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때부터 거의 대부분의 과목에 대해 배워야하는 이유를 느낀 적이 없다. 배워서 나한테 도움이 될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린이는 학교를 가야하고, 학교에 가면 뭔가는 해야하고 선생님들도 뭔가는 해야하니까 이렇게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이다, 같은 흐릿한 생각조차도 없었다. 그냥 학교에 가지 않고, 수업을 듣지 않으면 벌이 부과되니까 애완동물이 배변훈련을 하듯이 수업을 듣고 학문을 배웠다. 배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건 의무감이건 구체적인 생각으로 의식 중에 떠오른 적도 없다. 진정한 의미로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앞서 나란 사람이 미래에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거듭날지, 이 지식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어떤 면에서 유용할지 따위의 것을 생각해야 한다. 정말 한심하게도 나는 그런 것에는 일말의 관심없이 되는대로 살아왔다.
그런만큼 당연히 ~~을 공부해야하는 이유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런가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그런 생각이 바뀌게 된 일이 있어서 글을 쓴다. 전혀 관심이 없던 과목 중 적어도 한 과목에 대해서는 공부해야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참고로 그 이유를 미리 알지 못해서 후회하는 글은 아니다. 아마 이 이야기를 예전에 내가 들었다고 해도 뭐가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적어도 그 때 당시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기본적인 상상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의 평생 의심한 적 없이 더불어 살아온 편견을 스스로 부정하는 건 꽤나 상쾌한 기분이기 때문에 기념삼아 적어두는 것이다.
아마 아즈마 히로키의 ‘정정하는 힘’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 생각을 떠올렸던 것 같다.
요지는 지금 우리 세상을 움직이는 어느정도 규모있는 세력이나 힘은 대부분이 인간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먼저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도 아마 지금의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더 나이가 많고, 대한민국이란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 (민주주의, 삼권분립, 정교분리, 헌법에 기초한 법체계 등의 국가시스템)은 그보다도 더 나이가 많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국가시스템은 서구의 국가시스템을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현존하는 세상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렇지 않을까. 거기다 대한민국이란 국가를 넘어가 지금 세상을 움직이는 질서체제 (베스트팔렌 체제-나폴레웅 이후 빈 회의-세계대전 후 냉전체제-현재의 신냉전 체제)는 더더욱 역사가 오래되었다. 국가나 정부 말고 다른 분야로 가도 마찬가지다.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국민의 미래에 큰 역할을 행사하는 수능과 과거제도 그리고 고시생, 로마시대 때부터 시작된 벽돌도로, 소련에서 시작된 아파트란 주거용 구조물, 심지어는 인터넷까지도 이젠 역사가 상당히 쌓였다. 신상품이 쏟아져나오고 AI니 사물인터넷이니 하는 시대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옛 시대의 유물에 둘러싸여있는지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러니까 이런 시대에도, 우리는 아주 옛날부터 형성된 힘이라고 할지, 흐름 같은 것에 우리의 인생을 조종당하는, 또는 영향받게 되고 만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내세운 역사관도 우리가 보면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러시아민족의 기원은 9세기 경 키예프에 모인 슬라브 족들에서 시작되었다. 이후로도 러시아의 역사에서 키예프는 문화적 산업적 중심지로 활약했다. 그런 키예프가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것이다. 옳고그름을 떠나, 러시아 민족이란 개념으로 쌓여온 천년묵은 생각이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정말 역사에 포위되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도 아마 자유롭진 않다. 유명한 밈이지만, 북한이 멸망한 뒤 중국이 그 영토를 병합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그 안에 단순히 위협적인 이웃이 가까이 왔다는 것 이상의 감정이 들어있다면 우리도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일론 머스크가 말한 지구를 탈출하고 싶다, 는 이야기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우린 탈출할 수 없다. 기술적 문제는 둘째치고, 나고자란 이 환경이 주는 익숙함을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살려고 했다간 어지럼증이 도지고 말 것이다. 자신이 놓여버리고 만 이 세상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욱 실리적인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공부가 필요했던 것이구나, 하고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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