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2018 올해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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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 2019)은 작가의 장편 데뷔작 <쇼코의 미소> 이후 2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작품으로 ‘2018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 선정된 소설집이다. 작은 판형에 박선엽 작가의 그림이 더한 특별 한정 에디션이 2022년 문학동네에서 출판됐다.

소설가 김연수는 최은영을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평했고, 김영하는 <내게 무해한 사람>은 “재능 있는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소설집”이라고 평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작가의 여린 마음과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소설집이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 수록 작품

이 소설집에는 작가가 보낸 미성년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들에서는 어린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과 한량없는 슬픔과 외로움의 시간들이 소환된다.

수록 작품 목록은 2017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그 여름’을 비롯해 ‘601, 602’, ‘지나가는 밤’, ‘모래로 지은 집’, ‘고백’, ‘손길’, ‘아치디에서’ 등 모두 일곱 편으로 주인공들은 모두 청소년들이다.

내게 무해한 사람 책표지
내게 무해한 사람 책표지

그 해 여름 줄거리

<그 해 여름>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경과 수이는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났다. 시작은 사고였다.’ 이경은 문과반이었고 수이는 예체능반이었고, 수이가 찬 공에 이경이 맞아 안경테가 부러지고 코피가 났던 것이다. 그 사고를 계기로 만날 일이 전혀 없었던 둘은 가까운 친구가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경과 수이는 서로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는 사이가 되었고, 손가락 하나 잡지 않고도, 조금도 스치지 않고도 서로에게 다가가기만 해도 몸이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오래도록 키스했다. 혀와 입술의 맛, 가끔씩 부딪치는 치아의 느낌, 작은 코에서 나오는 달콤한 숨결에 빠져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라는 것도, ‘나’라는 의식도, 너와 나의 구분도 그 순간에는 의미를 잃었다. (본문 14쪽)

시골 읍내에서 여고를 함께 다니던 둘은 자연스레 연인이 되었다. 스무 살이 된 이경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학의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이경은 부모의 지워으로 기숙사에서 학교를 다녔고 레즈비언 바에도 들락거렸다.

반면, 수이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축구의 꿈을 접어야 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 서울 외곽에서 잠만 자는 방을 구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정비 일을 배우고 카센터에서 일을 하며 하루를 최대치로 살았다.

레즈비언 바에서 연극이 열리는 날 이경은 수이를 초대했다. 이경은 수이의 초라한 옷차림과 더러운 러닝화, 새로운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촌스러움, 자기 학력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모습까지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경은 자연스럽게 수이와 멀어졌고 레즈비언 바에서 만났던 은지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수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 이경이었지만,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이경은 고열에 시달리며 죽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꼬박 열두 시간을 자고 정신을 차린 수이가 말한다.

“날 용서해줄래.”
수이는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널 힘들게 했다면, 그게 뭐였든 너에게 상처를 주고 널 괴롭히게 했다면.”
(본문 48~49쪽)

용서를 구해야 할 쪽은 이경이었지만, 수이는 그녀가 사랑했던 이경에게 적어도 무해한 사람으로 남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연애는 무너지고 있었다.

얼마 뒤 이경은 수이에게 이별을 고하고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낸다. 청춘의 한 모퉁이를 5년 동안 함께 지나온 이경과 수이의 마지막 밤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작가 최은영 특유의 문장들은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그 슬픔을 묘사해 낸다.

이경은 일 년도 가지 않아 은지와의 연애도 끝낸다. 서른넷의 늦은 봄, 은지에게서는 연락이 와 이경은 한 번 만났지만, 수이는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르게 됐다. 수이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은지와 만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이경은 고향집에 들러 수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다리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입을 벌려 작은 목소리로 수이의 이름을 부르며 소설은 끝난다.

내게 무해한 사람 독후감

최은영은 작가의 말에서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작가의 말은 이경이 수이에게, 수이가 이경에게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 것처럼 그랬다는 뜻일 게다.

이 소설집에 실린 두 번째 단편 ‘601, 602’는 아파트 호수의 이름이다. 601호와 602호에 살던 초등학생 ‘나’와 효진이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작가가 그리고 있는 효진이의 오빠 ‘기준’이 같은 남자애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생각되었다.

여덟 살 난 여동생을 열세 살 난 오빠가 동생의 몸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폭행을 하는 남자애가 과연 있을까? 아빠는 “아 잡겠다. 적당히 해라.” 라고 말할 뿐 제지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세상엔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작가 최은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간 듯한 십 대와 이십 대의 시간들을 소환하여 청춘의 사랑과 우정의 이면을 작품들 속에서 아주 민감한 감각으로 묘사했다. 작가 최은영은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제는 지나가 버린 그 아픈 시간들을 조용히 돌아보고 인생의 의미를 성찰할 시간을 갖게 한다.

고통을 주지 않고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처럼 나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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