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인터넷 등지에서 작품의 악평을 올리는 것을 지양해야한다는 운동같은 것이 벌어졌었다.
여러 종류의 논리가 있었는데, 기억나는 건
‘호평 백개가 주는 선한 영향력보다 악평 하나의 해악이 더 크다. 구체적으로는 작품의 판매량이 크게 줄어든다’
‘악평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작가에게 도움을 주는 줄 아는데, 또는 자기가 작가보다 뭔가를 더 잘 알아서 그러는 줄 아는데 그건 전부 착각이다. 악평은 작가를 발전시키지도 않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정도다.
당시의 배경을 소개해두자면, 이런 이야기에는 여러 종류의 ‘악평’에 관한 것이 섞여있었다.
먼저 첫 번째 논리에서 말하는 ‘악평’이란 주로 인터넷에 연재되는 작품에 매겨지는 평점 또는 댓글이다. 당시에는 평점테러가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소수의 인터넷 악플러 때문에 작가의 상업활동이 피해를 입는다는 배경이 있었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좌표를 찍히면 조직적으로 낮은 평점을 매기면 연재 플랫폼의 노출란에서 사라지게 되어 노출량이 줄어든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었다.
한 편 두 번째 논리에서 말하는 ‘악평’은 또 전혀 다른 것으로 작가지망생들 간에 서로의 작품을 보여주고 감상을 받는 과정에서의 악평을 말했다. 이런 활동에서 발생하는 평가는 단순 악평이나 비평같은 게 아니라 달리 지칭하는 용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진 않는다. 여하튼 이 경우 문제가 된 건, 악평을 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도움을 준다는 명목으로 비판을 하지만, 원래 작품이란 단점을 메우기보단 장점을 갈고닦는 것으로 매력적인 작품이 되는 것이니만큼 이런 비판은 작가로써 발전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논리는 그랬다.
그러면서 따라오는 이야기가, 실제 작가들 간에 서로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주고받을 때는 장점만 이야기한다던가, 애초에 상대방에게 평가를 부탁하는 이유는 그냥 내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니까 눈치껏 맞춰주면 된다던가, 어차피 이 주제에 대해 상대방이 자신만큼 오래 생각했을 리 없기 때문에 결국 귀기울여 들을 필요 없다던가, 하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하잘것없는 이야기들이 사족으로 붙었다. 눈치챘겠지만 이렇게 사족으로 따라붙는 이야기는 또 다른 ‘악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실제 작가로써 서로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주고받는다, 라는 상황은 당연히 지망생들끼리 평가하는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애초에 이미 작가가 되었는데 서로 감상평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건 서로가 어느정도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인정을 한 관계이며 사적으로도 가까운 관계란 뜻이다. 안좋은 말이 나오기가 오히려 어려운 상황이다. 상대방에게 평가를 부탁하는 이유는 그냥 내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 라는 이야기는 애초에 진지한 평가를 바라는 상황이 아니다. 여기에 묻지도 않았는데 대뜸 당신 작품의 나쁜점과 개선점 리스트를 정리해서 찾아왔습니다, 라는 수수께끼의 광인 이야기까지 들고나오는 사람까지 합쳐져 이야기는 점점 카오스로 향해가고, 악플러에게 상처받은 무수히 많은 작가지망생, 작가, 기타 등등의 집단이 생겨난다.
이렇듯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라는 건 논의라고는 도무지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주제와 용어가 뒤죽박죽으로 섞여서 이루어진다. 원하는 것은 감정의 토로에 불과한데 진지한 감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보다 강경하게 해결책을 촉구하다보니 이런 시답잖은 ‘운동’같은 게 벌어진다.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로 이 가엽고 눈꼴시려운 시절에 대한 변호를 해두자. 당시는 한창 인터넷을 기반으로 작가활동하는 인구수가 급증하던 시기이자 작가와 불특정 다수의 독자 간의 만남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던 초창기였다. 어떤 식의 만남이 바람직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으며, 바람직하지 않은 만남에는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규칙이나 공감대가 희박했다. 그러니 별점테러같은 걸 당한 작가는 피해를 보상받기는 어려웠고 그저 고통을 감내해야했다. 매일 갱신되는 작가의 새 연재를 따라가며 홀로 작가와의 내적 친밀감을 쌓아가던 독자가 당신 작품을 고칠 99가지 방법을 5700자에 걸쳐 작성하는 광인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최초로 겪거나 목격하는 사람들은 그 정신적 충격 때문에 뇌가 그로기상태가 되어있었다.
마지막으로, 악평에 대한 내 기준을 정리하면 나는 작가가 읽을 때 기분이 어떨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내 좋을대로 감상을 적는 게 원칙이다. 작가의 경제활동이나 뭐 이런 것 따위를 신경쓰는 건 그 업계 종사자의 관점이지 그런 것과 아무 관련이 없고 제반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내가 신경쓰려고 해봐야 의도했던 대로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의미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악평을 특별히 삼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나도 악평을 도무지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작품을 검색했을 때 독자의 리뷰보다 서점이나 도서관의 공허한 책 홍보문구가 더 많이 나오는 경우다. 거기에 독자의 리뷰가 명백히 AI로 작성되었다면 더더욱 서글퍼져서 악평을 할 기분이 아니게 되버린다.
오늘 마침 그런 기분이 들어버렸기 때문에 악평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