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 클라우드 프리티어 인스턴스 2OCPU, 12GB램(스토리지 47GB)를 딱 6일 사용하고 다시 돌아왔다.
서버 단에서 압축과 철통 같은 방어막, cron으로 자동 백업 시스템까지 구축해 놓았지만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이유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타사 호스팅 업체에 비해 압도적인 스펙을 갖추었음에도 속도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았다.1 이는 국내에 진출한 해외 업체의 라우팅 문제이거나 무료 티어에 붙는 속도 제한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는 신뢰성 문제다. 며칠 전 오라클 무료 티어와 관련한 블로그 글을 읽었다. 그 유저는 나처럼 무료 계정으로 신청을 하다가 유료 계정을 전환하여 2코어 12GB램을 받아 서버를 돌렸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메일 등 아무런 통지도 없이 인스턴스가 회수되어 웹은 뻗어 있었고, 계정은 정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라클 클라우드(OCI) ‘상시 무료(Always Free)’ 인스턴스는 7일(168시간) 동안 CPU 사용률, 네크워크 사용률, 메모리 사용률이 10% 이하면 유휴(Idle) 상태로 간주하여 리소스가 회수(정지)될 수 있다. 지금은 15%로 조건이 강화되었다.
유료 계정은 이 조건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유저는 유료 계정일 뿐만 아니라 유효 조건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데이트를 모두 잃어버린 그는 정지 사유가 뭔지 오라클에 문의했다.
돌아온 답변은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요약하자면) “영업상 기밀에 해당되어 이유는 알려줄 수 없고 데이터도 찾을 수 없으며 이것은 최종 답변이다.” 이었다고 한다.
그 유저는 몇 년 간 진행한 프로젝트를 오라클 인스턴스에 올렸고, 백업도 따로 받아 놓지 않았을 후회하고 있었다.
오라클 본사와 한국 지사를 오가는 통화 끝에 다행스럽게도 인스턴스를 살릴 수 있었고 데이트도 복구했다고 한다.
잘 정리된 그 블로그 글 밑으로 유사한 사례를 겪은 댓글들이 여럿 달려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게 만약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3년 동안 별탈 없이 잘 운영하고 있다는 몇몇 유저의 글도 보았지만, 2026년 5월 23일 01:42 DNS 서버를 변경했다.
무료라면 당신이 상품이다
한때 “무료라면 당신이 상품이다 If you’re not paying for the product, you are the product”2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오라클 서버에는 딱 6일 머물러 있었지만 근 한 달 간 오라클 덕분에 벌처에 서버 이전을 할 때처럼 생고생을 했으나 잘 놀기도 했다.
고생한 만큼 뭔가 그래도 남는 것이 있지 않겠냐, 하는 위안을 삼기에도 너무 늦은 나이이다. 이 나이에도 무료에 집착하는 인간이라니.
오라클 무료 티어는 락인효과(Lock-in Effect)를 노린 거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마도 “You are the product” 기치 아래 있을 것이다.
내가 뭔가 무료로 얻는 것이 있다면, 내가 상품이 되는 순간이다. 유튜브에서 ‘경량문명’이라는 책 관련 콘텐츠를 스치듯 본 적이 있다.
경량문명이라니, 좀 철지난 키워드 같았다. 거침 없는 AI물결이 도도하게 흘러 다다른 곳, 거기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그 풍경이 아마도 다음 문명의 얼굴이 아닐까?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만, 인간은 이제 거의 인간로서 존재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오라클(신탁) 서버 위에서 내 블로그를 굴리는 동안 그런 생각을 좀 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무료가 될지도 모른다. 무료 급식, 무료 복지, 무료 소득, 인간이 상품으로서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래도 이건 인간이 상품으로서 최소한 가치를 지녔을 때 이야기이다. 인간이 구매력을 상실하고 나면 어떤 상품으로서 어떤 가치가 남을까.
또 인간이 자신을 상품으로서 내어주고 나면 인간은 뭐가 남는 것인가. AI도 지금 흐름만 보면 상품으로서 자신을 내어주고 있다. 자신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업데이트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쫄보 같았다. 어렵게 개설해 놓고 쫄아서 일주일도 안 돼서 튄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다.
서버 단에서 압축과 철통 같은 방어막, cron으로 자동 백업 시스템까지 구축해 놓았는데 말이다. 내가 요즘 모험심이 너무 사라진 것 같다. 오라클에 대한 호평 글도 많지 않았던가?
2026년 5월 26일 화요일 오전 11:08:35 컴백!
- 고성능이라는 Brotli 압축과 FastCGI Cache, Redis 객체 캐싱 적용이 무색한 결과였다. ↩︎
- 1973년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와 카를로타 페이 슐먼이 제작한 영상 예술 작품 “Television Delivers People”에서 “텔레비전이 시청자를 광고주에게 상품으로 팔아넘긴다”는 개념이 등장했다.
2010년 8월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메타필터(MetaFilter)’에 ‘앤드루 루이스(Andrew Lewis)’가 이 문구로 댓글을 남겼다.
이후 2020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에서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가 이 문구를 인용하며 대중적으로 유명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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