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30일은 나의 Private Thanksgiving day이다. 그렇다고 고급스러운 만찬을 즐긴다거나 럭셔리 파티로 스스로를 축하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문자 그대로 프라이빗이니까.
북미에서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Thanksgiving)은 가을에 1년 동안 추수한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명절이다. 미국은 11월 넷째 목요일에, 캐나다는 10월 둘째 월요일에 기념한다.
그런데 난 왜 11월도 아니고, 생뚱맞게도 9월 30일을 Thanksgiving day로 삼았을까? 내일 모레 추석이 다가오긴 한다. 음력이 애매하긴 한데, 올해도 추석은 너무 이른 느낌이다. 추측건대, 추석을 처음 지낸 그 해에는 음력 8월 보름이 딱 추수를 끝낸 계절은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나의 Private Thanksgiving day도 그렇다. 투자를 하고 자산을 관리하다 보니, 10월부터는 뭔가 경계해야 되고 그간 벌어둔 자산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체감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주식도 이른 봄에 씨앗을 뿌려두었다가 자연의 계절적인 변화보다는 훨씬 이른 시기에 수확을 하고 남은 기간에는 곳간을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아야 성과가 좋았던 것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아주 주관적이라 사람마다 리듬은 제각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년 9월 30일 회계 상 1년 정산을 한다. 9월 30일이 재산세 납부 마감일이기도 하다. 영광스럽게도 우리 집 자산관리인 역을 내가 맡고 있다. 아주 옛날엔 심지어 맨날 하다가 점점 게을러져 매달하게 되고 결국 1년에 한번 정산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게으름과는 별개로 투자성과 측면에서만 보자면 매일 계좌를 들여다보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달마다 보는 것도 그렇고, 많아야 반기나 1년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한 거 같다.
1년에 딱 한 번하는 정산을 위해 감사하는 마음과 태도를 진지하게 갖추고자 9월 29일에는 집안 대청소를 하고 30일에는 하루 종일 정산에 매달린다. 일반 계좌는 물론이고 IRP, 연금저축, ISA 등 계정이 많다 보니 하나하나 열어보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올해도 대청소를 한답시고 빨래를 하고, 오후 내내 청소기를 돌리고 거실과 각 방 구석 구석에 두세 번씩 걸레질을 했더니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다. 아, 이제야 제대로 Thanksgiving Day를 맞이할 수 있겠군, 하고 스스로 감탄하는 중에 사위가 어두워졌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선 아내가 냥이 화장실 냄새가 지독하다며 투덜댔다. 아니, 내가 바야흐로 Thanksgiving 맞이 집안 대청소를 대대적으로 하면서 냥이 화장실 청소를 설마 하지 않았겠는가?
청소를 마치고 내가 기진하여 깜박 조는 사이에 냥이가 고새를 참지 못하고 오줌을 찍 갈긴 모양이었다. 삐까뻔쩍함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깟 냄새만 코로 솔솔 들어오는 모양이다. ㅋ
아무튼, 올해에도 9월 30일에 회계 마감을 했다. 올해(2024. 9. 10. 1 ~ 2025. 9. 30) 우리 부부의 금융 자산은 13.45% 증가했다. 멈출 줄 모르고 진격하고 있는 금값과 코스피 불장 덕이 매우 컸다. 올해는 내가 직장에 다닐 때보다 많이 번 한 해가 되었다.
회계 마감 처리를 한 후, 전통 시장에 가서 조기 세 마리와 상추와 깻잎, 샤인머스켓을 사왔다. 마침 딸도 내일이 면접이라 대여한 정장을 들고 집에 와 있었다.
흰 쌀을 씻어서 양배추를 썰어 넣고 새 밥을 지었다. 조기를 굽는 동안, 상추와 깻잎을 정성껏 씻어 간추려 두었다. 식구들이 저녁을 먹고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샤인머스켓도 깔끔하게 씻어 식탁에 올려두었다.
근래 속이 좋지 않다고 한 딸이 다행히 조기는 잘 먹었고 샤인머스켓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끝낸 딸은 방에 들어가 K회사 채용 AI면접을 보고(아무리 그래도 AI면접이라니. ㅠㅠ) 나와서 내일 면접을 보러 갈 기업에 대해서도 재잘댔다.
칠면조 요리는 대접을 못 했지만 나의 Private Thanksgiving day 의식은 이렇게 나름 지나갔다. 이제 2025년도 세 달 남짓 남았다.
남은 세 달 동안 늘 경계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한 해를 잘 매듭지어야 한다. 우리 가족 모두 그간 노력해 온 것들을 잘 마무리해서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 가가기를 바란다. 정장을 입은 딸애가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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