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이 합세하여 이란과 붙은 전쟁에서 쿠르드족의 참전 여부가 이슈로 떠올랐다.
전쟁 초기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의 크루드군에게 무기를 지원해서 지상군으로 투입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크루드군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크루드군의 참전은 유야무야 되는 형국이지만 중동 지역에 쿠르드족이 있는 한, 그리고 트럼프라면 언제 불씨가 되살아날지 모른다.
쿠르드족의 기원
쿠르드족은 고대에는 이란의 산악 지대에서 이란계 부족 중의 하나로 살았고, 중세에 접어들면서 이슬람 제국의 침공으로 이란이 이슬람 제국에 속하게 된 뒤에야 쿠르드족으로서의 정체성이 싹트기 시작했다.
쿠르드족은 인도유럽어족 인도이란어파 이란어군에 속하는 쿠르드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다양한 방언이 존재해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문자도 라틴 문자, 아랍-페르시아 문자, 키릴 문자 등 사는 지역에 따라 다른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스카프처럼 머리에 푸시(Puşi)를 두르고 민탄이라고 불리는 상의에 품 넓은 바지, 샬바르를 입고 할라이(halay)이라는 민속 춤을 추는 사람들이 전통적인 모습의 쿠르드족이다.
하지만 종교는 다른 중동 국가와는 달리 종교적 색채가 비교적 엷고, 수니파 이슬람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민족 종교, 세속주의자, 무신론자 등 각양각색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쿠르드 여성들은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다. 심지어 전투에서도 저격수로 맹활약을 하여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저승사자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이다.
쿠르드족 공동체와 인구
이라크 서북부 유전 지대에 쿠르드족의 자치 정부가 존재하긴 하나, 쿠르드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민 국가는 아직 세우지 못했다.
1927년 튀르키예 동북부의 아라라트 공화국과 1946년 소련의 공작으로 이란 서북부에 세워졌던 마하바드 공화국을 세운 적이 있었으나 존속 기간이 각각 3년과 2년에 불과했다.
현재 3,3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쿠르드인은 서아시아에서는 아랍인, 튀르키예인, 페르시아인(이란인) 다음으로 많다.
이 중 약 2,000만 명이 튀르키예에 거주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이란(약 1,000만명), 이라크(약 5백만명), 시리아(약 250만명) 등에 흩어져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사는 지역을 쿠르디스탄이라고 한다.
이들 국가 외에도 그리스, 불가리아,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도처에 소규모로 거주한다. 심지어 일본에도 망명한 쿠르드인 공동체가 있다.
중세 오스만 제국 시대 이래 토후국 형태로만 존재했던 쿠르드족은 독립의 열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0년 간 매번 이용만 당했을 뿐 비극과 배신의 역사만 되풀이됐다.
되풀이되는 비극과 배반의 역사
오스만 제국이 1890년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할 때 쿠르드족은 제국의 기병연대에 편성되어 학살을 주도하면서 동시에 학살을 당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쿠르드인 오르한 파묵은 “오스만 제국은 100만 아르메니아인들과 13만 쿠르드인들을 학살했다고 발언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립국가를 건설해 주겠다는 영국을 믿고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으나, 영국이 튀르키예는 독립을 시켜주면서 쿠르드족은 토사구팽했다.
1972년, 미국은 친미 국가인 이란과 친소 국가인 이라크 간 국경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라크 내 쿠르드인을 실컷 이용만 했고 분쟁이 종료되자 그들을 버렸다.
1980-1988년에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는 이란은 이라크의 쿠르드족을, 이라크는 이란의 쿠르드족을, 튀르키예는 이라크 쿠르드족을 이용해 서로를 공격했다.
쿠르드족은 2000년대 후세인을 공격하는 미국 편에 서서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으나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사담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 대통령은 현재까지 모두 쿠르드족이 맡는 관례가 생기긴 했다.
쿠르드족을 이용해 먹는 이스라엘의 행태는 더 야비하다. 이스라엘은 이란 견제를 할 때에는 쿠르드인을 이용해 먹었고, 튀르키예가 쿠르드인족을 진압할 때에는 쿠르디스탄 노동자당 PPK 리더 외잘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체포를 도왔다.
2019년, 트럼프는 ISIS(이슬람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테러리스트 국제 범죄 단체)의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사살하기 위한 군사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미군은 수십명이 죽는 데 그쳤고, 시리아계 쿠르드군은 수천명이 죽는 희생을 치뤘다. 하지만 작전 성공 후 트럼프는 오히려 시리아편에 서며 쿠르드족에게 배신의 쓴맛을 안겼다.
쿠르드족 독립이 어려운 이유
쿠르드족의 독립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쿠르드족의 공동체가 있는 쿠르디스탄 지대가 유전이 풍부한 곳이라는 점이다.
중동 국가들에게 유전은 황금 알을 낳은 거위나 마찬가지이다. 쿠르드 국가가 건설된다면 거위에 꼽는 빨대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그걸 반길 중동 국가들은 없을 것이다.
쿠르디스탄이 자리한 지정학적 위치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수에즈 운하(이집트)와 연결되는 이란-이라크-시리아를 잇는 일대일로를 건설중이다.
이란은 이라크 쿠르드 지역을 지나 시리아의 라타키아 항구에서 지중해로 나가기 위해 초승달 벨트(혹은 시아파 벨트)를 추진 중이다.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과 인도는 UAE와 사우디, 요르단, 이스라엘을 통해 유럽으로 가는 통로, 이른 바 인도-중동-유럽의 경제 회랑 IMEC로 맞불을 놓았다.
한마디로 쿠르디스탄은 국제적인 이익 충동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니 힘 없는 쿠르드족이 독립하는 것은 더 요원하다.
두 번째는 비극과 배반의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쿠르드족과 주변 국가와의 반목의 골이 깊다는 점이다.
예컨대, 튀르키예는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쿠르드어와 고유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금지시켰다.
마지막으로 쿠르드족을 통합할 정치적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쿠르드족은 주변 국가와의 갈등 못지 않게 내부 분열이 극심하다는 점이다.
이라크에서는 쿠르드족은 바르자니 가문의 KDP(쿠르드민주당)와 탈라바니 가문의 PUK(쿠르드애국동맹)로, 이란에서는 PDKI, PJAK(PKK 연계), Komala 등 여러 정당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모든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면, 쿠르드의 독립도 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트럼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은 것이 잘한 결정으로 보인다. 이미 국제적인 양치기 할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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