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러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정지인 옮김, 곰 출판, 2021)는 철학적인 물음을 깊게 던지는 경이로운 논픽션이다.
이 글은 아래 링크 글에서 이어진 책의 후반부 줄거리와 이 책의 중요 메세지이기도 한 민들레 법칙을 다룬다.
줄거리
제인 스탠퍼드 부인의 죽음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그가 쓴 논문은 물론이고, 회고록과 동화, 에세이, 강의계획서, 교과서, 신문에 발표한 각종 논설에 이르기까지 그와 관계된 모든 저작물들을 기록 보관소에서 끈질기게 읽고 또 읽었다.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연구한 방식, 역시 ‘그릿’했다.
남편이 죽고 나서 부인 제인은 스탠퍼드대의 전권을 쥐었다. 데이비드의 제자이자 스탠퍼드 교수의 ‘불륜 행각’을 사서가 고발하자, 데이비드는 역으로 사서를 ‘성도착자’라는 누명을 씌워 학교에서 내쫓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인이 데이비드를 해고할 것이라는 소문이 교내에서 공공연히 돌았다. 1905년 1월 14일, 제인은 자택에서 독극물 스트리크닌이 든 생수를 마셨지만 겨우 목숨은 구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두려움에 제인은 휴양차 하와이로 떠난다. 하와이의 최고급 호텔 모아나에 투숙한 지 일주일 만에 제인은 다시 스트리크닌이 든 음식물을 먹고 사망했다.
언론은 처음에는 독살로 보도하였으나, 뒤에는 과로와 과식으로 사망한 것으로 뒤바뀌었다.

룰루 밀러는 이 모든 배후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있었음을 가리키는 정황 증거들을 채집하여 기록하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실었다.
스탠퍼드대 측의 소송을 예상하지 않았더라도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살인자로, 혹은 살인교사범으로 지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학적 글쓰기를 하는 저자로서는 명확한 증거 없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조차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출간되고 여섯 달 뒤, 스탠퍼드 대학과 인디애나대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두 학교 모두 학생들과 임직원, 교직원, 졸업생들이 편지와 기사, 온오프라인 시위로 항의한 결과 내려진 결정이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어류 학계 거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릿 때문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릿은 스타 조던을 괴물로 만들기도 했다.
끈질긴 투지의 이면에는 ‘나는 할 수 있다, 어떤 역경에도 내가 마음먹은 것은 해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스탠퍼드대에 자신의 왕국을 건설했다. 자신의 제자들로 스탠퍼드대 교수직을 채웠으며, 제자를 고발하는 사서를 협박해 내쫓았다.
스타 조던은 자신이 목표로 향해 곧장 직진하는 괴물이었다. 자신을 해고하겠다는 스탠퍼드 부인도 자신의 생각대로 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만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독수를 뻗쳤을 그를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열광적인 우생학 지지자로 빈곤과 타락은 유전되기에 박멸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는 우생학을 지지하는 논문을 발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생학을 미국에 들여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의 주장에 따라 우생학적 불임화 법이 통과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불임화 시술을 강제적으로 받는 비극을 겪었다.
그릿 너머 ‘민들레 법칙’
저자 룰루 밀러는 그릿이 추구하는 목표 너머 민들레의 법칙이 스며드는 민들레의 영토를 그린다. 룰루 밀러가 소개하는 민들레의 원칙은 이렇다.
“자연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226~ 227쪽)
조던에게 인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퇴화되었다고 생각한 인간은 제거되어야 마땅했기에 열렬한 우생학 신봉자가 되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연계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물고기를 분류하면서 계층구조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그는 그릿 하게 매달렸던 목표 너머를 보지 못했고, 목표로 가면서 주변도 둘러보지 못하는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룰루 밀러는 우리 인간도 민들레와 마찬가지일 거라고 본다. 다양성이야말로 진화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생명체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단일대오로 돌진하면서 진화를 이룩해 온 것이 아니다. 인간 또한 각자의 길을 가면서 서로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존재가 되면서 역사는 발전해 왔다.
그건 그렇고 책 제목이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까? 말장난일 수도 있겠지만 현대의 분기 학자들이 밝혀낸 진화 계통도에 따르면 조류도 존재하고 포유류도 존재하지만 어류는 콕 집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류라고 퉁친 분류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긴 말 필요 없이 인간의 손도 물고기의 지느러미에서 진화했으니까. 아무튼, 엄밀하게말하자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일 것이다.
언젠가 스탠퍼드를 둘러보러 갔을 때, 데이비드 스타 조던 건물을 보았는지, 보지 않았는지 가물거린다. 이 책을 읽고 갔었더라면 그 건물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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