 끌어모으는지는 책에 생생한 르포가 담겨있으니 다루진 않겠지만, 몇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책에서 등장하는 극우의 전략들은 ‘세련된 형태의 도발로 공공에 퍼진 주류 헤게모니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 ‘문화적 서사를 재전유하는 것’ 등이다. 그런데 애초에 이런 ‘도발’이나 ‘재전유’라는 개념을 나는 좌파의 용어로 처음 접했었다. 고전 세계문학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작품을 만들어낸다던가 하는 식의 활동에 주로 붙는 수사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선일보였나 보수쪽 신문에 ‘극단주의를 다룬다면서 우파쪽 극단주의만 다루는 건 불공평한 거 아니냐’ 라고 투덜거린 서평이 있었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물론 단순히 용어가 같다는 것만으로 두 활동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극단으로 치닫은 좌파운동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런 활동들도 이런 정치전략과 상호작용하며 발전해왔을 것이다. 공평 불공평을 넘어 그런 방면도 함께 다루었으면 더욱 흥미로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여하튼 소개되는 극우들의 전략에서 좌파진영의 용어와 전략을 발견하기를 반복하다보면 ‘이게 이렇게나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는 도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지금까지 그런 수사가 붙은 글을 읽을 때면 ‘명확히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의 한 측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를 했다. 하지만 한낮의 어둠에서 등장하는 ‘재전유’들은 저자가 제시하는 사회인구적 통계로 극우들의 피해망상이라고 반박된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게 딱 잘라서 구분이 가능하면 좋겠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다는 거다. 애초에 문화적 서사를 재전유 한다는 수사가 붙은 시점에서 그 컨텐츠는 논리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 소설이나 흑인노예소설을 읽을 때 그와 관련된 사회상에 대한 증거를 기반으로 읽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좀더 객관적인 독서를 했을까? 어쨌건 극우들이 자신들의 프로파간다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나 내가 그런 책들을 읽어온 방식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실 어떻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어떤 주장이 옳고 그른지는 결국 논리와 검증을 통해 비교할 수 밖에 없다. 다만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극우의 정념에 기반한 주장들이 정치로 개입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고 말한다면 아마 반대진영도, 어쩌면 아예 가운데 진영도, 즉 극단주의가 아닌 중도층도 비판에서 자유롭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극단주의에 대해 남는 비판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판점은 테러행위 등의 심각한 살상행위를 부추긴다는 점이 된다. 그런데 그런 류의 행위들이 항상 반사회적이라고 평가받는 건 아니다…사실 이런 주제는 워낙 많이 이야기되는 것인데 굳이 이야기할만큼 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런 흥미로운 이슈를 담은 극단주의의 사례도 분명 존재할텐데 다루지 않은 게 아쉽다는 정도.

이제 마지막으로,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묘사하는 극단주의는 유혹적이고, 명백히 대중을 유혹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그들에게 속아넘어가선 안 된다, 저 유혹적인 생각에 머리를 점령당하지 않게 이들의 수법을 명심해라, 자기자신도 유혹을 느꼈으나 그렇게 이겨냈다 라고 이야기한다. 그 언저리에 뒤엉킨 갈등같은 것이 흥미롭기도 하고, 관음적인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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