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부터 책장에 꽂혀 있는 <고전 독서법>이 눈에 계속 밟혔다. 출처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펴보니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2012년에 펴낸 책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고전 독서법이 아니라 조선 시대 학자들은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즉 조선 시대 선비들의 공부법을 딸에게 소개하는 책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고전 독서법을 정리하면 대개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1. 통째로 외우는 독서법
조선 시대 학자들은 책의 내용을 통째로 외울 때까지 꾸준하게 읽고 또 읽었던 것 같다. 정민 교수는 <고전 독서법>에서 충격적인 사례를 많이 인용하고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다.
고대 중국 전국 시대 정치가인 소진은 젊은 시절 상투를 대들보에 묶고 턱 밑에는 칼을 세운 채로 책을 읽었고, 후한 때 관영이라는 사람은 50년 동안 다리를 뻗지 않고 무릎을 꿇고 앉아 책을 읽어 무릎이 닿은 바닥이 모두 닳아서 구멍이 뚫렸다고 한다.
조선 중기 문신 양연은 나이 40에 “지금부터 책을 읽어 학문을 이루기 전에는 절대로 왼손을 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공부만 하여 과거급제 소식을 듣고 외손을 폈는데, 그 사이에 자란 손톱이 손바닥을 다 뚫어서 손등을 뚫을 정도여서 주먹이 잘 펴지지 않았다(82쪽) 한다.
무릎이 닿아 바닥에 구멍이 뚫렸다, 손톱이 손바닥을 다 뚫었다는 진술은 사실일 리가 없겠지만 책을 대하는 자세라고 할까, 공부에 대한 태도는 그만큼 결연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고사로 전해져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 중기 문인 김득신은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백이열전>이란 글을 좋아해서, 평생 1억 1만 3천번이나 읽었다(83쪽)고 했고 그의 <독수기>에는 1만 번 이상 읽은 글이 36권에 달한다.
그리고 황득길이 쓴 <김득신의 독수기를 읽고 나서>에는 맹자를 1천 번, 논어를 2천 번, 주역을 5천번, 장자를 1천 번, 사기를 수천 번을 읽었다는 조선의 문장가들을 여럿 소개하고 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유교 경전을 얼마나 달달 외웠지는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한 이야기를 평생 1억 1만 3천번이나 읽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백이전>은 불과 788자에 불과하니까 한 번 읽는데 1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1,666,883시간이 소요된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69,453일에 해당되니 곧, 190년이 소요된다. 즉, 하루 종일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오직 백이열전만 24시간 내내 읽어도 19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김득신은 백이열전만 읽은 게 아니고 다른 책들도 1만 번 이상 읽었다. 조선시대에는 책을 묵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크게 소리 내어 읽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이러한 고사들은 읽은 이가 책을 되풀이해서 많이 읽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이러한 고사들을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사실처럼 인용하고 강조까지 해 놓아서 이 책에 대한 신뢰도가 확 떨어졌다.
2. 필사와 메모 독서법
옛날 사람들도 우리와 독서법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필사도 하고 자기 생각을 책의 여백에 메모도 했다.
그 중에서 최고는 책만 보는 바보(이분은 호가 ‘간서치’이다)로 유명한 이덕무이다. 그는 가난해서 책을 빌려 읽곤 했는데, 책을 빨리 돌려주기 위해서 한겨울에 불도 때지 않은 찬 방에서 공책에 빌려 온 책을 베껴 쓰다가 손가락에서 동상이 걸려서 손가락 끝이 밤톨만하게 부어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익은 경전을 읽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작은 종이나 읽던 책의 여백에 메모한 것이 나중에 <사서삼경질서>이라는 책으로 나왔다. 정약용의 <도산사숙록>이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메모에서 탄생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연암은 말 위에서도 공책을 펴놓고 메모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3. 격물치지 독서법
격물치지(格物致知)는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로 격물은 무질서한 사물을 가지런하게 정리함으로써 완전한 지식에 닿는다는 뜻이다. 독서법에서도 다산 정약용의 관점은 단연 정상급이었다. 정약용은 격물치지 독서법을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편지로 써서 보냈다.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책읽기에 대해 나름대로 깨달은 점이 있다. 그냥 읽기만 해서는 비록 날마다 백 번 천 번을 읽는다고 해도 안 읽은 것과 마찬가지다. 책을 읽을 때는 뜻이 분명치 않은 부분이 있으면 널리 살펴보고 자세히 따져서 근본까지 확실히 알아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차례차례 글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날마다 이렇게 공부해 나가면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곁으로 백 권의 책을 아울러 살피게 될 뿐 아니라 그 책의 내용까지 환하게 꿰뚫게 되니, 명심하도록 해라.(중략)
예전 송나라 때 학자 주희 선생의 격물치지 공부도 이렇게 했을 뿐이다. 오늘 한 가지 사물에 대해 살피고, 내일 한 가지 사물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도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했다.(161~163쪽)
정약용이 말하는 격물치지 독서법으로 책을 읽지 않는다면 백 번 천 번을, 심지어 1억 번을 읽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추측건대 다산 정약용은 아무리 유교 경전이라고 하더라도 한 권의 책을 몇 만 번을 결코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독서법은 한 권의 책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 관련되는 문헌들을 모조리 읽는 방식이었다.
비판적 책 읽기에 대하여
이 책을 읽다 뜬금없이 며칠 전 읽었던 개혁적인 사상가 루쉰의 단편 소설 <광인일기>가 생각났다. 중국의 역사가 매달려 온 유교 경전이라는 것이 사실은 삐뚤삐뚤할 뿐더러 근본은 식인 문화와 다를 바 없다는 개탄이다.
이 역사책에는 연대가 없고, 페이지마다 삐뚤삐뚤 ‘인의도덕’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한밤중까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글자들 틈에서 다른 글자가 보이면서 책에 온통 ‘식인’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루쉰 독본 213쪽)
중국이나 조선이나 그런 경전을 몇 만 번이나 수도 없이 읽고 또 외우고 앉아 있었으니 외세에 먹히지 않을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화도 나고 그들의 삶이 지루하고 허망하게 느껴진다.
고전 독서법도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책을 읽을 때는 먼저 작가가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책을 썼는가 파악해야 한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텍스트를 치밀하게 읽어 내려가야 한다. 저자의 주장에 대한 근거 확인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작가에 반하거나 지지하는 다른 작품을 읽는다면 정약용식 격물치지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작가에 반하거나 지지하는 다른 작품을 읽는다면 정약용 식 격물치지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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