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작가 G.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책 줄거리

수정 2026. 04. 13. 월 12:06

인생을 좀 살아보았다면, 그래서 인생이 덧없이 느껴졌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 바쁜 세상에 읽기에는 지나친 두께가 있는 작품이지만, 무언가 깊은 여운을 남길 것이다.

이 글은 아래 글에 이어서 줄거리와 결말, 그리고 작품 해설을 담았다.

(전편에 이은) 줄거리

마콘도 마을 사람들은 잠을 못 자 기억력을 상실했었는데, 이미 죽었던 집시 멜키아데스가 다시 마을로 찾아와 맑은 빛깔의 물을 주어 기억력을 되찾게 되었다.

멜키아데스는 죽고 나니 너무 외로워서 다시 돌아왔노라며, 아직 죽음의 손길이 한 번도 뻗은 적이 없는, 지구의 끝에 있는 마콘도에 머물며 은판사진술(옛 프랑스의 사진술 연구)에 몸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난 다음, 나이가 거의 200살이나 되고 자기가 지은 노래를 나눠주면서 가끔 마콘도 마을에 들르던 현인 프랜시스코가 돌아왔다.

멜키아데스는 잠도 안 자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원리를 연구한 끝에 부엔디아 가문의 모든 흔적이 말끔히 제거된, 유리로 지은 집들이 가득 찬 위대하고 빛나는 도시 마콘도의 미래를 예언하는 글을 양피지에 라틴어와 암호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동물 과자 장사로 큰돈을 번 우르슬라는 레베카와 아마란타가 숙녀가 된 걸 보고 집을 대규모로 증축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그때 돈 아폴리네르 모스코테가 무장한 군인들을 대동하여 이 마을 군수로 부임해서 온다. 나중에 아우렐리아노는 그의 아홉 살 난 딸 레메디오스를 보고 반해서 아홉살 난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증축 기념 댄스파티에서 자동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서 이탈리아 전문가 미남 청년 피에트로 크레스피가 마콘도 마을로 왔는데, 그에게 한눈에 반한 레베카가 그와 약혼을 했다.

아마란타 역시 그를 좋아했는데, 레베카에게 너를 죽이는 한이 있어도 네  결혼식을 방해하고 말 거라는 경고를 하고 우르슬라와 여행을 떠나버린다.

세월이 흘러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미쳐서 연금술 실험실과 은판 사진실과 은세공 작업실의 기구들을 모두 산산조각을 내는 통에 아울렐리아노가 이웃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마당에 있는 밤나무에 그를 묶었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여행에서 돌아온 우르슬라와 아마란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만 자꾸 지껄여댔다.

필라르는 아우렐리아노의 동정을 빼앗듯 즐긴 후에 레메디오스와 연결해 준다. 아울렐리아노는 그녀가 첫 생리를 하고 한 달 뒤에 3월의 어느 일요일 날 응접실 제단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레메디오스가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곧 끝나고 말았다. 너무나 행복하게 사는 레메디오스를 보고 질투에 눈이 어두워진 아마란타가 그녀의 커피에 본의 아니게 독을 풀어 넣었기 때문이었다.

레메디오스의 상을 다 치르고도 한참 지난 후, 호세 아르카디오가 몸집이 거대한 사나이가 되어 돌아왔다.

엄청나게 큰 남성을 자랑하며 홍등가에서 지내던 호세 아르카디오가 어느 날 레베카를 보고 “얘, 너 그만하면 벌써 계집 구실을 하겠구나.”라고 말했을 때, 레베카는 다리가 휘청거릴  만큼 제정신을 잃었고, 약혼남을 버리고 그와 결혼을 해버렸다.

버림받은 피에트로 크레스피는 아마란타에게 청혼을 하지만, 이번에는 아마란트가 어찌 된 일인지 그의 청혼을 거절하자, 그는 자살하고 말았다. 이후 아마란타는 부엔디아 가문의 거의 모든 자손 남자들의 정욕의 대상이 되었고, 그녀도 은근히 그 육욕들을 즐겼다.

레메디오스가 죽고 나자 아울렐리아노는 보수파를 응징하기 위해 자유파를 규합하여 반란군을 지휘하는 대령이 되고 혁명군 총사령관까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지휘한 모든 전투는 패배했고, 전쟁통에 그가 씨앗을 뿌린 그의 17명의 아우렐리아노도 훗날 모두 사형을 당했지만,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도 살아났고, 자살하려고 심장에 총을 쐈지만 살아났다.

책표지

기나긴 전쟁이 끝나고 마콘도 마을에 철도가 들어오고, 바나나 화사가 들어오고 이방인들이 각지에서 대거 쏟아져 들어왔다. 부엔다이 가문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콘도 마을은 번성했다.

그러나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이 대규묘 파업을 일으켰고,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인들이 시위대 3000여 명을 기관총으로 쏴 죽이고 기차에 실어 바다에 수장해 버렸지만, 그 역사를 아는 마을사람들은 없었다.

대홍수가 지나간 다음 마콘도 마을은 서서히 폐허로 되어가는 와중에도 부엔디아 집안은 똑같은 이름을 대대로 되풀이 쓰면서 <백년 동안의 고독>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집안 자손들의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하게 흘러가지만 여기서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갈 수만은 없으므로 궁금하신 독자 여러분께서는 직접 그 이야기들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백년의 고독 결말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5대손 아우렐리아노는 아마란타 우르슬라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들의 선조들이 대대로 걱정하고 경고해 온 대로 그들이 아이는 돼지꼬리가 달려 있었다. 

아이를 낳다 산모가 죽자, 온 세상에서 다 모여든 듯 바글바글한 개미 떼가 정원 돌길을 따라서, 돼지꼬리 달린 아기를 끌고 그들의 굴로 나아가고 있는 기막힌 장면을 보고서야 아울렐리아노는 비로소 멜키아데스의 양피지 문서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양피지 문서에는 ‘역사의 시초는 나무와 연결되어 있고, 종말은 개미들에게 먹힐지니라’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아울렐리아노는 백 년 전 멜키아데스가 암호를 총동원하여 라티어로 양피지에 기록한 원고에 적힌 부엔디아 집안의 역사를 읽어보면서 아마란타 우르술라가 자신의 고모임을 깨닫게 된다. 

아울렐리아노는 자기가 언제 어떻게 죽으리라는 날짜와 상황을 예언하는 대목을 급히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미처 마지막 줄을 읽어내기도 전에, 그는 자기가 결코가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백년 동안의 고독 마지막 문장

이 거울의 도시, 아니 신기루의 도시가, 바람에 날려 없어질 것이며, 아울렐리아노가 이 원고를 해독하게 되는 순간부터 마콘도는 인간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여기에 적힌 글들은 영원히 어느 때에도 다시 되풀이될 수 없을 것이니, 그것은 백 년 동안의 고독에 시달린 종족은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작품 해설 

G.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으면서 자꾸만 천명관의 <고래>가 오버랩되었다. 다 읽고 나니 두 소설의 플롯이 놀랍도록 유사했고, 반어적인 어법 등 문장 전개 방식과 늪이라든지 철도와 마을의 번성 등 소재들마저 엇비슷했다.

천명관이 이 작품을 패러디했거나 오마주한 것이라고 짐작은 가는데, 그가 고래의 수상소감에서 백년의 고독을 언급한 적이 없으므로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군가 천명관의 고래를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평했던 기억도 난다.

현실과 상상이 교묘하게 혼재된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부르기도 하고, 권말에 실린 문학평론가 김욱동처럼 이 소설을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 행위를 폭로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고발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조상들은 한적한 마을에서 대대로 폐쇄된 삶을 누렸고, 그는 그의 친구 푸르덴치오 아귈라를 창으로 찔러 죽인 후, 마콘도 마을을 건설하여 더욱 폐쇄적인 그들만의 세상을 살았다.

그들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같은 이름들을 똑같이 물려주면서 근친상간의 길을 걸었다.

마콘도에 언제부터인가 집시들이 왔고, 철도가 들어왔고 바나나 공장이 들어왔고, 그에따라 함께 들어온 외지 문물이 마콘도만의 폐쇄성을 쇠락시키자 부엔디아 가문도 함께 쇠락했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집시가 전해준 진귀한 물건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헛된 꿈에 들떠 가족을 내팽개치고 연구에만 몰두했고, 아울렐리아노 대령은 자유파의 이상에 감염되어 전쟁을 끝없이 했으나 나중에는 전쟁을 위한 전쟁을 멈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부엔디아 집안의 가계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간들의 욕정과 욕정이 만나 그어진 선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면서 완성됐다. 아우렐리아노가 자신의 이모와 아이를 낳고서야 그 가계도는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으면 길고 길었던 가문의 흥망성쇠가 덧없고, 그들이 삶았던 삶들이 한바탕 꿈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비극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가? 또 마콘도는 기어이 사라져야 했을까?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그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니까.

백년동안의 고독에 비견되는 천명관의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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