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을 입학했으니 딸은 이제 성년의 나이, 스무 살입니다. 스무 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찬란한 시기이자 빛나는 만큼이나 고민도 많을 수밖에 없는 나이이지요. 그렇기에 스무 살 딸이 말하면 뭐든 다 들어주려 노력하는, 저는 속칭 딸바보 아빠입니다.
오늘 자정이 넘어서, 정확히는 12시 20분이 넘어선 시각에 “아빠, 친구가 보잔다. 나갔다 올게”라고 말하고는 씩씩하게 현관으로 향했습니다. “(약간 당혹해하며)으응… 그래 무슨 일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아빠한테 전화해”…
딸하고 친구처럼 지냅니다. 아주 자주, 딸은 아빠 이름을 부르며 놀리기도 합니다. 그런 딸이 마냥 좋기만 합니다. 아내가 자주 샘통을 부릴 때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밤 12시가 넘어서 외출하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촌에서 자란 저도 어릴 때 12시 넘어서 놀았던 기억이 별로 없거니와 요즘은 옛날과는 너무나도 다른 험악한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케케묵은 관습으로 딸을 옭아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인데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빠로서, 아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까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통제가 싫지만 그래도 은근히 누군가 어느 정도는 제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거요… 혹시 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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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자기 방에 절대로, 자기 외에는 그 누구도 못 들어오게 합니다. 딸이 외출한 틈에 딸의 방에 들어선 순간, 난장판 같은 방구석을 보고 기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이게 사람이 기거하는 공간이 맞나? 하고 말이죠.
사진에는 다 담아내지 못했지만 바닥은 말할 것도 없고 책상위며 침대 위에 켜켜히 쌓인 잡동사니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 이거슨 정말 인간을 초월해버린 존재만이 거할 수 있는 신세계를 보는 듯했습니다.ㅠㅠ
순간, 아빠로서 죄책감을 조금 느끼기도 했습니다. 마냥 좋기만 한 아빠가 과연 좋은 아빠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죠. 오히려 엄격한 아빠의 역할이 자식들이 장성했을 때 “아빠, 우리가 진짜 철이 없을 때, 아빠로서 잘 이끌어주어서 정말 고마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더구나 요즘 세상은 흉흉하기 짝이 없잖아요. 특히, 여성 분의 경우에는 우리나라도 (험악한 뉴스들을 보면) 결코 안전한 나라는 아니잖아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혹, 성년이 된 딸의 귀가 시간을 어떻게들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옛날에도 그렇겠지만, 부모 역할은 언제나 어려운 것 같습니다. 최선의 부모 역할은 하고 싶은데 균형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럴 땐 저는 좀 무책임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냥 편하게 믿기로 했습니다. 현명하고 강단있는 딸이 잘 알아서 잘 대처할 거라고 말입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밤을 새워야 하나 했는데, 마침 딸이 ‘딩동’하고 왔습니다! “아빠, 아직도 안자고 뭐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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