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1996년 출간된 작가의 데뷔작으로 출간 당시 세기말 분위기를 반영한 건조한 문체와 특이한 소재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삶에 지루함과 허무를 느끼는 인간 군상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자살을 유도하는 한 자살교사범의 이야기를 액자식으로 구성한 소설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줄거리
마라의 죽음
이 소설의 화자는 자살을 할 만한 사람을 찾아내어 그들이 자살에 이르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그 일이 성공하고 나면 그것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1인칭 액자 소설로 전개되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화자는 고객이 의뢰한 일을 마치고 나면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돌아와 고객과 있었던 일을 소재로 삼아 소설을 쓴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소설이 열 편이 넘고, 그는 이제 서서히 그 이야기들을 세상으로 내보낼 참이다. 자신의 고객들이 소설을 통해 재생되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고 욕망을 그는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완전한 신의 모습을 갖추어간다고 믿는다.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창작을 하거나 살인을 하는 길,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세상에 그런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이 어디 있겠냐마는 작가 김영하는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 에로티시즘으로 유명한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프,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 3점과 등장인물들을 연결시켜며 개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소설의 첫 문장도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1793년에 제작된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을 본다. 욕조 속에서 피를 흘리며 절명해 있는 자코뱅 혁명가 장 폴 마라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다.” 아마도 작가는 여러 차례 이 그림을 묘사해 보며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설정했을 것이다.
그림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도서관으로 이어진다. 화자는 도서관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인터뷰를 실은 잡지와 부고 기사, 구인 광고들을 꼼꼼하게 검색하면서 의뢰인을 찾을 단서와 작업의 자료를 확보한다.
주인공이 주로 읽는 건 역사책이나 여행 안내서이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소설가 김영하의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다. 소설은 삶의 잉여에 적합한 양식이기에, 그럴수록 더 군더더기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 안내 책자들은 복잡한 사실들을 단 몇 줄로 줄여버린다.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은 뻔뻔하다. 압축의 미학을 모르는 자들은 삶의 비의를 결코 알지 못하고 죽는다. 나는 여행을 떠난 후에는 소설을 읽는다. 소설은 삶의 잉여에 적합한 양식이다. (본문 중에서)
그리고 화자는 인사동에 들러서 그림을 보기도 하고 음반 가게에 들러 몇 장의 CD를 사기도 하면서 낮 시간을 보낸다. 화자의 인물 캐릭터가 점점 생동감 있게 다가오지 않은가?
화자는 저녁이 되면 도심의 허름한 빌딩 7층에 자리잡은 사무실로 향한다. 사무실에는 전화와 책상, 컴퓨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곳에서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전화를 기다릴 뿐이다. 그렇게 하면, 새벽 한 시까지 화자는 신문 광고를 본 사람들의 전화를 약 스무 통 정도 온다는 설정이다.
자, 음반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고 도서관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화자는 어떤 인물들을 섭외하는데 성공했을까?
유디트
‘내’가 쓴 소설 속 첫 번째 인물로 유디트와 C, K가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녀는 첫인상이 구스타프 클림프의 그림 <유디트>를 닮아 그렇게 부른다. 화자는 <유디트>를 민족주의와 영웅주의를 거세하고 세기말적 관능만을 남겨둔 그림이라고 해석한다.
C와 유디트의 첫만남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C가 어머니 발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C의 동생 K와 유디트가 C의 집 마루에서 섹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K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형의 집에서 그렇게 놀고 있었던 것이다.
유디트는 총알 택시 기사 K가 사당역 근방 술집에서 몸값을 치르고 데리고 온 스무 살 여자였다. 유디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C와도 섹스를 하게 되고 그와 함께 여행을 간다. 20년 만의 폭설이 내린 날, 유디트와 C가 탄 자동차가 한계령 어귀 국도상에 갇히고 만다.
영하 10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온이었지만 눈이 언제 그칠지 몰라 C는 연료를 아끼기 위해 시동을 껐다. 차 안에 갇혀 버린 두 남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작가는 그 상황을 아주 외설적으로 묘사한다.
C가 잠들었다 깨었을 때 차 안에 유디트는 없었다. 그녀는 차 안에서 북극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C는 눈이 헤쳐진 자국을 따라 그녀를 찾아 나섰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제설차를 겨우 얻어 탄 C는 주유소가 딸린 식당에서 하루를 묵었다.
아침에 일어나 C는 방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그녀의 핸드백을 발견한다. 핸드백 속에 들어있는 주민등록증에는 ‘1975년 1월 21일생, 본적 강원도 명주군 주문진읍’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울로 돌아온 C는 그 뒤로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C는 꿈에서 북극을 보는 일이 잦아졌다.
한편, K는 94년형 스텔라TX 총알 택시에 탄 손님들을 수원 남문 앞에서 모두 내려주고 세연에게 공중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K가 할 수 있는 일은 택시를 몰고 질주하는 일 밖에 없었다. 차의 속도가 증가할수록 시야가 점차 좁아지고 도로 옆의 나무들과 가로등의 형체가 흐물흐물해지다 사라진다. K는 끈적끈적한 점액질처럼 배경이 엉켜 붙은 채 뒤로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낄 뿐이다.
에비앙
이 장은 B급 애로 비디오를 재현한 듯한 스토리와 묘사가 주를 이룬다. 화자가 유디트의 의뢰를 끝내자마자 그녀를 그린 화가 클림트의 나라로 가고 싶어 오스트리아 미술관에 갔다가, 거기서 한 여자를 만나 즐긴 이야기이다.
미술관 카페에서 만난 스물한 살 홍콩 여자가 에비앙이다. 그녀는 바에서 종이로 만든 옷을 입은 마네킹 아르바이트를 한 여자였다. 거시기 해서 줄거리 최대한 요약하면 에비앙은 그녀를 산 남자에게 총을 겨누고 그 남자의 정액이 든 생수 에비앙 병을 다 마시게 한 후 도망을 나왔다. 그래서 이름이 에비앙이다. 아무튼 그렇게 의미 없이 만났다 둘은 각자의 길을 떠난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결말
미미
유디트가 한계령에서 사라진 그날 밤, K는 부산으로 달렸다가 서울로 돌아오기를 두 번 반복했다. 그래도 잠이 오질 않았다. 며칠 뒤 K는 차분한 목소리로 유디트가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음을 C에게 알려준다. 물론 화자가 작업한 결과이다.
이제 C는 행위 예술을 하는 ‘유미미’라는 여자를 만나 전시회 개막일에 상영할 그녀의 퍼포먼스를 비디오로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비디오를 다 찍고 나자 미미는 테이프를 돌려 달라고 실랑이를 벌이다 간 이후로 전시회 개막일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전시회 개막일이 되자 화랑의 문이 열리고 갑자기 나타난 미미는 생애 마지막 퍼포먼스를 하고 사라진다. 미미 역시 화자가 작업한다.
사르다나팔의 죽음
화자는 이제 들라크루아의 그림 <사르다나팔의 죽음>을 감상한다. 성도의 함락을 눈앞에 둔 바빌로니아의 왕이 무사들을 시켜 그의 왕비와 애첩들을 살해하는 그림이다.
화자는 들라크루아는 죽음을 주재하는 자의 내면을 알고 있었던 화가로 이해한다. 작가 김영하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아래와 같이 찍었다.
이제 이 소설을 부치고 나면 나도 이 바빌로니아를 떠날 것이다. 비엔나 여행에서처럼 그곳에도 미미나 유디트 같은 여자가 기다리고 있을까?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141쪽)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해석
이 소설의 주제는 죽음과 섹스가 아닌 지루한 인생이다. 지루한 인생을 달래기 위해 K는 속도에 매달리고 유디트(본명 세연)는 섹스에, 미미는 행위 예술에 매달린다. 그리고 작가를 대변하는 화자는 이야기에 매달린다.
그러나 등장인물 모두 지루한 인생을 달래지 못해 죽음을 선택한다. 화작 역시 신의 모습에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창작을 했지만 끝내는 왜 변하는 게 없을까 한탄하면서 향후 그 또한 죽음 충동에 시달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중편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123>는 작가 김영하의 데뷔작이자 그의 초기 대표작이 되었다. 그는 작가로서의 소신을 첫 작품에 그대로 담아냈다. 이후의 김영하 소설들은 데뷔작의 변주곡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여담으로 김영하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공통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둘 다 음악과 고양이 애호가이며 결혼은 했으나 자녀가 없고, 개인주의를 근간으로 문학적 자유를 지지하는 것 등등. 이러한 말을 듣고 하루키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작품 성향도 비슷한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리뷰 글은 아래 링크 참고.
베스트셀러는 B급 정서를 묘하게 자극하는 공통점을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다. 그게 판타지든 섹스든 상관 없다. 지루한 인생이니까 그게 먹혀드는 거다. 진지한 문학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한다. 작가 김영하는 대중의 그러한 정서를 파고드는 능력을 가진 작가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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