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소설 <아Q정전>은 ‘아큐’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3인칭 시점으로 그린 중편 소설이다.
작가는 비겁함과 기회주의, 과대망상, 근자감, 봉건적인 패배주의, 노예 근성 등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인간적인 결함을 아큐라는 인물에게 집대성한 것처럼 보인다.
청나라 말기의 땋은 머리를 한 아큐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아큐가 현대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그리되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해 본다.
아큐는 그의 삶 어느 시점부터 무언가를 분명 잃어버렸을 것이다. 시대 상황이 그러했으니 더욱 그랬을 것 같다.
그것이 언제였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아큐에게 탐문하며 이 이야기를 읽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루쉰의 대표작 아Q정전 줄거리와 독후감, 정신 승리법 작품 해석>에서 이어진 글이다.
후반부 줄거리
금의환향과 혁명
아Q는 그해 추석이 막 지난 무렵, 새 저고리를 입고 허리에는 은화가 가득 든 돈 주머니를 묵직하게 차고서 다시 웨이좡 마을에 위풍당당하게 나타났다.
그는 성안 거인 나리의 집안일을 거들어 주고 큰 돈을 벌었지만 그가 정말 ‘빌어먹을 놈’이기 때문에 두 번 다시 그 집에 일을 거들어주려 가지 않을 작정이라고 떠벌이고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그를 경외했고, 규방 여자들이 아Q에게 비단 치마를 사고 붉은 서양 날염 옷가지를 싸게 샀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을 여자들은 눈이 빠지게 그를 만나고 싶어했다. 뒤에 밝혀지지만 그가 판 물건들이 장물이었으니 가격이 쌌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선통 3년 9월 14일(1911년 11월 4일) 한밤중, 검은 거적을 덮은 배가 자오 나리 댁 앞 선창에 닿았다가 해가 뜰 무렵 떠나갔다는 불안한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은 검은 거적을 덮은 배는 거인 나리의 배였으며, 혁명당이 성안에 들어와서 거인 나리가 피난 온 것이라고 했다가 거인 나리가 헌 옷 상자 몇 개를 들고 와서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을 당해 도로 가지고 갔다.
그랬다가 아니다, 그 상자는 지금 나리 댁 마님 침대 밑에 숨겨져 있다는 데까지 소문은 확대되었다.
아Q는 처음에 혁명당은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고 반란은 그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 증오했으나, 거인 나리가 혁명당 때문에 벌벌 떠는 것을 보고 ‘혁명도 좋은 것이구나.’라고 생각에 이른다.
바야흐로 웨이좡 마을에도 혁명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자오 나리 댁의 생원 선생이 변발을 머리 위로 말아 올렸고 그 숫자는 점점 불어났다.
그런데 아Q도 변발을 머리 위로 말아 올리고 혁명당원 행세를 하며 돌아다녔으나 어쩐지 푸대접을 당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혁명을 하려면 말로만 가담해서는 안 되고, 혁명당원을 알고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유일하게 알고 있는 혁명당원 ‘가짜 양놈’ 집에 찾아가 자기도 혁명에 가담해 보고 싶다고 말하자마자 단칼에 쫓겨나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오 나리 댁이 털렸고 나흘 뒤 아Q는 범인으로 지목되어 한방중에 갑자기 체포되어 성으로 끌려갔다.
결말, 대단원(스포일러)
대청 마루 위에는 머리를 박박 깎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가 거인 나리였으나 아Q는 그를 알아볼 리 만무했다. 나흘 간의 취조 끝에 그는 서명을 하고 사형을 당할 참이었다. 관리들이 글을 모르는 그에게 동그라미로 서명을 대신하라고 했다.
“아Q는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했지만 붓을 쥔 손이 계속 덜덜 떨렸다.(중략) 아Q는 엎드려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는 남들이 웃을까 봐 최대한 동그랗게 그리려고 했지만 빌어먹을 붓이 무거운 데다 도통 말을 듣지 않았고, 벌벌 떨며 겨우 동그라미를 다 그릴 때쯤에 밖으로 비쳐나가 호박씨 꼴이 되고 말았다.”(149쪽)
아Q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정신 승리법을 구사한다. 살다 보면 감옥에 잡혀 들어올 때도 있고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릴 때도 있는 것이라며 또 정신 승리를 하는 것이다.
사흘째 되는 날, 아Q는 수레에 태워져 형장으로 끌려갔다. 자기의 목을 날리러 가는 길임을 그때야 안 그는 다급해져 눈앞이 깜깜해지고 귀에 천둥이 치고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다시 태연해졌다. 살다 보면 원래 목이 날아갈 때도 있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다.
“총살은 목을 치는 것보다 볼거리가 못 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는 얼마나 덜떨어진 사형수였는가? 그렇게 오래 거리를 끌려다녔으면서도 노래 한 소설 못하다니. 괜히 따라다니느라 헛고생만 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아Q정전의 마지막 문장)
작품 해설
루쉰이 이 소설을 발표한 1921년 당시 중국은 민중의 열망이었던 신해혁명이 흐지부지 끝나고 망해가던 청 제국은 발악하고 일본의 침략에 전전긍긍하던 암흑기의 연속이었다.
루쉰은 일본 유학을 떠날 때에만 해도 의사가 되고자 했으나 일본에 포로로 잡힌 동포를 구경하는 중국인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작가이다.
그의 데뷔작 <광인일기>를 발표하며 광인이라는 충격적인 비유를 통해 무지몽매함에서 청년들이 깨어나기를 촉구했던 루쉰은 <아Q정전>에서는 당시 중국 사회에 만연해 있었던 봉건적인 패배주의와 노예 근성에 절망한다.
지금은 이 소설의 주인공 아Q가 정신 승리의 보통 명사가 되었지만, 당시 작가는 아Q를 중국인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섰다.
아Q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지만 스스로는 아주 많이 아는 완벽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툭하면 맞고 다녔지만 아들에게 맞은 셈 쳤고, 심지어는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남을 때렸다는 정신 승리를 하기도 한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중국인들이 신해혁명을 한답시고 정신 승리를 했음이 드러난다.
진정 눈물 나는 장면은 그가 동그라미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걸 보고 사람들이 웃을까봐 걱정 하면서도 진작 자신이 죽는다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는 살다 보면 원래 목이 날아갈 때도 있는 거라고 정신 승리하는 대목이다.
루쉰은 이러한 정신이 중국인의 뼈 속까지 녹아 있다고 절망하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반성을 많이 했다. ‘살다 보면’이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많이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작가는 아Q가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끝까지 정신 승리하며 허무하게 죽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그렇다면 던적맞은 아Q의 일생과 허무한 죽음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소설을 읽은 독자가 스스로 답해야 할 물음이다.

루쉰 프로필
- 1881년 중국 저장성 사오싱시 소흥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주수인(周樹人; 저우수런)으로 ‘루쉰’은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할 때 처음 사용한 필명이다.
- 190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중국인을 위한 어학원에 다녔고,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현 도후쿠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일본인 교수가 틀어준 뉴스 필름에서 중국인 포로를 구경만 하는 중국인을 보고 충격을 받아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 1909년 귀국하여 항주의 양급사범학교에서 과학 교사로 일하다가 1910년 고향으로 돌아와 소흥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후에 소흥 사범학교 교장에 취임한다. 1910년 신해혁명으로 1912년 난징에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교육부원으로 일하게 된다.
- 1918년 중국 최초의 현대 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으며 1919년 5.4운동 때, 다른 지식인들과 함께 신문화 운동을 주도했다.
- 1921년 주간지 <신보부간>에 파인(巴人)이라는 필명으로 중편 소설 <아Q정전(阿Q正傳)>을 연재하였으며, 중국 전역은 충격에 휩싸인다.
- 1922년 첫 소설집 <납함> 출판했으며 1923년에는 강의 내용을 다듬은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을 간행했다.
- 1926년 소설집 <방황>을 출판하고 정부의 지식인 탄압을 피해 샤먼과 광저우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하여 중국좌익작가연맹 등에도 가입하여 활동을 했으며 죽기 전까지 9권의 잡문집과 소설집 <고사신편(故事新編)> 등을 펴냈다.
- 1936년 청년 작가로부터 중국의 ‘막심 고리키’라고 존경을 받았던 그는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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