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기를 보면 항상 자괴감이 든다
7월 2일 토요일, 폭염주의보
아내는 하루 마무리로 일기 쓰기에 열심이다. 5년을 쓸 수 있는 일기장이라 꽤 두툼하다. 첫 장에 ‘yearly jounal for 5 years’이라 적혀 있다. 각 쪽마다 위에 날짜가 쓰여 있고, 아래로 다섯 칸으로 구분되어 있다. 일 년을 쓰고 나면, 다시 처음 쪽으로 돌아와 일 년 전 오늘의 일기를 보면서 두 번째 칸에 일기를 쓰는 방식이다.
이제 5년 일기 쓰기는 아내의 리추얼 라이프가 되었다. 벌써 6개월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 왔으니까. 아내의 5년 일기 쓰기를 모범으로 삼아 티스토리 블로그에 5년 일기장을 이렇게 만들고 쓰기로 했다. 나의 디지털 5년 일기도 5일을 쓰고 나면 묶어서 글 하나를 발행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아이들 방에만 에어컨을 켜다 오늘은 거실에도 에어컨을 틀었다. 며칠째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것 같다. 어젯밤에는 창문을 있는 대로 활짝 열어놓고 자기 시작했다.

7월 3일 일요일, 삼시세끼
체감 온도가 35도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지는 걸 느꼈다. 아들과 라면을 먹고 취나물을 겨우 무쳐 점심을 때웠다. 침대에서 나른하게 한참 뒹굴다, 하는 수없이 전통시장에 가서 곰국과 마늘을 사 왔다. 잔멸치를 볶아 반찬을 만들었다.
7월 4일 월요일, 소나기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었다. 현관을 나서자마자 소나기가 우두둑 떨어졌다. 폭염 속 소나기가 어찌 그리 반갑든지. 가게 앞 좁다란 정원이 인상적인 식당이었다. 8천 원에 삼계탕을 먹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16천 원이라니, 요즘 고물가를 실감한다. 아들이 백제 계삼탕보다 이 집 삼계탕이 더 맛있다고 했다. 2천 원 더 비싼 값을 하긴 하는 모양이다.
와이프가 야근인지라 짜장 카레를 만들어 아들과 둘이 먹었다. 감자 두 개, 양파 한 개, 애호박 한 개, 당근 두 개를 네모나게 쓸고, 돼지고기와 볶아서 오뚜기 짜장 가루 수프를 넣으면 끝나는 간단한 요리다. 그런데도 선 듯하기가 어렵다. 아직은 요린이라 그런 걸까? 요리를 할 때는 국물이 많아 보였지만, 적당량이었다.
7월 5일 화요일, 하얀 밤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며칠 동안 그래도 늦게나마 잠이 들었었는데, 오늘은 앵앵거리는 모기 때문에 그르치고 말았다. 동이 트니, 닭 울음소리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소리로 대기가 빽빽해진다. 청량한 소리를 내는 놈이 있는가 하면, 앙증맞고 작은 소리를 내는 놈도 있다. 새소리도 각양각색이다.
이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면, 하루가 그만 엉망이 되고 만다. 아침은 그래도 시원하다.

일기 쓰면 좋은 점
위의 일기들은 블로그 ‘로그라인’의 프롤로그인 셈이다. 아내가 5년 일기를 열심히 쓰는 걸 보고, 그렇담 나는 블로그에 5년 일기를 써야지, 흉내 내며 써본 것이다. 맨 위 사진은 아내가 8월 28일, 어제까지 5년 일기를 쓴 것을 찍은 사진이다.
아내가 워낙 깨알같이 작은 글씨를 쓰느라 돋보기를 써도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다. 내가 작을 글씨를 알아 볼 수 없다는 걸 아내가 알고는 더 작은 글씨로 쓰는 걸 즐기는 것 같다. 아마도 남편 욕하는 것이 태반이겠지만. ㅋ
아내는 처녀 때부터 일기를 써 왔다.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처자였다. 장인어른도 그랬던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때, 일기를 쓰곤 했으나, 아내의 성실함에 견주면 새 발의 피다.
7월 2일 시작한 디지털 일기 쓰기도 나흘 만에 관뒀다. 일기를 쓰면 좋은 점이 도대체 뭐가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쓴 일기장을 시간이 조금 지나 들여다보면 어? 내가 이런 걸 왜 썼지? 하는 생각이 들며 쪽 팔리는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특별한 내용도 없고, 이걸 일기라고 쓰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자괴감이 심해지면 급기야 블로그조차 완전 폐쇄하게 되는 사태를 몇 번 겪었었다. 블로그도 본질적으로는 일기와 같은 류이므로.
내가 발견한 일기 쓰기 좋은 점, 효용은 딱 일기를 쓰는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 외에는 없었다. 이 무용한 하루하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뭔가 기록하고 있다는 나름의 안도감, 같은 것 말고는 일기를 쓰면 좋은 점이라곤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또다시 일기를 쓰곤 한다. ‘기록’하는 행위에 유혹당하는 유전자가 내게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렇게 블로그에 열심히 글도 올리고 있겠지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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