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을 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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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리소설의 구성으로 햄릿을 해설하는 문학교양입문서.

‘햄릿을 수사한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소개하고 텍스트 이론의 관점에서 이들을 비교하며 햄릿의 진상를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햄릿을 읽어보신 사람 중 몇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겠다. 햄릿의 진상이라니? 햄릿이 추리소설도 아니고 진상이라고 할 게 뭐가 있냐 고 말이다.

사실 햄릿이란 이야기 자체는 명쾌한 복수극이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아버지 유령에게 자신이 살해당했음을 들으면서 그 범인으로 지목되는 숙부 클로디어스 왕에게 복수를 계획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책에서 소개되듯이, 햄릿의 극의 장면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묘하게 위화감을 주는 부분들이 있다. 가령, 클로디어스 왕을 죽이는 것을 몇 번이고 망설이는 햄릿은 우유부단함의 대명사로 알려져있지만 정작 그는 다른 인물들, 폴로니오스나 로젠크란츠, 길든스턴 등을 죽일 때는 망설임이긴커녕 열정적이다.

또한 햄릿은 어머니 거트루드와 애인 오필리아에게 적대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거트루드와 달리 오필리아에겐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 극 중 장면만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서로 모순을 일으키는 듯한 장면들에 그럴듯한 해설을 붙여넣으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햄릿 해석을 찾아내었다. 어떤 관점을 취하고 어떤 장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햄릿이란 같은 작품을 두고도 밝혀지는 진상은 전혀 달라지곤 한다.

햄릿 책표지
책표지

프로이트의 해석에선 햄릿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무의식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애착과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키워온 인물이지만 존스의 해석에선 오히려 오필리어를 사랑했으나 그녀에게 배신당해 증오심을 품은 인물이다.

괴테의 해석에선 햄릿은 너무도 과중한 도덕적 의무에 짓눌린 우유부단함을 표현하는 인물이지만 엘러 샤프는 오히려 셰익스피어의 여타 비극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햄릿은 과중한 도덕적 의무에 저항하지 못하는(책의 표현으로는 초자아의 사디즘에 굴복하여) 조급증에 시달리는 인물상을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여러 해석들이 나오며 개중에는 햄릿의 삼촌이자 아버지의 유령에게 범인으로 지목당한 클로디어스 왕의 무고를 주장하는 해석도 등장한다.

이런 해석들은 그 자체로 독창적이면서 같은 장면을 전혀 새로운 장면으로 뒤바꾸는 재미를 준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 해석에 불리한 장면은 슬그머니 넘어가기도 해서 상충하는 해석 간에 공정한 비교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 차이야말로 햄릿 독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비평을 위해 선별된 작품의 단편들이 그 자체로 새로운 햄릿을 재창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여러 사람들이 내놓은 다채로운 해석들은 처음부터 다른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해석이 옳고 어떤 것이 틀렸는지 가리려고 하는 건 귀머거리들의 대화와 다를 것이 없다고 이야기된다.

여기까지보면 귀머거리들의 대화는 일종의 비과학적이고 내로남불식의 소통불능을 초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에서는 귀머거리들의 대화가 갖는 가치를 이야기하고, 오히려 귀머거리들의 대화가 진정한 소통에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귀머거리들의 대화야말로 햄릿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햄릿의 진상으로 독자들을 이끌어주는 열쇠라고 말이다.

사실 햄릿을 수사한다에서는 다양한 해석들을 심도깊게 소개하기보다는 위 문단에서 다룬 메타비평이론 같은 것을 소개하는 데에 더 많은 지면을 소모한다(작품 비평이 아니라 비평에 대한 이론이라 메타비평이론이라고 표현함).

그래서 중후반까지도 햄릿을 수사한다의 탈을 쓴 메타비평이론 교양서같은 것인 줄 알았다. 만약 장면별로 해설을 들어가며 햄릿의 해석들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살짝 불만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만으로 각 해석들이 가진 독특한 관점이 전달되는데다 자세히 찾아보는 데에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제공된다.

그리고 단순히 여러 사람의 해석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서로다른 해석의 원인이 되는 햄릿 극 내의 모순점들도 짚어주는 점도 좋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의 한도 내에서 햄릿을 소개하는 책으로는 아주 훌륭한 것 같다.

또 이전의 문단에서 말했듯,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이제까지 구축한 이론으로 햄릿의 새로운 해석을 도출해내기에 이른다. 모순점들을 짚고 가능한 설명과 그 반박을 소개하면서 쌓은 논의로 최후의 진상에 이르는 구성이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을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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