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의 <로마법>(문학동네, 2019)를 읽으면 로마에 꼭 가보고 싶어진다. 이 책의 부제는 ‘흔들리지 않는 천년의 학교’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로마법 운운이냐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이 책은 로마법 해설서가 아니다. 로마법이라는 거울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반추해 보고 인간답게 사는 길을 강조하는 인문교양 서적이다.
저자 한동일 프로필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광주가톨릭대학교와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2000년 천주교 부산교구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후 한동일은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 유학해 교회법을 전공했으며, 바티칸 대법원(로타 로마나)가 설립된 후 700년 역사상 930번째로 선서한 변호인이 되었다. 그는 이로써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변호인이 되었다.
2010년부터 서강대학교에서 라틴어, 로마법 등을 6년 동안 강의했고, 서강대에서 강의한 <라틴어 수업>을 출간하여 라틴어 붐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유럽의 기원>, 자서전 <그래도 꿈꿀 권리>, 카르페 라틴어 시리즈(2014~2020), <한동일의 공부법>, 라틴어 수업의 속편격인 <믿는 인간에 대하여> 등이 있다.
로마법 수업 독후감
저자 한동일은 <로마법 수업>이 숱한 압력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인간답게 사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로마인들을 통해 오늘날 함부로 짓이겨지고 뭉뚱그려지고 구석으로 밀렸던 우리들의 자아와 인간적 소망을 복원하는 긴 여정이 되길 바랬다.
“로마법은 숱한 압력 속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싶어했고, 끝내 인간답게 사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나의 아집과 편견을 넘어 너와의 소통과 상생을 꿈꾸었던 로마인들이 하나하나 쌓아올렸던 돌탑과도 같습니다.
로마법은 인류의 오랜 꿈과 이상을 명석하고 정확하게 기술한 문장들이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잘 알려진 대로 로마는 노예제 사회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떻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로마법과 로마인들의 정신이 무엇이었길래 대제국이 무너지지 않고 오래도록 지탱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오늘날에도 이슈가 되는 특권과 책임, 자유인, 신의, 노예해방, 결혼과 독신, 이혼, 간음과 성매매, 간통죄, 인류의 진보 등의 키워드를 뽑아 오늘날 우리 사회와 로마를 대비시키며 성찰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고대 로마의 청년들도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할 때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다. 고대 로마가 시행했던 결혼장려 제도나 출산장려 제도를 작금의 정부가 쓰고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신원을 조회할 때 “당신은 자유인입니까, 노예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며 시작한다. 나는 자유인으로서 과연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저자의 말처럼 스스로 노예인 줄도 모르는 노예인가.
돈과 경제력에 관한 한 모든 이가 노예와 다름없음을 그대로 인정하고 인식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노예인 줄도 모르고 노예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돈과 권력 앞에 납작 엎드려 조용히 순종하는 것이 삶의 지혜라도 되는 양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웃고 짓밟습니다. (중략)
문득,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묻게 됩니다. 2천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인간의 존재와 태도 가운데 변치 않는 비겁과 악습이 존재함을 아프게 느낍니다.”(본문 53쪽)
넓은 의미에서 자유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권리”(키케로, 스토아철학의 역설, 32쪽)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결코 자유인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영어의 서비스(service)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노예를 뜻하는 세르부스(servus)에서 파생한 단어 세르비티움(servitium)에서 유래한 단어라고 한다. 세르비티움은 노예 신분이나 그 처지를 말했는데, ‘예속, 굴종’의 의미와 함께 ‘시중, 봉사’라는 행위를 지칭했다.
인상 깊었던 구절
Haec sit propositi nostri summa: quod sentimus, loquamur: quod loquimur, sentiamus: concordet sermo cum vita.
핵 시트 프로포시티 노스트리 숨마: 쿼드 센티무스, 로콰무르: 쿼드 로퀴무르, 센티아무스: 콘코르데트 세르모 쿰 비타.
“이것이 우리의 최고 생활철학이다.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말한 것을 생각한다.
즉, 말에 삶을 일치시킨다.” _세네카
<로마법 수업>을 통해 고대 철학자와 법학자들의 법률 격언들을 라틴어 원문과 한국어로 동시에 읽는 즐거움도 컸다. 평소 라틴어 어원에 관심이 많았는데 저자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그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아무튼, <로마법 수업>은 저자의 바람처럼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더욱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북돋웠다. 그래서 로마법 수업은 곧 인간학 수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참, 로마의 특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있는 정무관은 무보수 1년 임기의 명예직이었다. 그것도 반드시 군 복무를 마쳐야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자격을 갖춘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사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판결을 조작한 재판관은 성범죄자와 마찬가지로 시민권 박탈에 해당하는 강제 유배형에 처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요즘도 그렇게 하면 웃기는 판결이 좀 줄어들까?
대제국 로마의 특권층들은 권력을 누리는 만큼 엄격하고 냉엄한 도덕 기준을 요구 받았던 것이다. 이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이 천년이 넘는 동안 거대한 제국을 묵묵히 지켜주었을 것이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