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공단이 설립된 지 올해로 꼭 만 40년이다. 동네 산책을 하다 보면 옛 마을 유허비가 자주 눈에 띄었다. <창원공단의 기억>(이창우,강찬구, 피플파워, 2023)은 부제처럼 창원 공단에 뿌린 뽑힌 사람들과 뿌리 내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계획도시, 창원공단···. 창원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단어들이다. 창원에서 나고 자란 내게 창원은 언제나 반듯한 아스팔트 도로가 깔린 계획도시였으며 마산만을 따라 펼쳐진 공업 벨트가 자리한 공업 도시였다.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공업 단지가 들어서기 전의 창원의 모습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한 주제였다.
하지만 창원이란 도시의 내력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시절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970년대 고도 성장기 당시, 창원이 아직까지는 축복 받은 농민의 땅이었을 무렵, 한국 공업의 중심지이자 이주 노동자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기로의 초입에서 서성이던 때에, 「창원공단의 기억」은 시작된다.
창원은 정부가 내건 중화학 공업화 육성 정책에 의해 국가 공업 경제의 중추로 낙점된다. 그러나 거주민 대다수가 농업 종사자인 땅이 첨단 산업 도시로 변신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준비한 정책 역시 극약 처방에 가까웠다. 단순히 공장 지대를 확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민의 생활 시설은 물론이고 생계 수단인 논밭까지 전부 공장 용지로 이전되었다. 원주민들은 생활 기반을 문자 그대로 빼앗겼으며 강제에 가까운 이주를 경험해야 했다.
희생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급진적인 변화에 대응할 제도적인 여력도 충분치 않아 원주민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보상은 부족하다 못해 주먹구구에 가까웠다. 원주민의 삶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동시에 창원은 기회의 장으로 변했다. 유유자적한 농촌에는 산업단지가 빽빽하게 들어섰고 엘리트 기능공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원주민의 빈 자리를 채웠다.
당시 중화학 공업 분야의 기능공들은 정부 주도의 파격적인 지원 아래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 공고 출신들로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 불리며 새로운 미래로의 도약을 상징하는 이들이었다.
또한 정부의 기대와는 별개로 기능공 자신들에게도 집안을 일으켜 세울 새로운 기회였다. 출신, 배경은 전부 다르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공유하는 이들이 쏟아지자 창원은 펄펄 끓는 용광로에 들어간 쇠처럼 급격한 상태 변화를 일으켰다.
기능공들은 창원의 새로운 주역이 되어 새로운 문화, 새로운 도시, 새로운 창원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고, 점차 창원은 오늘의 우리가 아는 모습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당시 창원이란 공간이 경험한 변화는 거칠고, 잔인하면서도, 창조적이었다. 쫓겨난 원주민과 빈자리를 차지한 이주민. 직접적인 원한 관계는 없더라도 두 세력 간에 응어리가 없을 수는 없다.
자칫 걸음을 잘못 들였다간 막다른 길에 다다르기 십상인 그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저자는 우직하면서도 담담한 필체로 써내려간다.
원주민이 감내해야만 했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보는 동시에, 지금의 창원을 일구어낸 이주 노동자와 원주민의 후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당시 사람들의 입에서 직접 듣는 이야기와 풍부한 사료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원주민과 그 후손, 창원 원주민 단체 삼원회, 창원에서 청춘을 보낸 이주 노동자들 등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을 인터뷰하며 당시 창원이 겪은 격변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한다.
또한 개인의 시점에서는 드러나기 어려운 면을 사료 및 논문을 통해 짚어주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여러 창원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사료, 논문을 따라가고 있으면 당시의 시대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려는 저자의 집념이 종이 너머로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집념은 「창원공단의 기억」을 창원 사람에게 고향의 내력을 소개하는 훌륭한 안내서로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한 층 더 깊은 질문을 쫓고 있다. 그 질문은 이주민 후손으로서 이 책을 읽을 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객지 놈들끼리 다 해 먹어라.”
한 이주민 노동자가 길거리에 폐지를 줍는 원주민 노인에게 들은 말이다. 이 한 마디에 담긴 체념 어린 울분과 애환을 짐작했을 때 그가 느꼈을 당혹감은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한 나 같은 독자들이 느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원주민과 이주민의 상이한 입장과 대립을 줄곧 의식하면서 답을 쫓는다.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다른 누군가에게서 빼앗은 생활 터전이었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이미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버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물음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저자의 과거에 대한 집념 어린 추적이 살짝 다르게 읽히기 시작한다. 저자는 생활 터전에서 쫓아내는 공권력에 맞서 원주민이 어떻게 저항을 하고, 그 저항이 어떻게 좌절되고 말았는지를 묘사한다.
이주한 원주민에 대한 지리멸렬한 보상이 어째서 그렇게 집행이 되어버리고 말았는지, 원주민들은 이에 어떻게 자구책을 세웠는지 묘사한다.
이는 잘못된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에 이르렀고, 달리 어떻게 했더라면 좋았을지 되짚어보는 것처럼 느껴져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답이 되지 않는다. 이미 일이 벌어진 지금은 또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책의 마지막 장에 배치된 삼원회에 대한 장은 저자 나름의 대답처럼 느껴진다.
삼원회는 창원 원주민 단체로 원주민의 울분과 분노를 위무하고자 설립되었으며 원주민의 만남의 장이자 옛 문화를 계승하는 역할을 하는 단체이다.
그리고 현재는 원주민 출신이 아닌 이주민 2세 회원들도 활발히 활동을 하며 원주민을 넘어선 창원 사람을 위한 단체로 전환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삼원회라는 단체를 둘러싼 이야기의 주역은 ‘옛 창원의 사람’인 원주민과 ‘현 창원의 사람’인 이주민이다. 그들 사이에서 삼원회는 서로 다른 두 창원을 품은 사람들을 융화시키면서 하나의 창원과 하나의 창원 사람으로 재통합할 길을 모색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단 창원 원주민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그 후손처럼 현재에도 지역이나 사회에 마땅히 소속되지 않거나 위치가 불분명한 집단은 존재하며 그들과 함께 사회 통합을 이뤄나가는 것 또한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이다.
「창원공단의 기억」은 창원의 역사를 따라가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긴장 관계를 보다 보편적이면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통찰로 승화시켜 나간 작업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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